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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울 이선예 Apr 13. 2024

머피의 법칙

  열 살 무렵 나는 고전 무용을 했다. 몇 번의 무용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부채춤을 추던 그날은 제법 큰 대회였던 것 같다. 어린 욕심에 최우수상을 꼭 타고 싶었다. 연습하고 또 하고 수없이 반복했지만, 대회 날이 되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춤의 시작은 작은 부채 두 개로 춤을 추다가 중간쯤에 큰 부채로 바꿔서 추는 제법 난이도가 있는 작품이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음악에 맞춰서 춤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부채 한 개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무대 밑에 엄마의 얼굴이 잠시 보였고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 잘하려다 보니 오히려 평상시에 하지 않았던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부채를 얼른 주워 다음 동작으로 이어 나가는 듯이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다시 춤을 추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순발력이 나왔는지 신기했다. 이제 큰 부채로 바꿔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행히 부채는 무사히 잘 바꿨다. 

  그런데 안심도 순간, 부채를 머리 위에서 돌리는 동작에서 또 실수를 했다. 부채를 손에서 놓쳐서 내 머리 위로 부채 한쪽이 날아갔다. 그냥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다.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화장한 얼굴이 미워질까 봐 눈물을 꾹 참고 끝까지 마쳤다. 그렇게 내 춤은 끝났고 최우수상을 받고 싶었던 나는 부채를 두 번이나 떨어뜨린 이유로 결국 우수상도 아닌 장려상을 받았다. 너무 속상했다. 서운한 마음이 엄청나게 컸다. 나이 들어서도 가끔 생각나는 어린 날 기억 중의 하나이다. 

  


  그날 이후 미래의 일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과 욕심이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10살 이후로 다가올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상황을 미리 상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최근에 지방에서 강의가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꽤 여러 해가 되었지만, 남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긴장된다. 서울도 그렇지만 장거리 강의는 더욱 그렇다.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러워서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며칠 전부터 강의 내용 점검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가지 일어날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철저히 준비한다. 집에서 가는 동선의 길이나 소요 시간, 교통체증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지방에 강의하러 갈 때는 늘 시간을 여유 있게 출발한다. 

  강의 외출을 준비하는 중에 미국에 사시는 시어른께서 전화가 왔다. 미국과 시차가 있는지라 걸려온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통화를 끝내고 허둥지둥 준비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누르려 하니 ‘점검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관리실에 전화해보니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마음이 급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우리 집은 25층이다. 걸어 내려오기로 했다. 정장에 높은 구두를 신고 노트북과 핸드백, 약간의 간식을 싼 가방까지 들고 1층까지 내려왔다. 25층을 뱅글뱅글 돌아내려 오다 보니 머리도 띵하고 다리도 후들후들 떨렸다. 땀이 비 오는 듯했다. 그렇게 1층까지 다 내려오고 나니, 아뿔싸! 강의할 때 필요한 노트북 포인터 건전지를 깜빡 잊은 것이 생각났다. 25층까지 다시 올라갈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집 앞 마트로 건전지를 사러 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그날따라 마트 창립 1주년 기념 할인판매를 하는 날이었다. 내 앞으로 물건을 잔뜩 산 아주머니 너덧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애간장이 타는 듯했다. 다행히 나는 시간에 맞춰서 강의장에 도착은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사람의 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언제든 잘못될 수도 있다는 머피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 낙관적인 사람은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하지만, 비관주의자는 본인한테는 늘 그렇게 일이 꼬인다고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한번은 강변도로에서 길을 찾는데,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분명히 가는데도 계속해서 목적했던 곳의 반대 방향의 길이 나오는 것이다. 몇 번을 해봐도 귀신에 홀린 듯 똑같이 반복해서 나왔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짜증부터 났지만, 요즘은 이런 일도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야,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제대로 길을 찾아갔다면 사고가 났을지도 몰라’ 그렇게 나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런가 하면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번은 가족이 야구장에 간 일이 있다. 경기가 끝난 후 행운의 추첨을 하는데 내 번호가 뽑혀서 제법 값비싼 전기 프라이팬을 받아 온 일도 있었다. 3,000명 중의 한 명이 뽑힐 확률인데 내 번호가 당첨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눈길을 받으며 행복했던 일도 있었다. 

  그 후로, 아침에 아파트 베란다에 까치가 와서 앉는 날이면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해서 로또 복권을 한번 사 볼까, 하고 생각한 때도 있다.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은 어떤 일이 잘못되어 가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서양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즉, 하려는 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살아보니 행운과 불행 사이 그 어디쯤 머피도 있고, 모든 일이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풀린다는 샐리의 법칙이라는 행운도 그 어디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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