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이 유대인들이 고집하는 할례문제를 비롯한 율법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Galatians 1:19-21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so that I might live to God.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I do not nullify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were through the law, then Christ died for no purpose.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율법은 어떤 사람도 의롭다 할 수 없다. 율법이 의롭게 될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믿음 안에서 믿음이 완성된다.
만약 예수님은 없고 율법으로 산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무 목적 없이 죽으신 것으로 만드는 꼴이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 존재의 본질이 바뀌고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죽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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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tians 3: 2-3 Let me ask you only this: Did you receive the Spirit by works of the law or by hearing with faith? Are you so foolish? Having begun by the Spirit, are you now being perfected by the flesh?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의롭다 칭함을 받은 우리가 거꾸로 율법을 지키고 그것을 기준 삼아 옳고 그르다를 따지고 논쟁하고 비난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다시 육체로 마치는 일로 돌이키는 일이 된다.
Galatians 3: 12-13 But the law is not of faith, rather “The one who does them shall live by them.” Christ redeemed us from the curse of the law by becoming a curse for us-for it is written, “Cursed is everyone who is hanged on a tree”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은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모든 인간은 율법을 가지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 같은 다른 사람에게는 잔인하게 죄를 묻는다. 우리 모두는 선악과를 먹고 죄와 선을 따지며 심판하는 죄성에 갇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죽였고 이 율법의 저주에 놓여있던 사람들이다. 그런 죄인에게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가 받고 있는 저주를 대신 받고 죽으시고 율법으로 선악을 판단하던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율법을 잘 지켜 내가 의로운 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죄인이지만 오직 예수님으로 의인이 되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3: 21Is the law then contrary to the promises of God? Certainly not! For if a law had been given that could give life, then righteousness would indeed be by the law.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But the Scripture imprisoned everything under sin, so that the promise by faith in Jesus Christ might be given to those who believe.
그러나, 성경은 죄아래 모든 것을 가두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율법과 하나님의 약속은 서로 반대가 된다는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만일, 율법으로만 가능하게 살 수 있었다면 반드시 율법으로 살 수 있겠지만 성경을 통해 죄 아래 율법을 따지는 인간을 가두었으니 이것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의롭다 하시겠다고 약속을 주셨다.
그렇다면 율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3: 23-24 Now before faith came, we were held captive under the law, imprisoned until the coming faith would be revealed. So then, the law was our guardian until Christ came, in order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faith.
믿음이 오기 전에, 즉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메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 즉 예수가 오실 때까지 갇혀있었다. 이와 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 믿음은 예수님이시다.
죄의 종이 된 우리를, 죄도 모르고 함부로 막살게 하시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율법으로 우리를 묶어 두신 것이다. 우리는 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부단이 노력하지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 인간을 율법 아래에 묶어두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초등교사 역할이다. 구약에서 주신 율법과 메시아에 관한 약속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주신 율법이다
25-27 But now that faith has come, we are no longer under a guardian, for in Christ Jesus you are all sons of God, through faith. For as many of you as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put on Christ.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slave nor free, there is no male and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And if you are Christ’s , then you are Abraham’s offspring, heirs according to promise.
믿음, 즉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즉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기다리며 죄를 알게 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약속으로 알게 하신 수단에 불과했다. 우리 모두는 예수그리스도, 즉 믿음이 오신 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 이름을 믿고 세례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었느니라.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우리의 죄를 알게 하며 예수님께로 인도하던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이미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율법을 지키며 자신은 의롭고 다른 사람은 정죄하고 죄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예를 들어, 아이들이 어릴 때는 미성숙하기에 아이들이 성숙한 인간으로 더불어 살아가게 하기 위해 부모는 끊임없이 뭐가 잘못된 것인가를 알게 하는 크고 작은 규칙을 만들어 가르치고 연습시킨다.
이것이 즉 초등교육, 율법이다.
아이들이 이제 그 교육을 이해하고 스스로 책임과 절제를 바르게 한다면, 초등율법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곧 그분의 죽음을 이해하고 성령으로 그와 연합하는 것이 온전히 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니 이제 초등율법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예수님과 연합하고 깊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우리를 하나님 형상으로 지으셔서 하나님과 물과 물고기처럼 연합해 살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 물이 아닌 육지에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며 사는 존재가 되었다. 즉 물에 대한 갈망과 욕구가 세상의 거짓말을 통해 진정한 물인 예수님으로 돌아가는 길을 방해받고 물질과 권력과 돈과 관계 명성 인기로 채워졌다.
죄가 들어와 주님과 분리되면서 내 욕구대로, 내 마음대로, 내 독단적인 판단과 생각으로 마구잡이로 사는 우리의 자율의지를 율법이 거울 되어 우리를 비추고 죄로 가르쳐 왔고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그분만이 그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이를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분 만이 나의 진정한 물이심을 증명하고 나를 회복시키시며 연합하시는 과정이 내가 태초에 잃어버린 주님 닮은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고 이것이 곧 성화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절대로 스스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 우리가 마음으로 얼마나 남을 속이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는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과 연합해 사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창조하실 때, 그 모습으로 완전히 회복하신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 하지만 인간은 계속 정의롭지 않은 기준으로 인간을 나누어댄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 인간이 해석한 율법의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나뉠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지 않는 것으로밖에 나눌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나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고 신분이 변화한 존재가 되었다.
죄성의 인간에서 의롭다 하는 인간으로 본질이 바뀌었다.
4:1 I mean that the heir, as long as he is a child, is no different from a slave, though he is the owner of everything, but he is under guardians and managers until the date set by his father.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In the same way we also, when we were children, were enslaved to the elementary principles of the world.
우리도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할 때, 이 세상의 초등학문, 율법 아래에 있어 종노릇 하였더니라는 말은 율법이 우리에게 죄를 가르치는 후견인과 청지기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4-7 But when the fullness of time had come, God sent forth his Son, born of woman , born under the law, to redeem those who were under the law, so that we might receive adoption as sons. And because you are sons, God ha set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crying , “Abba! Father!” So you are no longer a slave, but a son, and if a son, then an heir through God.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서 나게 하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 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또 시간 안에,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라, 아들의 명분과 죄인의 명분의 자리를 바꿔서 죄에게 값을 치르기 위함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의 자식이라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져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영이 있기 때문이란 증거다.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