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경은 병원 문을 밀고 나오다 다리가 휘청거려 얼른 손잡이를 잡았다.
겨우 병원 앞 벤치까지 다다른 수경은 벤치를 두 손으로 붙잡고 큰 한숨부터 몰아쉰 후, 벤치에 앉았다.
트럭에서 바쁘게 내려 생수통을 어깨에 이는 남자가 땀을 훔치는 얼굴, 택시 라인이 죽 들어서 있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기사들, 여자는 휠체어를 타고 남자는 휠체어를 밀며 편의점에서 간식을 잔뜩 사 들고 웃으며 나오는 젊은 커플.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선명하다. 그 속에서 수경은 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멎은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아무도 그녀의 사고를 개의치 않았으며, 아니 의식조차 못 하고 수경을 지나치고 있었다. 수경은 순간 자신이 대형 스크린에 걸린 영화관에서 눈앞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관람객처럼 여겨졌다.
“췌장암 4기입니다. 환자분이 원하시면 수술을 고려해 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런 경우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의 된 탓에 수술이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병원에서 근근이 시간을 끈다고 할 수 있죠. 적절하게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해 통증 관리를 하며 주변 정리를 하십시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환자의 경우는 6개월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심신을 잘 관리해 1년도 넘게 보내고 가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 수경은 의사에게 췌장암 4기라는 말을 들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달 전부터 식욕도 없고 설사도 많이 해 몸무게가 줄었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해 정형외과에 검사하러 갔다가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으로 대학 병원으로 가서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수경은 처음에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은 답답함과 허리가 아픈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검사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수경이 살면서 가끔 느껴왔던 증상일 뿐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말은 냉정했지만 어쩐지 신뢰감을 주었다. 처음에 진단받은 대학병원에서는 다양한 치료 방법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당장 보호자에게 말하고 입원해야 한다고 했었다. 수경은 그 말이 감옥에 가두겠다는 협박처럼 들렸고 ‘그렇게만 하면 오래 살 수 있을까?’ 잠시 기대도 했었다. 수경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기에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술이 의미 없다는 것, 그저 근근이 병원에서 시간을 끌기보다는 오히려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라는 이번 의사의 조언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그녀도 이미 몇 번을 생각했던 결과와 같은 맥락. 약간의 기적을 기대해 죽을 때까지 병실에 누워 남편과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죽으면서까지 돈을 까먹어 남은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경은 췌장암 4기라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 ‘엄마, 엄마’ 하며 우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순간, 수경의 눈 주위가 붉어지며 목구멍에 뜨거운 용암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껴 숨이 턱 막혔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불덩이가 밀려 나와 입을 벌리고 신음 소리와 함께 숨을 토했다.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은 그녀의 볼을 날카롭게 그으며 떨어졌다.
‘미안해, 엄마가, 엄마가 정말 미안해.’
수경은 누가 볼세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보지만 손가락 사이로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을 봉쇄해버리려는 듯 눈을 꼭 감고 온 얼굴을 손으로 꽉 감싸 더 세게 틀어막았다.
서른아홉, 아직까지는 멀리 서 있는 줄 알았기에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은 폭력적이었다.
한참을 흘러내리는 모든 울음을 두 손으로 꼭 짜내고 나니 차츰 평정을 찾았다.
‘몇 시지? 아이들 데리러 갈 시간인데....’
시곗바늘이 3: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경의 심장이 조급함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정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하교가 시작되는 4시부터 아파트에서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자신의 엄마이길 기대한다. 수경이 늦었을 때, 실망한 아이들이 몇 번 울었다는 말을 선생님께 전해 들은 후, 수경은 꼭 4시라는 시간을 지켜왔다. 하지만 지금 출발해도 족히 40분은 걸릴 시간이라 수경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Honey, it’s me, sorry I am a little late to get kids, so could you pick them up?” (여보, 미안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데 늦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와줄 수 있어?}
“Where are you?” (당신 어디야?)
수경의 기분 탓이었는지 남편의 말투는 어디서 무얼 하기에 엄마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냐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I met my friend, and I didn’t check the time. Time went so fast. Sorry.” (친구를 만났고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어.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가버렸어. 미안해.)
“OK. I am almost home. But, hurry up. I have to leave after quick dinner for the class.” (알았어. 거의 집에 도착했어. 서둘러줘. 나 오늘 이른 저녁 식사 후, 수업 있어서 나가야 해.)
“I think I can get home by 4:30.” (4: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수경은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택시 라인으로 뛰어갔다.
“기사님, 대명 중학교로 가주세요. 제가 좀 급해서 빨리 가주시면 더 좋아요.”
수경은 택시에 앉아 아이들 간식으로 뭘 만들어 줄지,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할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하는 동안 너저분한 집안이 떠올랐다. 아침에 아이들을 준비시키자마자 정신없이 동사무소 볼일을 보고 병원에 오느라 아이들이 벗어 놓은 잠옷도 거실에 있고 아이들이 먹고 남긴 아침 밥상도 치우지 못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그 정돈되지 않은 집을 보며 굳어질 표정이 눈에 선했다.
‘아이들 간식을 뭐를 먹여야 하나? 그래. 냉장고에 과일과 요구르트가 있었지. 그걸 먹이면 되겠다.’
간식을 결정하고 저녁 반찬을 검색하는 사이 택시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아파트 라인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수경의 집은 9층인데 엘리베이터가 23층에 서 있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4:35분. 수경은 엘리베이터 숫자가 내려오는 걸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
‘췌장암입니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평소대로 시간에 쫓기고 아이들 간식, 저녁 걱정을 했다. 어쩌다 아이들 데리러 갈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어 남편에게 오늘처럼 아이들을 부탁하면 그의 눈치를 보며 초조하게 집에 들어오던 일상이 차라리 행복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요동치는 가슴에 췌장암이란 단어는 곧 터질 시한폭탄처럼 여겨졌고 자신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언습해 숨이 턱 막혔다.
‘그래. 일단 오늘은 할 일이 많고 바쁘니 내일, 다시 생각하자.’
시한부 선고에도 당장 가족의 안일을 위해 미뤄 두어야 했다.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가슴에 손을 얹고 큰 숨을 서너 번 내쉬고 현관문을 열었다.
“ Hey. Mommy is back. Honey, sorry I am late.” (얘들아, 엄마 왔다. 여보, 늦어서 미안해.)
수경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불안정하게 높았고 목소리를 듣고 보리가 수경을 반기며 뛰어나왔다.
“엄마?”
강아지 시월이도 꼬리를 흔들며 수경의 무릎으로 뛰어오르며 반겼다.
“보리야, 오늘 어린이집에서 재밌었어? 엄마가 늦어서 미안해. 얼른 손 씻고 맛있는 것 해줄게. 보리 좋아하는 요구르트에 과일 넣어 먹자.”
거실로 보리를 안고 들어선 수경은 소파에 누워 남편의 휴대폰으로 정신없이 동영상을 보고 있는 준이를 발견했다.
“Hey. I gave them some milk because they seemed to be hungry.” (아이들이 배고파 보여서 우유를 줬어.)
남편이 서재에서 나오며 말했다.
“June was so cranky that you are not at home, so I must have given my phone to him while I prepared some papers for tonight. (당신이 집에 없다고 준이가 너무 짜증을 내서 수업 준비하는 동안 휴대폰을 줬어.)
남편은 준이를 바라보는 수경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 아이에게 휴대폰을 준 이유를 설명했다. 준이는 수경이 거실에 들어서도 본체만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수경은 준이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볼을 감싸 자신의 눈을 보게 하며 말했다.
“Hey. June? 엄마에게 인사해야지? 오늘 어린이집에서 잘 보냈니?”
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엄마를 보더니 곧 동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수경은 입술을 꽉 깨물며 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휴대폰을 끄고 남편의 시선을 외면한 채 그에게 내밀었다. Ryan은 수경의 모습에 멋쩍게 휴대폰을 받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준이. 휴대폰 자꾸 보는 거 아니랬지? 준이랑 보리. 방에 들어가서 퍼즐 하고 올까? 퍼즐 다 맞추고 나오면 엄마가 맛있는 간식 줄게.”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수경은 얼른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나왔다. 싱크대 위에는 아침에 아이들이 먹고 남긴 밥그릇들과 냄비가 있었고 식탁에는 남편이 먹다 남긴 샌드위치, 아이들이 먹다 남긴 우유 컵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식탁 위는 음식물 흘린 자국들로 너저분했고 식탁 아래에 과자 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개수대에서 손을 씻는 수경은 한숨을 쉬었다. 수경은 소변이 마려웠지만,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꺼내 씻어 자르고 요구르트를 퍼 그릇에 담고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에게 요구르트를 떠먹을 숟가락을 쥐어주고 나서야 수경은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수경이 한숨을 돌리며 볼 일을 보는데 보리가 불렀다.
“엄마. 나 요구르트 흘렸어.”
“보리야, 엄마 화장실에서 피피 하고 있어. 금방 갈게.”
수경은 서둘러 물을 내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다 문 앞에 놓인 젖은 매트를 밟았다.
“이게 뭐야?”
수경은 강아지가 오줌을 싼 매트를 손에 들었다. 한숨을 쉬며 발을 씻고 있는데 보리가 기다리지 못하고 화장실로 왔다.
“보리야, 엄마 다했어.”
얼른 발을 닦고 주방으로 가 바닥에 떨어뜨린 요구르트를 닦았다. 아이들이 요구르트를 먹는 사이 수경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시계를 확인했다. 5시.
‘밥을 안쳐야 하고 국 끓이고, 거실, 주방, 아이들 방 대충이라도 치우려면 이렇게 앉아있을 때가 아니지.’
수경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남편은 외출 준비를 하며 자기 방에서 나왔다.
“I gotta go. I will be back home at 9.” (나가봐야 해. 9시에 집에 돌아올 거야.)
수경은 냉장고로 뛰어가 배즙을 꺼내 남편에게 내밀었다.
“That’s OK. I don’t like pear.” (괜찮아, 나 배 안 좋아해.)
남편은 그렇게 말하며 수경에게 얼른 입 맞추고 바쁘게 나갔다. 수경은 들고 있던 배즙을 한번 쳐다보고는 입을 한번 쭉 내밀고는 그것을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정작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남편은 자기 기호가 강해 자신의 입에 맞는 것만 챙겨 먹었다. 처음에는 수경도 그렇게 각자 챙겨 먹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가족을 위한 요리를 많이 하는데도 남편은 함께 먹는 일이 드물어 서운했다. 때때로 친구들이 아이들을 재우고 자신의 남편과 야식 먹으며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는 소리도 내심 부러웠다.
‘온종일 목을 쓰는 사람이라 좀 챙겨주려고 했더니. 대충 받아 들고 마시고 가지.’
수경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방으로 들어가 요구르트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요구르트를 먹으며 스푼으로 테이블과 그릇을 두드리며 시끄럽게 장난을 쳤다. 또 요구르트를 자신의 얼굴에 묻히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요구르트가 묻은 테이블과 바닥, 아이들의 얼굴이 금세 더러워졌다.
“보리야, 준아, 엄마 저녁 준비해야 하니까 우리 한글 놀이 볼까?”
수경은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지저분함을 더 견디지 못하고 거실 TV를 켰다. 아이들은 소파로 쪼르르 달려갔고 수경은 물티슈로 아이들의 얼굴을 대충 닦이고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과 정신이 온통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추어져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씻기고 잘 준비를 마친 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동안 수경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를 게 없는 그녀의 일상이었지만 오늘 오후 남은 날이 6개월뿐이라고 판정받은 시한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