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정은혜
<니 얼굴>의 작가...
‘우리들의 블루스’는 2022년 4월에 방영한 20부작 TV 드라마다. 먼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들’은 누구이며 ‘블루스’는 누구와…? 학창 시절을 그린 드라마일 것 같아 호기심이 들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과 드라마의 배경이 제주도라는 것에도 기대감이 생겼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서민들 삶의 언저리 어디쯤 절망의 끝자락에서 보통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인간미 묻어나는 삶을 실감이 나게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품게 하고 인생을 응원하는 이야기다. 빚에 몰린 은행장 기러기 아빠, 고등학생들의 철없고, 용기 있는 순수한 사랑의 선택, 가족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 마음을 열지 못해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 부모와 자식 간 천륜의 사랑 등 매회 각기 다른 가족의 스토리를 연결해서 다루는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다.
나는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연속적으로 봐야 하는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1995년 온 국민이 애청했던 ‘모래시계’ 이후, 최근에 방영 시간을 기억해 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던 드라마가 ‘우리들의 블루스’다.
생전의 나의 어머니를 닮아 좋아하는 김혜자 배우와 ‘기생충’ 영화에서 열연했던 이정은 배우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우리 주변에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들을 가슴 절절하게 공감시키는 드라마였다.
나는 직업 배우가 아닌 정은혜 화가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부터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은혜는 실제로 선천적 발달장애 1급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33살의 아가씨다. 드라마에서 한지민과 이란성쌍둥이 자매로 출연하면서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아픔을 보여주는 내용을 실제로 연기한다. 장애인 역할을 실제로 장애인이 연기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대사 암기조차 쉽지 않은 다운증후군인 인물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내심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정은혜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소통과 교류가 쉽지 않은 실제 장애인을 통해서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상처와 사회현실을 드라마에 그대로 녹여낸 노희경 작가의 노력과 연출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실제로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에 정은혜 역할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기 위해 드라마 집필 전에 1년을 정은혜와 소통했다고 한다.
정은혜는 드라마에서 장애가 있는 주인공으로 그림 그리는 역할로 나오지만, 실제로도 2016년부터 4,000여 명의 초상화를 그려 전시한 <니 얼굴>의 작가이다. 최근에는 정은혜 작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개봉을 했고 개인 전시회도 했다.
정은혜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았다. 사람들은 정은혜에게 자기 얼굴을 그려달라고 할 때 대부분이 “예쁘게 그려주세요”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정은혜는 “다 이뻐”라고 얘기한다. 정말 정은혜 눈에는 다 이쁘게 보일 것이다. 그 말은 진심이다. 정은혜의 그 말을 듣고 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났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딸을 화가로 성장시키기까지 정은혜 화가의 부모는 얼마나 많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고뇌했을까, 생각하니 존경심이 들었다. 정은혜의 아버지는 영화 연출을 하고, 엄마는 화가이니 그래도 운 좋게 부모님을 잘 만난 것 같다. 그렇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 사는 장애인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나도 마흔 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건강하지 못한 늦둥이를 낳아 하늘나라로 보냈다. 아기와 이별을 하기까지 겪은 5~6개월간의 시간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후 몇 년은 자책감과 우울증에 힘들었다. 거의 30년이란 시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잔재하고 있다.
정은혜 화가를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삶이란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아주 작은 순간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느꼈다. 절망보다는 희망이라는 깃발을 들고, 행복의 고지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라고.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 오직 자기 자신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 외롭고 고독한 길이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가족의 희생과 헌신의 사랑이 숨어있다는 것. 요즘 패륜아라든지 가족 간의 살해 등 믿기지 않는 뉴스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돼서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한다.
우리는 정은혜 화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선물 받았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힘들거나 괴롭다고 자기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고 폐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남보다 못하다고 자학하고, 살기 힘들다며 급기야는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흔히 있다. 정은혜 화가를 보면서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살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쉽게 엄살을 하지 않았나, 얼마나 긍정적인 삶을 살았나 돌아보며 반성해 본다.
“살아있는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 행복하라!” 인간은 불행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가슴 따뜻한 메시지를 주고 마감한 드라마였기에 나의 기억 속에 두고두고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