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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하는 돌멩이 Jul 09. 2023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출애굽기 14장 묵상

모세는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두려워 말라움직이지 말고 오늘 주께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아라.”

출애굽기 14:5-31


오늘 본문은 바로의 핍박으로 인해 탈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긴긴 피난생활로 인하여 지치자, 이 모든 과정을 시작했던 처음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원성 앞에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을 잘 들여다볼 것을 요청합니다. “움직이지 말고” 라는 표현이 오늘 앞서 읽은 기도문의 침묵과도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모세의 요청은,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다 내려두고,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바라보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살면서 도저히 이해되지 못하는 경험들을 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두려움이 닥쳐오는 사건들 앞에서 우리 대부분은 불안해하고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절망이 정 반대가 뭐일까요?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의 반대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어느 질병보다 흔한 절망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때때로 닥치는 현상이라고 그는 설명하는데요. 결국 자기자신이 되지 못할 때 인간은 절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잠시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처럼 되려고 애쓰다가 그만 자기 자신이 되지는 못한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군중 속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는 기꺼이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 또 다른 한 사람, 끝없는 천편일률의 또 다른 반복”이 되도록 내버려둔다.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능성과 필연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어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믿음과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현실개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자기자신의 주인은 바로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야만, 진정한 자기실현이 가능할까요? 진정한 나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을까요? 우리의 실체는 우리를 우리로서 만들었으며 우리 존재의 기반을 이루는 신에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죠. 영원한 것, 즉 하나님 앞에서 존재하는 겸허한 나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자신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신과 맺는 관계는 편안한 관계는 아니라고 합니다. 불의에 저항해야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나 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관계 맺는 나의 삶인 것입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희생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함께 손잡고 일어서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기되기 실천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가 외친 것처럼, 

두려움에 잠식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용기를 가지고 온전히 두발을 내딛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해 희망을 일구는 더 큰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말라. 그리고 오늘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겸허하게 그리고 희망으로 받아들이시는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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