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마음, 발행하는 마음

브런치 한달이 흘렀다.

by 만정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기 시작한지 한달이 흘렀다. 미처 완성 못한 초고들만 방치되어 있던 브런치 계정으로 부랴부랴 작가신청을 했다. 한번 심사에 워킹데이 5일이 걸리고, 여러 번 낙방한다는 말들이 있어서 서둘렀다. 결과는 26시간 정도 후에 받았다.


그 후엔 홀린 듯이 감자와 1년 동안 썼던 글들을 한글파일에서 브런치로 옮겨붙였다. 52편, 107 페이지. 내가 하자고 우겼으니 내가 한다고 했다. 난 감자보다 시간도 많으니까 당연히 내가 해야지. 아무렴. 자정을 넘기면서 매진했다.

미쳤지.

홀린건가.

그리고 목표한대로 밀리의 서재 출간 공모에 일찌감치 응모했다. 여기까진 생각했던 거 비슷하게 흘러갔다.


다음 목표는 감자와 공동작업을 유지하면서 개인작업을 띄우는 일이었다.


나 스스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점 중 하나는 어마어마한 표현의 욕구다. 나는 혼자 있길 좋아한다. 타인에 관심도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감자는 내가 연락하는 친구로 세(어쩌면 두... 아니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다. 너무 재밌는 사람이라서, 같이 있기 너무 즐거워서 스무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다. 만나자는 제안도 내가 먼저 했다. 물론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궁금했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같이 밥 먹고 웃고 떠들고 싶었다. 알고 지낸지 19년 째가 된 지금도, 감자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기가 불가능하다고 자주 생각한다. 내가 만난 제일 재밌고 이야기 나누기 즐거운 타인이다.


그런데 난 그렇게 재밌는 사람이 아니다. 성미가 까다롭고 괴팍해 누구와 어울리기 썩 좋은 사람이 아니다. 때론 일반적으로 호감 살 만한 행동하길 싫어하기까지 한다. 친구 삼기에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닌 데다 폐쇄적인 인간관계에 스스로 불편함을 못 느끼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자. 그 폐쇄적인 상태가 내겐 무척 편안하다.


다시 말해, 나는 소통의 욕구라는 면에서는 타고나길 금욕적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0에 수렴한다고. 그러니 SNS 계정을 열 일이 없지. 싸이월드는 했었다. 감자와 기숙사 언니들, 다 합쳐서 10명이 안되는 소수인원들이 드나드는 소박하고 협소한 장소였고 거기서도 나는 글을 썼다. 다 사라져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완전한 독백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독백이냐면, 나는 내가 대화를 빙자한 독백을 자주 한다는 사실을 무척 최근에야 인지하게 되었다.


표현이 향하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고, 스스로 재밌는 사람도 아닌데다 흥미로운 사건의 중심에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내게, 왜, 왜, 도대체 왜 이렇게나 큰 표현의 욕구가 있는 걸까? 난 표현할 게 없을 것 같은데 뭘 이렇게 표현해야만 할 것 같은 걸까? 쓰고 있는 지금도, 이렇게 표현하는 지금도 당최 이해할 길이 없다. 나참.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직업적으로 학교에 남고 싶었던 건. 연구에는 대상이 있으니까. 그럼 학교를 떠난 나는 무얼 써야 했을까. 영화. 엄청나게 많이 봤으니까. 음악. 좋아하는 음악이 분명하니까. 미술. 아름다우니까. 세상에 없는 이야기인 소설 같은 건 절대 쓸 수 없는 인간이지만, 저 말 없는 대상들, 수백년 전 죽은 사람들이 남긴 음악, 조각, 그림과 책들과 내가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써도 될 것 같았다. 무슨 말이냐면, 내게 쓰는 건 어차피 숨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의 딱 한 시기, 우울증으로 고전하던 그 때, 그러니까 완성하지 못한 초고들만 즐비하던 그때를 제외하곤. 그림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는 부를 줄 모르지만 난 뭐라도 쓸 수 있다. 잘 못 쓴대도, 뛰어나지 않대도 어쩔 수 없이 글은, 글쓰기는 그대로 나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심장이 뛰는 것처럼 글쓰기는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의 스타일과 리듬과 모든 것은 심장박동처럼 고유한 것이라서 아마 바꿀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소설이나 학술서에 비하면 마뜩치는 않지만, 쓸 수 있는 걸 어쨌든 써야 하니까, 분홍신처럼 멈출 수가 없으니까, 써야 한다면 영화, 클래식과 그 외 장르의 음악들, 그림과 조각들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육아할 일 없는 미혼에 안정된 연애에, 안정된 일자리, 안정된 건강상태.... 소재 삼기엔 너무 잘 살고 있었다.


그래서 썼다. 쓰고 나면 바로 다음 글을 시작해야 했다. 그걸 다 쓰면 그 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예기치 못한 건 글쓰기 밖에서 벌어졌다. 나는 내 글의 독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회 수와 라이킷 알람의 지옥문에 들어섰다고, 감자가 친절히 일러주었다.


젠장.


글쓰지 않을 땐 언제고 통계를 눌렀다. 자다 깨면 새벽 두 시고 세 시고 브런치 앱을 열었다. 좌측상단 삼선메뉴에 민트빛 동그라미가 없는지 살피고 대개 실망한 후 통계 버튼을 한 번 누른 뒤 다시 잤다. 자다 다시 깨면 이 짓을 반복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발행 버튼 누르기가 두려워졌다. 설레는 동시에 두려웠다. 발행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좋아요를 고대하고 글이 많이 읽혔음을 확인하고 싶어 애가 닳았다. 조회 수와 좋아요 수가 내게 말해주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지옥에 아직 머무는 중이다.


남자친구와 감자는 한 번은 지나가야 할 과정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러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내 글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 고맙고 선의로 가득찬 분들에게

내가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찾아가서 나도 읽고 좋아요를 남겨드리는 게 예의는 아닌지, 뭐라도 되돌려 드려야만 하는 건 아닌지, 대체 여기 프로토콜은 뭔지, 뭘 해야 하는 건지, 방향도 방법도 잃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게 현재의 상태이다.


이쯤 되자, 남자친구는 쓰기만 하고 통계 버튼과 지난 글을 열어보지 말 것을 권유했다. 쓰려고 했던 건데, 부수적인 일에 집중력과 시간을 빼앗기는 건 아닌지 내게 물었다.


흠, 확실히 난 뭔가, 불편했다. 난 써야 하는데, 조회 수와 좋아요 때문에 쓸 걸 못 쓰거나, 쓰는 방향과 분량을 달리 해야 하는지를 너무 심각하게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독자의 반응을 몇 가지 숫자 지표(조회 수, 좋아요 수, 구독자 수)로 제공하고는 그에 따라 내 글을 반성하고 전략을 바꾸라는 브런치의 데이터들은 사실상 그 정도로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는 절대 않는다.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숫자에 나는 너무 많은 신경을,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도 읽었을, 어쩌면 격려와 위로의 마음을 라이킷에 담아주실 친절하고 다정한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제 알게 되었는데,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어야 했던 것 같다.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퇴근길 택시에서 시작된 이 글이 그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걸 이제 알겠다.


딱 한번만 말씀드릴게요.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 빚진 마음으로 허둥댈 정도로요. 제가 되갚지 않는대도, 그게 무례래도, 양해를 구하지는 않을게요. 여러분의 친절과 따뜻함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많은 글을 토해낼 기운을 얻었던 게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제 글을 찾아주실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감사의 마음엔 변함이 없을 거예요.








하아, 마침내, 어쩌면, 어쩌면 좋아요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숙면의 나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