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기염에 부쳐 - 콘텐츠 마케팅의 성패란
마케팅 투자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을 100% 계산할 수 있다면 노벨 경제학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를, 마케터들끼리는 종종 하곤 한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 일했던 글로벌 소비재 회사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기업의 CEO, CFO 그리고 주주들도 궁금해 마지않는, 하지만 아무도 풀 수 없는 인류의 최고 난제 같은 질문. “마케팅 예산 이 정도 쓰면 우리 제품 매출이 언제 얼마나 나올까요?”
이 질문은 쉽게 보면 ROI(Return On Investment) 같지만, 그 Investment가 마케팅 예산이라는 점이 함정이다. 마케팅 예산은 단순한 투자 금액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다양한 요소의 결합이자, 그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건 마케팅 예산 규모나 마케팅 내용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B2C 기업에서 가장 큰 예산 할당은 대개 마케팅 예산이다. 재무적 관점에서는 당연히 확실성, 예측 가능성, 성과 추적이 꼭 필요하다. 왜? 주주들은 예측 불가능한 것을 가장 싫어하니까.
그래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내놓은 것이 MMM(Marketing Mix Modelling)이다. 마케팅 예산을 어떻게 믹스해서 실제 매출에 기여했는지 모델링을 하는 것인데, 요즘도 미디어 대행사에서 많이 쓰는 이 모델, 사실 1960년대 미국 TV 광고가 급성장할 때 나온 거다.
고릿적 이론으로 1인 미디어와 타겟팅이 일상화된 지금의 마케팅을 측정하겠다는 건, 변우석의 미모와 연기력을 논하는데 19세기 창극 배우의 기준을 대는 격이랄까.
현업 마케터들 중 2030 타깃 광고를 두고 "나는 우리 광고 못 봤는데?"를 반복하는 4050 임원들에게 "이사님은 타깃층이 아니셔서요"라는 말도 못 하고 냉가슴 앓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하면 지구 몇 바퀴는 돌고도 남을 거다. 그야말로 마케팅 대환장 파티의 시대다.
소비재 마케팅은 어느 정도 '통밥'이 나온다. 샴푸를 예로 들어보자. 타깃인 2030이 헤어케어에서 무엇을 고민하는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탈모나 볼륨감 같은 이성적 소구(Functional Attribute)를 공략한다. 여기에 전지현처럼 찰랑거릴 것이라는 감성적 소구(Emotional Attribute)를 얹어 인플루언서와 매체를 활용하면 된다. 30년 경험상, 이 기본 플로우만 지켜도 중간은 간다. 전문용어로 수요 예측(Demand Forecasting)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콘텐츠 마케팅은? 이건 정말 ‘이렇게 하니 되더라’가 없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개인 의견이다.)
물론 예전부터 해 오던 뼈대는 있다. 대본과 1차 편집본을 보고 이 콘텐츠의 한 방 '훅'이 담긴 로그라인과 포지셔닝을 잡는다. 대개 시놉시스를 발전시킨 형태다. 타깃 오디언스도 분석하지만, 콘텐츠의 대박 성공은 그야말로 온 국민이 다 보는 수준(영화는 천만, 드라마는 사람들 둘만 모이면 그 얘기만 할 정도)이어야 하니 연령과 성별을 나누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제품처럼 계량화해서 "이 타깃에게 이만큼 팔리겠다"는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특정 고객을 겨냥한 콘텐츠도 있지만, 독립 영화나 어린이 대상 장르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상업적 성공이 반드시 따라주어야 한다. 자본의 투자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의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로그라인을 잡고 나면 이 콘텐츠를 한 줄로 뭐라고 팔지 정한다. 로코인지, 타임 슬립물인지, 오컬트인지. 소비자들이 이 콘텐츠가 어떤 맛일지 예상할 수 있도록 하는 한 줄 안내문인 셈이다. 여기서 실패하기 싫은 소비자들을 위해 쓰는 ‘안전빵’ 기술이 바로 페디그리(Pedigree)다. 제임스 카메론 제작, A24 신작 같은 '보증수표'를 강조하는 거다. 돈과 시간이라는 소중한 리소스를 낭비하고 싶지 않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건드리는 기술이다.
그다음은 '작감배'를 활용한 프로모션의 향연이다. 제작발표회, 소셜 콘텐츠용 '콘텐츠 데이' 촬영, 유튜브 출연 등 어느 플랫폼이든 이 마케팅 구성은 쿠키 커팅(Cookie Cutting)처럼 대동소이하다. 여기에 성수동 팝업과 팬미팅, 각종 광고까지... 마케터들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고 수십 개의 메신저 창을 쳐내며 전쟁을 치른다.
그런데 콘텐츠야말로 마케팅 ‘덕’인지 ‘탓’인지 구분하는 건 신의 영역 아닌가 싶다. 제아무리 제대로 분석하고, 기깔난 로그라인을 쓰고, 난다 긴다 하는 작감배들이 사활을 걸고 홍보해도 안 될 콘텐츠는 안 된다. 왜 안 되는지 분석해 보아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론, 되는 콘텐츠는 CG가 어색해도, 연출이 촌스러워도, 스토리라인이 억지스러워도 된다. 성공한 뒤에 나오는 "시대정신을 관통했다"느니 하는 분석들은 죄다 결과론적인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BTS 성공 후 쏟아진 분석 공식이 다른 그룹에 적용되지 않는 것과 같다.
한국 콘텐츠의 위기라는 말을 요즘 많이들 한다. 그런데 이번 설날 극장가의 승자는 페디그리가 엄청난 한국 감독의 영화도 아니고, 작년 연말부터 맹공을 가한 제임스 카메론의 역작도 아닌, 우리가 다 아는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미 왜 이 영화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한 결과론적 분석이 온라인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성공한 콘텐츠들은 거의 대부분 한 가지의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그건 “마케팅 덕”이라는 분석은 아무도 안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콘텐츠들을 두곤 “마케팅의 실패”란 얘기들을 종종 하곤 한다.
마케터로서 변명은 안 하겠다. 하지만 콘텐츠는 정말 마케팅 탓도 아니고 덕도 아니고 우주의 기운이 만나야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마케터로 30년 먹고 산 사람이 이런 말 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지만, 우주의 기운과 소비자들의 '내 마음 나도 몰랐는데 나 이런 이야기 좋아했나 봐' 하는 마음과 작감배의 진심, 그리고 마케터들의 묵묵한 피땀눈물. 이런 게 골드 크로스처럼 만나야 ‘터지는 콘텐츠’가 나오는 것 같다.
이상 오늘의 한풀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