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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Jul 02. 2024

50점도 괜찮아.

떠나간 너를 그리워하며


  “선생님 지훈이 오늘 전학 갑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가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5월의 마지막 날, 지훈이는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 집안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이사였기에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헛헛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훈이는 유쾌한 아이였다. 주변의 친구들이 곧잘 놀려도 허허 웃으면서 맞받아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갖고 있었고, 재미난 춤을 여기저기서 보고 연습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함께 추던 아이였다. 마음의 곳간이 넉넉해 우리 반 소심이 재완이의 마음까지 열게 한 매력만점 인기남.          


 이런 지훈이에게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었는데, 바로 수학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2~4학년을 집에서만 보낸 지훈이는 2학년이 하는 곱셈 구구도 바로 나오지 못해 진땀을 흘리곤 했다. 하루 중 제일 불행한 시간이 수학 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지훈이를 이대로 둘 순 없어 하루는 남아서 상담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지훈이 넌 수업 태도가 좋잖니. 네가 여태까지 수학 공부를 어렵게 했던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 것 같아? 그것부터 해결해 보자.”     


“구구단인 것 같아요. 그리고 덧셈이랑 뺄셈도요.”     


 아이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한글을 모르면 글을 읽지 못하듯이 사칙연산이 어려운데 어떻게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짠하다고 느껴져 대답할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지훈이가 다시 나에게 물어왔다.     


“선생님 그런데, 50점 정도면 잘하는 거예요?”     


 지훈이는 내 대답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그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쉽게 ‘그럼~’이라고 대답하면 과연 이 아이가 진심으로 내 말을 믿어줄까?     


“왜 궁금해?”     

대답 대신 꼬리를 물고 이어진 나의 질문에 머뭇거리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50점을 넘긴 적이 없어요. 그래서 50점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매번 쪽지 시험을 볼 때마다 10~20점을 받는 지훈이에게 50점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것 같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아이의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림을 그렸다. 계단을 10칸을 그리고 각 계단에 10부터 시작해 100까지의 숫자를 써넣었다. 그리고 20점 위에 서 있는 지훈이의 뒷모습까지 그리자. 지훈이는 더 알 수 없다는 듯이 볼펜을 쥔 내 손만 쳐다보았다.     


“지훈아,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이 여기야. 그렇지?”     


“네….”     


“우리 학교 계단을 올라갈 때를 생각해볼까? 가다 보면 창밖으로 운동장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지? 처음에는 운동장이 안 보이다가 중간쯤 가다가 보면 어때?”     


“운동장이 보여요….”     


“선생님은 시험 점수도 비슷하다고 봐. 수학에 대해 무언갈 깨닫기 시작하는 지점이 50점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50점은 100점 중 절반이야! 이건 수업의 내용을 반이나 이해했다는 뜻이고. 선생님은 지훈이가 정말 좋은 질문을 했다고 생각해. 50점 정도면 잘 하는거야.”     


“그럼 저는 마음속으로 50점을 100점이라고 생각할래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할게! 우리 100점을 맞기 위해 노력하자.”          


 그날부터 아침 20분, 방과 후 20분 나와 보충 수업을 하며 지훈이는 사칙연산을 연습했다. 머리가 지끈지끈해서 빠지고 싶다고 엄살을 부리던 날도, 문제가 잘 풀린다며 신나는 날도 있었다. 매일 집에 가기 전 내가 내준 시험지를 풀며 어떤 날은 40점을 받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시 점수가 제자리걸음을 하며 절망하기도 했다.


 사실 지훈이는 전학 가기 전까지 끝내 50점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50점을 넘는 건 어렴풋이 2학기일거라 생각했던 나에게 지훈이의 전학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전학을 간다고 아침에 인사를 온 지훈이는 친구들의 눈물 섞인 인사 세례 속에 씨익 미소 지으며 댄스 공연을 펼치고 갔다. 마지막 은퇴 공연이라면서. 이런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훈아, 선생님은 네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우리 반은 항상 널 잊지 않을 거야. 넌 어디서든 잘할 수 있으리라 믿어. 늘 기도할게.”     


 여기서 울면 모양 빠진다고 생각한 난 울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장황하게 내 마음을 전달했다. 지훈이도 정말 떠나야 함을 느꼈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생님, 그래도 100점은 받고 가야 하는데 아쉬워요.”     


 “지훈아, 선생님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수학 실력이 쑥쑥 늘었던 친구를 많이 못 봤어. 분명 올해가 가기 전에는 100점 받을 수 있을 거야.”     


“선생님 여기서 50점은 100점이라는 의미 맞죠?”     


지훈이는 비밀이라는 듯이 속삭이며 말했다. 열두 살 답지 않은 천진한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래, 맞아.”     


“휴, 다행이다. 그럼, 선생님. 제가 100점 받으면 꼭 연락드릴게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씩씩하게 걸어가는 지훈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어느새 우리가 정이 들었음을 실감했다. 나에게 지훈이는 100점 만점에 500점 같은 아이였다. 그 말을 해주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언젠가 100점을 받아 연락이 오게 된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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