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5. 먼저, 본질과 비본질/ 가치와 감정 구별하기

by Momanf

내가 얼마 전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나 조차도 깜짝 놀랐던 그 '사랑'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마음 아무 데도 그렇게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던 그 '사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마음에 그 사람을 향한 별다른 일은 없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예전에 영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동작동사와 상태동사를 가르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사용한 용어가 기억났다. 나는 '사랑한다' 하는 좋고 싫음의 감정들이 상태 동사라 생각했었는데 사실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하는 감정이 밀물 썰물처럼 밀고 들어왔다 밀며 나가듯 하는 동작동사와 같다는 것, 계속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내 감정과 마음을 믿어왔다. '얘는 ~~ 이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쟤는 ~~~ 래서 내가 싫다.' 나의 마음은 그 상태로만 머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내 감정의 차별로 관대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미워했다. 좋고 싫은 감정이 상태라고 착각하였기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그 상태에 맞게 사건을 왜곡했다. 자각하지도 못했다.

첫 단추가 잘못되니 계속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처럼, 내 감정을 상태, 즉 변치 않는 가치로 두고 일련의 사건들을 내가 나눈 좋고 싫음의 카테고리 속으로 고집스럽게 집어넣으며 그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정은 상태동사가 아니었다. 수시로 변하는,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 어느 순간 갑자기 찾으려고 해도 절대로 찾지 못하는 것처럼 수시로 변하는 것이었다. 감정으로 이루어진 '좋다, 싫다' 하는 분류는 기준이 되지 못했다. 감정은 동작처럼 오고 가고 움직이고 변하는 것이었다.

결과, 감정은 나의 판단에 절대로 도움이 안 되는 기준이었다.

내게는 변하는 '감정'이 기준이 될 것이 아니라 '가치'가 기준이 되어야 했다.

가치란, 물건에 붙이는 값어치, 어느 것이 귀하고 어느 것이 귀하지 않은지의 중요성을 매기는 척도이다.


성경책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며 적을 물리치고 평화를 유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리 속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이 어느새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지내면서 그들 속에 동화되어 주님을 떠났다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일이 반복되고 또다시 주님이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구원하시면 또 하나님을 저버리고 울부짖으면 또 용서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일이 성경책 전반에 반복된다.

우리의 가치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님'을 믿느냐 '세상'을 믿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왜 오셨는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며 누구이신지 그분의 정체성과 사역, 왜 우리에게 필요한가를 알게 되고 십자가를 이해하게 된다. 십자가가 삶의 중심이 되어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가치를 보고 그것에 마음을 둘 수가 있다.

'세상'을 믿는 것은 그와는 반대다. 완전히 반대되는 가치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 이겨야 살고 돈과 능력만이 자신을 지키고 자기 자신이 주인이기에 자신이 승리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 세상의 소위 성공했다는 기준으로 자신과 상대를 거듭 비교한다. 거기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한다. 변한다는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완전히 하나님과는 다른 가치관이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가치관에서 어느 한쪽에서 분명히 자기 노선을 정하는 것이 '본질'이다. 두 가지 중, 어느 하나가 더 값어치가 높다고 생각해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기본이 되고 사고의 모든 바탕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결정과 모든 중요한 일이 그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왜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는지, 누구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가치를 두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가치관이 발현되어 나올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에서든 그 가치관이 깊은 뿌리를 내린다면, 자신의 마음 안에서 성령의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자신을 인도하는 소리를 명확히 구별할 수 있다.

내 마음 소리에는 성령, 나의 목소리, 사탄의 목소리, 세상의 목소리 네 개가 있다.

네 개 중 하나만 성령이 이끄는, 내가 가치를 두는 소리고 나머지는 마귀의 소리다. 그렇다면 수시로 바뀌는 감정이나 생각은 내게 고정되어 있지 않는, 나를 유혹하고 나를 헷갈리게 하고 나를 흔들며 내 가치관을 끊임없이 무너뜨리고 가치를 지키려고 애쓰는 나를 영적으로 매일 바로서는 것을 방해하는 목소리다.


가치가 나의 본질이고 그 가치관을 흔드는 모든 목소리, 세상이 주는 생각과 내 감정, 사탄이 내 마음속에서 유혹하는 것들이 비본질이다.

비본질이 강력할수록, 나는 기본적인 것, 간단하고도 명료한 진리 위에 발붙이고 우뚝 서있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누구시고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정확히 집중하는 것. 그것이 가치관, 본질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질로 세상과 내 마음을 해석해야만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34. 이기적인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