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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Aug 20. 2024

2. 걱정 마, 내가 찾으러 갈 테니

Aug. 16

새 학기가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났다.

약 나흘 전부터 매일매일 아들이 Recess시간에 노는 친구들이 없어 외롭다는 말을 꺼냈다.

친구가 없어 외롭다는 말이 특히나 아들 입에서 나오니 더 마음이 아팠다.

아들은 딸과 비교해 사교적이지도 않고 남들과 말을 주고받고 하는데 좀 센스가 떨어지고 늘 Social cue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동안 자기도 남에게 크게 관심 없고 남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였기에 괜찮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 아들 입에서 친구가 없어 외롭다는 말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내가 한국 엄마라 너무 한국 정서에만 맞게 아이를 키워서 미국 친구들이랑 맞지 않는가? 엄마들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가서 우리 아들 친구를 사귀게 해줘야 할까? 앞으로 생일 초대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 는 생각과 동시에 아들과 놀던 옛 친구 들을 집으로 초대해 줄까? 별의별 해결책들이 떠오르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네가 싫어도 그들이 놀고 싶어 하는 것을 함께 해줘야 한다는 식의 충고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중에 몇몇은 충고하지 말자 했으면서도 입 밖으로 분명히 꺼냈다.


매일매일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리세션 시간이 길어지는 게 너무 싫은데 아이들은 좋아한다. 나는 너무 덥고 혼자 돌아다녀야 되기에 시간이 참 안 간다. 내가 어떤 그룹에 들어가 보면 이미 그 애들은 나를 무시하고 자기 놀기 바쁘고 아무도 초대해주지도 않고 그들이 노는 규칙도 모르겠단다. 

아이의 말이 매일매일 아프면서도 내가 정작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어떻게 개입하고 어느 만큼 엄마가 해줄 수 있고 아이가 스스로 발견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이 쌍둥이 아이들, 만 8세 된 아이들이 나도 처음이라 뭔가 딱 떠오르는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는 지식으로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3일 째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지만 한동안 관계가 소원한 친구를 불러서 Playdate를 가졌는데 아이가 너무너무 좋아했다. 오랜만에 그 친구와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게임하며 게임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 남자아이들끼리 할 수 있는 재밌는 농담을 하며 키득거렸다.

보는 나조차도 너무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돌아가고 다시 잠자리에 들면서 내 아이는 오늘 너무 재밌었지만 내일 또 리세션 시간이 되면 그 친구는 자기 무리로 돌아가 축구하고 놀테고 자신은 축구하기 싫으니 또 혼자가 될 거라 걱정했다.

또 아이도 몇 명의 아이들에게 먼저 놀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들이 듣지 않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 학기는 혼자 외톨이로 지내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지만 정말로 내가 다 해줄 수 없는 것에 무력감을 느꼈다. 

아이는 갑자기 노트와 펜을 준비하더니 내일부터 리세스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혼자 놀 방법을 찾는 아이를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잘 맞는 친구를, 우리 아이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친구를 기도했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면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고 방법을 찾아서 내일 아침에 다시 나누자고도 이야기했다.


간밤에 아이는 내 침대에 새벽에 찾아왔다. 계속 악몽을 꾼다고 말했고 나는 아침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물었다.

"I lost..." 아이가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있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려는 듯.

"You lost home?" 내가 묻자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는지 꿈이 너무도 잘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괜찮아. 네가 집을 못 찾아도 엄마와 아빠가, 또 주님이 너를 찾을 테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학교를 가는 길에, 나는 아이에게 엄마가 찾은 충고가 될 수 있는 친구에 관한 영상을 보겠느냐가 물으니 아이가 싫다고 말했고 나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그 비디오들은 모두 삭제하고 그냥 처음 듣는 찬송가를 켜놓았다.

찬송가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라는 것이었는데 외로운 그대여 걱정 마요, 꿈꾸는 그 길을 또 걷고 걸어요.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그대 폭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비바람을 마주해야 할 때, 불빛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라는 어쩐지 우리 아들에게 맞는 가사의 찬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내 어린 시절, 친구가 없던 때가 많았다는 것, 친구가 계속 떠나가는 경험으로 나 자신을 돌아봤고 더 이상 친구에게 기대기보다 나의 단점을 돌아보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오히려 읽고 쓰며 놀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오히려 지금도 내 힘으로 안 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단점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며 엄마가 없는 곳에는 Holy Spirit이 마음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혼자 있어 외로울 때, 주님께 기도해 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아도 주님이 엄청 사랑하고 계시다고.

또, 나는 네가 너의 문제들을 잘 해결하고 이 시간에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아이임을 믿는다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귓속말을 해주었다.


차로 돌아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도였다.

정말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에, 오직 주님께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기도.

"주님, 이 아이는 제 아이이기전에 주님의 자식이니 주님이 더 잘 보살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저보다 주님이 이 아이를 더 잘 알고 더 능력 있으시니 이 아이를 잘 키워주세요."

그 말을 드리는 순간, 이상하리치만큼 갑자기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내 기도 말을 들으며 나도 다시금 깨달았다.

맞다. 이 아이는 주님의 아이지. 내 아이가 아니지.


그렇게 운전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 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늘 걱정에 전전긍긍하게 만들지만 이 아이가 내가 참 엄마로 거듭나게 해 주었고 오늘처럼 내 힘으로 안된다고 오직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하게 하는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내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 나를 깎기 위해 보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이 아들을 보내신 거지, 내가 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생각 속에서 우리가 몇 가지를 완전히 착각하고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하나는, 내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를 내게 맡겨주셨다는 것과

두 번째는, 아이는 나를 회복시키고 완성시키려고 주님 보내셨다는 것이다.


나는 자식을 위해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식은 나를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존재로 깨닫고 감사하며 기쁘게 섬기는 것. 그것이 '엄마'라는 자리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마음 가짐에도 솔직히 '엄마'는 참 어렵다. 하지만 엄마로서 방황하고 길을 잃고 헤매어도, 그 과정 중에 자식을 잃고 헤맬지라도 주님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고 내 자식을 찾아내실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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