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밤을 좋아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요즘 한참 밤조림을 만드는 중인데,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맛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된다.
너를 보낸 지 이제 2주도 안 지났는데, 없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아주 오래전 일인냥 멍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네가 참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낼 거라 생각했다. 우리 외갓집 식구들은 다 오밀조밀 예쁘지만, 특히 너는 네 당당한 성격이 더해져 어디서든 인정받으며 예쁨 받으며 잘 지낼 거라 믿어왔다.
허지만 스스로도 어려운 사회의 모난 돌들을 다 지나오면서, 왜 너는 잘 지낼 거라 장담했을까.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 투성이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너를 보내고 난 뒤, 그 많은 밤 껍질을 까내며 며칠밤을 보냈다. 그 와중에 네가 밤을 좋아했다던 이모의 말이 계속 밤 속껍질에 걸려있었다. 이모도 밤 좋아하는데, 네 생각이 나서인지 입에 대지를 못하더라. 아무렇지 않은 척 밤조림을 건넨 내 마음이 더 아플 만큼.
남은 가족들은 네게 미안함 마음뿐이다. 아니 네게 화도 내고 싶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네게 무엇이 그리도 힘들었냐고, 도망칠 곳을 잘못 찾은 것 아니냐고. 그래도 이제는 부디 아프지 않기를, 더는 걱정으로 야위지 않기를.
내가 이렇게나마 너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부디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서 잘 도망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갉아먹는 일에서 잘 벗어나기를. 나를 헐뜯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말지, 나 스스로를 헐뜯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네가 선명히 웃던, 맑은 웃음소리만 남은 가을밤이다.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