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만드는 상품의 가치
내가 과거 20대 시절 밴드를 할 때 일화다. 나는 돈이 많지 않았다. 이건 밴드 맴버들도 마찬가지 였다. 당시 베이스를 치던 후배는 항상 최신 아이폰을 들고 다녔는데 나는 그 모습이 배알이 꼴렸다. "돈도 없는 주제에 비싼 아이폰은 왜 들고 다니냐. 기타나 좋은 걸로 바꿔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후배는 "스마트폰은 이게 근본이지. 중고로 팔 때도 훨씬 유리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안드로이드나 쓰는 꼰대가 이 느낌을 할 수가 있나."
어느 날은 밴드 맴버들 끼리 연습 끝나고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그 후배는 콜라를 주문했다. "사장님 여기 코카콜라 하나 주세요." 그러자 식당 사장님은 "코카콜라는 없고 팹시랑 사이다는 있는데 그거 라도 드릴까요?"라고 말하자 후배는 "에이, 그럼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시 또 언짢아졌다. "야, 사이다도 있고, 팹시도 있는데 뭘 가리는 거야? 가난한 놈이 입만 고급이야. 그냥 아무거나 먹어 인마." 라고 말하자, "콜라의 근본은 코카콜라지. 나는 코카콜라만 먹어."라고 후배가 말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지난 번 아이폰도 그렇고 뭔 자꾸 근본 드립이야. 그럼 니가 콜라 맛을 구분이라도 한다는 말이냐? 웃기지 말아라"라고 면박을 줬다. 그러자 후배는 "당연하지. 내가 25년을 넘게 코카콜라만 먹었는데 그 맛을 모르겠어?"라며 자신의 미각이 우수하다고 우겨댔다.
나는 저놈의 콧대를 꺾어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즉시 마트에서 칠성사이다, 팹시, 코카콜라를 하나씩 사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자, 눈 가려. 그리고 종류 별로 한 잔씩 줄테니까 어떤 브랜드인지 맞춰봐. 네가 맞추면 내가 한달 간 너한테 형이라고 할게. 대신 못 마추면 오늘 술 값 니가 다 내라."
후배는 무참히 패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한번 코카콜라를 구분해내기도 했지만 다시 눈을 가리고 시도하면 틀리기를 반복했다. (즉 맞춘건 우연이었다) 후배는 코카콜라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사라지자 맛의 차이를 구분해내지 못했다.
내기 결과에 흥미가 생긴 밴드 맴버들은 자신들도 맞춰보겠다며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단 한명도 코카콜라와 다른 음료수를 구분하지 못했다. 심지어 대부분 사이다와 콜라조차도 구분하지 못했다.
-
우리는 제품에 대해 평가할 때 보다 다양한 부분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앞선 일화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비슷한 제품 들의 기능이나 맛을 생각보다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과거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는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증류수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각 그룹의 학생들에게 물 맛을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연구진은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 물이 증류수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 물이 수돗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학생들은 물 맛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증류수라는 사실을 알려줬던 그룹의 학생들은 마신 물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돗물이라고 말했던 그룹의 학생들은 물맛이 끔찍하다고 표현했다. 단지 수돗물이라고 잠깐 언급했을 뿐인데도 상상만으로 염소맛을 느낀 것이다.
눈을 가리고 콜라를 먹게 하자 밴드 후배가 맛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도 동일한 현상이었다. 후배는 실제로 콜라라는 제품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를 함께 마셨던 것이다.
-
20세기 광고계의 거물인 데이비드 오길비는 이런 인간의 지각적 특성을 보고 과거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일전에 한 위스키 브랜드를 광고하면서 논리적인 사실로 소비자를 설득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코카콜라 광고를 보면서 코카콜라가 콜라 열매를 50퍼센트 더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길비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업화 시대의 상품들은 점점 품질 등에서 그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이때 각 제품들의 차이를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은 결국 디자인과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