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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너하다 Jan 07. 2021

꿈이 뭐 대수라고. 어디든 취직하면 장땡 아니야?

"오늘은 어디 원서 넣었어?"


엄마는 매일 전화를 걸어 오늘은 어느 회사에 원서를 넣었는지,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덕분에 졸업하기 전부터 나는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아니, 엄마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성인이 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처음엔 나도 희망하던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일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지 못했다. '광탈'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지.



한편으론 나를 뽑지 않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7년 동안 영어로 글을 쓰는 법만 배운 사람이 한국말로 글 쓰는 기자가 되겠다니... 나의 한국 언어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최소한 한국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나왔거나 문예창작과를 나온 정도는 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불합격 메일이 쌓여갈수록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괜찮은 스펙이 되어줄 줄 알았던 대학교 졸업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그저 외국 대학을 나온 영어를 쫌 할 줄 아는 사람에 불과했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다. 지금이라도 대학원을 가라. 언제 00 기업에서 채용한다더라. 아는 분이 00 회사 다니는데 거기 한번 물어봐라. blah...blah...



고막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알아서 할 테니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며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 그냥 자리를 피했다. 빨리 어디든 취직해서 이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취업의 벽은 높았고 열심히 벽을 두드리던 나도 지쳐버렸다. 기약 없는 합격을 기다리며 부모님과 계속 씨름하며 보낼 순 없었다. 가고 싶던 회사를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 대신 스펙이 인정될만한 곳을 찾았다. 대기업의 영문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대행사였다. 그렇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24살의 나는 제대로 된 꿈도 신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꿈이 있었다 해도 당장 눈앞에 마주한 현실에서 지켜낼 용기도 자신도 없었던 나약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긴장감과 설렘이 찾아왔다. 이제 정말 나도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첫 월급을 탔고, 부모님에게 처음 내가 번 돈으로 선물을 사드렸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번다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우습게도 그 기분이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다.



적응을 너무 잘한 게 이유였을까? 아니면 적응을 빨리하기 위해 노력한 게 잘못이었을까? 입사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나는 금방 일에 실증을 느꼈다.



그동안 성격이 잘 맞는 몇 명의 언니들과 친해졌고, 우리 팀을 담당하던 직속 선배가 퇴사하는 바람에 그 자리는 내가 맡게 되었다. 일도 익숙해진 상태라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감시자도 없고 내 일만 해내면 되는 그곳은 나의 comfort zone(안전지대)이 됐다.



그런데 그 안정감이 독이 될 줄은 몰랐다. 



회사생활은 더 편해졌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이 일은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실현을 한다거나 성취감이 드는 것도 아니고, 딱히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았고 내 자신이 그런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어느 순간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처음엔 누구나 겪는 '회사 권태기'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친구를 만나 술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이 답답한 심정을 누구에게든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컷 수다를 떨며 한풀이를 하다 보면 다시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대화의 결말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필 그 타이밍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친구가 내게 동업을 제안한 것이다.




"우리끼리 창업을 해 보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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