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두 달,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지난 토로(‘글쓰는 마음, 발행하는 마음’) 이후, 나는 거짓말처럼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라이킷과 조회 수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한 발짝 전이었단 말이다(보실지 모르겠지만 톨슈 작가님, 댓글에 묘약을 타 두셨던 것 같아요. 고마워요!). 자신감과 안정감을 되찾은 나는 몇 가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벌이지 않았을 일이었다고 맹세한다)은 일을 진행했다.
먼저, 사랑해마지 않는 필름클럽(씨네21 김혜리 기자님과 SBS라디오 최다은 PD님, 임수정 배우님이 함께 하는 영화 팟캐스트다)에 사연을 보냈다. 소중한 영화 보급소가 되어준 데 대한 고마움을 듬뿍 담아 ‘일요일엔 영화를’에 썼던 글 두 개를 링크했다.
며칠 후엔, KBS 클래식FM 명연주 명음반 청취자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다. 방송에서 청취자 게시판이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공교롭게도 내 매거진 ‘사랑하는 마음’에 정만섭 아저씨 편을 작성한 직후였다(‘장래희망은 정만섭 아저씨’). 팬심을 전달할 재밌는 기회다(이게 다 그놈의 재미 탓이다) 싶었다. 좋은 프로그램이고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는 감사와 응원의 글을 게시판에 올리며 또 브런치 링크를 달았다.
예상치 못한 국면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바라는 것이 없다고 공언하면서도 나는 필름클럽의 새로운 회차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혜리 기자님이 사연을 읽으며 나를 어루만져주고, 다은 피디님이 바흐에 대한 내 의견에 공감을 표해줄 바로 그 회차 말이다.
맙소사.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다.
정만섭 아저씨에 대해 쓴 브런치 글에는 직접 유입되는 통계가 눈에 띄게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아마 좀 고무되었던 것 같다. 일주일 후 나는 방송 청취 소감을 급히 작성해 브런치에 발행하고(날 것에 가까웠다) 그걸 청취자 게시판에 링크했다(‘새로운 사랑의 가능성(feat.명연주 명음반)’). ‘사랑하는 마음’의 취지에 맞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다음 날 방송에서 쳄린스키 인어공주(그렇다. 나는 디즈니가 아닌 인어공주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를 듣고 급기야 글을 하나 더 썼다. 이제 청취자 게시판 한 페이지에 내 글이 세 개 있었다. 이 순간이었다. 내 마음속 저울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었다. 한쪽에 모기가, 맞은편에 코끼리가 앉아있는 시소와도 같았다. 올라올 가망이 없었다. 코끼리가 앉은 좌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너무 나댐.
까불고 있음.
시끄러움.
나는 드러나지 않게 드러나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너무 크게 내 이름을 불러제끼고 있었다. 스스로가 벌인 일의 무게에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시끄럽게 스스로 이름을 호명하는 행위가 혜리 기자님과 다은 피디님, 정만섭 아저씨에게 개인광고처럼 읽힐까봐 너무도 두려웠다. 내 브런치 글을 읽고 알아봐달라는 광고 말이다. 나는 흔한 영화광, 음악광 중 한명일 뿐이다. 물론 내 글에 대한 필름클러버들과 클래식 FM 청취자 그룹의 반응이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브런치에 위치하고 있지만 내가 설정한 독자는 여기 더욱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그룹 전체에 나를 알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나는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과 동질(또는 동지)감을 느끼는 기자님, 피디님, 아저씨와 내밀하게 이 사랑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발설하고 보니, 이런 내 의도를 읽어줄 맥락이 허약하게 느껴졌다. 친밀함에 대한 요구 역시 부적절한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부적절한 소란과 친밀감 표현 때문에 정작 중요한 메시지들인 순수한 애정과 사랑, 고마움이 퇴색될까봐 잔뜩 겁을 먹고 허둥댔던 것이다. 아, 오늘에야 코끼리의 정체가 뚜렷해진다. 글이 절대 내 의도대로만 읽히지 않으리라는 깨달음. 그 무게였구나.
그렇기 때문에 다음 문장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 사태는 청취자 게시판에서 글을 하나 지우고, 마침내 필름클럽 새 에피소드에 내 사연이 소개되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 사이 나는 이수아 작가님이 쓰신, 자기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다짐의 글을 몇 번이나 읽고 댓글을 썼다 지웠다. 그 고민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고민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우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조매영 작가님의 아침 일기에는 댓글을 달았다 삭제했다. 나는 병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사람들이 우울증이라고 할 때 통상 기분의 문제로 오해하지만, 사실 기능 저하를 동반하기 때문에 약으로 거의 즉각적인 효과를 느낄 수도 있다고, 나의 끔찍한 기억력 감퇴와 집중력 저하, 통제력 상실은 약과 함께 일주일 이후부터 꾸준히 좋아졌고, 덕분에 나는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약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원인이 되는 문제에 대해 의사와 탐구하고 개선방안을 찾고 다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연습하고 복기하고 훈련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세탁소에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큰 과제인 상태 이상으로 심각해졌을 거라는 말도 드리고 싶었다. 당연히 이 글도 쓰지 못했을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썼던 댓글을 지웠다. 나와 같지 않으실 수도 있는데, 진단이 나와 다르고, 증상도 나와 다르고, 예후도 나와 다를 수 있는데 내가 작가님과의 거리 설정에 오류를 범해서(내 생각보다 분명 멀리 계실 것이다) 무례를 저지를까봐 두려웠다. 아는 척 오지랖을 떠는 것일까봐 무서웠다. 내 글은 이제 내 일기장에 혼자 쓰는 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기장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내 글은 완전히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듯하다. 글 쓰는 데 꼭 글 쓰는 연습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교류하는, 그리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의사소통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하려나보다. 그리고 좀 더 야무진 마음도.
똑똑. 코끼리야, 이제 엉덩이 좀 치워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