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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Sep 03. 2022

이름 모를 어느 엄마에게 쓰는 반성문

Part4. 엄마가 되어 바라본 세상

 언니, 안녕하세요?

(출산에 있어 선배이시니 편하게 언니라고 부를게요.)

언니는 저를 기억 못 하실 테지만, 저는 아직도 언니를 만 날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그날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거든요. 내 생애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때가 퇴근 시간쯤 되었을 거예요. 퇴근 후, 저녁거리 장을 보기 위해 저는 집 근처 대형마트로 들어갔어요.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한참 장을 보고 있는데 스낵코너 어디쯤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큰 울음소리를 따라 제 시선이 닿은 곳에는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어요. 아이는 계속해서 소리를 높여 우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아이의 엄마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저는 걱정도 되고, 한편으론 아이가 안쓰럽기도 해서 ‘도대체 애 엄마는 뭐하길래 애가 저렇게 우는데도 안 오는 거야?’라고 혼잣말을 했어요.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큰 소리로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이던 찰나, 엄마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어요.



“안 돼! 안 된다고 했지! 내려놓고 빨리 와!”



아이에게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 엄마를 보고, 저는 개념 없는 엄마라 생각했어요. 네, 너무 교만했었죠. 육아의 ‘육’ 자도 몰랐던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었던 저는 전후 사정도 알지 못한 채 으레 애 엄마를 탓하고 있었으니까요.



 장을 다 보고 계산대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 또 한 번 제 귓가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스쳐 지나갔어요.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고개를 힐끗 돌렸을 때는 내 옆으로 아까 울고 있던 그 아이가 다시 보였어요. 이번에는 옆에 엄마도 함께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욕하며 찾았던 애 엄마가 바로 언니였던 거죠. 그런데 저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순간 할 말을 잃었지 뭐에요? 멋지게 차려입은 듯한 바바리코트 위에 충분히 걸을 수 있어 보이는 아이를 아기띠로 품에 안은 채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거든요. 그 옆으로는 언니의 첫째로 보이는 아이가 계속 울고 있었고요. 인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는데 그때 저는 속으로 또 한 번 언니를 욕했어요. ‘무슨 저만한 애를 힘들게 매달고 다녀? 남편은 또 어디 가고 혼자 저러고 있는 거야?’ 나중에 제가 엄마가 되고 난 후에야 그날의 충격적인 언니 모습은 그저 평범한 엄마의 모습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니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어요.



 그땐 정말 미안했어요. 언니.

제가 직접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야 언니의 그 날이, 행색이 이해되더라고요.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저도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마트에 다녀와요. 아이들과 집을 나서는 순간 항상 후회가 밀려오지만, 아이를 셋 낳은 후로는 저는 부쩍 용감해졌어요. 그날은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와 둘째는 저와 함께 걸어서 아파트 지하에 있는 마트로 향했어요. 처음 유모차를 탄 막내는 곤히 자는가 싶더니 갑자기 깨서 울어 재끼기 시작했어요. 마트에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막내의 울음은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내 등줄기에도 눈물 같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결국, 마음이 급해진 저는 첫째와 둘째를 채근했어요.



“얼른 골라! 아기 울잖아.”



 그런데 아이들은 제발 제발 제가 고르지 않았으면 하는 과자들로만 쏙쏙 골라오는 거예요. 아니, 요즘 과자는 저희 때와 참 다르더라고요. 외형은 아이들의 눈을 현혹하기에 딱이고, 내용물은 콩알만큼 들어가 있는 ‘이것은 과연 과자인가, 장난감인가?’ 알 수 없는 과자 형태를 한 것들이 마트에는 많더라고요. 저는 금액까지 비합리적인 그것을 절대 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더욱 단호해져야만 했어요.



“그건 안 돼. 우린 과자 사러 온 거야. 원래 자리에 놓고 와!”

내 말을 들은 아이는 그것을 손에 더 움켜쥐고선 마트가 떠나가라 서럽게 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어떡했냐고요?

떼쓰는 아이를 두고 마트 밖으로 나와버렸어요.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온 아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도 세상 서럽게 울어댔고, 저는 짜증이 치밀어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간 걸 후회했어요. 또 우는 아이와 화가 난 저를 번갈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날 언니도 그랬던 거죠?

제가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언니의 첫째가 마트에서 그리도 서럽게 울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언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의 모습을 보고, 제가 언니를 속으로 욕했던 것처럼 또 다른 사람이 저를 욕했을지도 몰라요. ‘저 여자는 남편은 어디 갔길래 혼자서 애 셋을 데리고 다니냐? 난 절대 저렇게는 안 살아야지.’



 저희 남편은 작년 9월에 꿈을 이루기 위해 아프리카로 파병 갔어요. 그래서 저는 한동안 언니보다 더 처참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밖을 다니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지금 ‘쌤통이다!’ 하신 건 아니죠? 저도 언니처럼 이 극한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길 빌어주시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얼마 전, 그날 언니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떠올려 봤어요. 우는 아이와 언니의 행색에 놀라 미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거든요. 참 많이 지쳐 보여요. 출근길에 예쁘게 차려입고 나간 바바리코트는 어느새 아기띠와 아이에 가려 보이질 않고,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혼자 남아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정신없이 보냈을 언니의 하루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아려와요. 그런데도 책임감 하나로 하루를 열심히 버텨낸 언니가 진정 위대해 보여요. 그런 언니에게 욕을 하다니. 제가 너무 몰랐어요. 진심으로 미안해요. 세 아이를 키우면서 그날의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라도 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어요.



 언니,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그 사이 언니의 아이들은 많이 컸겠죠? 셋째를 낳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이제는 저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제는 제가 부러워할 정도로 재미있게 잘 살아주세요. 언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언니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제가 있다는 것도 한 번씩 생각해 주세요.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서로 여유롭게 웃으며 인사해요. 그리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주기로 해요. 그때까지 우리 잘살아봐요.



언니를 존경하는 1년째 홀로 육아 중인 아들 셋 맘이.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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