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님의 브런치북 ‘호주에서 바리스타’
나는 커피에 의존 또는 집착한다. 아침식사에 곁들여 반드시 에스프레소를 한두 잔 마신다. 올초 마침내 일리 캡슐 머신을 샀는데, 이로써 매일 아침 들르던 카페에 안녕을 고하게 됐다.
서소문 폴 바셋, 연남동 커피 리브레, 상암동 폴 바셋, 이제는 사라진 상암동 커피 템플, 합정 빈브라더스.
나의 커피 오딧세이에서 중요한 기점을 이루던 곳들은 이태리에서 온 캡슐 머신과 함께 기억 속의 옛 친구가 되었다. 지금으로선 커피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암동 베르비에 정도가 내가 출입하는 유일한 카페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가기 때문이다. 현재 내게 최적의 커피를 제공하는 곳은 우리 집이다. 로마에 있는 산 에우스타키오를 제외하면.
산 에우스타키오의 에스프레소는 내 궁극의 커피다. 샤케라토를 주문한 영수증을 내밀자 바리스타 두 명이 눈길을 주고받았다. 오늘 왜 이렇게들 샤케라토를 시키는 거야? 오십 년은 일했을 것 같은 쉐이커에 얼음과 에스프레소를 맡긴다. 머신이 쉐킷쉐킷 꽤 긴 시간을 요란하게 일한 후에 세계 최고의 샤케라토가 내 앞에 놓인다. 처음엔 설탕을 거절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반드시 원래 레시피대로 설탕을 요청한다. 모든 게 완벽하다. 네 번인지 다섯 번을 방문했지만 최애인 샤케라토와 에스프레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유가 든 커피는 시도도 못해봤다. 다음엔 반드시 그 주변에 숙소를 잡아 하루 두 잔을 그곳에서 마실 계획이었는데. 망할 코로나.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 로마에 있지 않은 나는 주로 일리 클라시코와 인텐소를 번갈아 마신다. 에스프레소 잔에 샷 하나만 내리기로 하지만 번번이 실패다. 한 잔을 비움과 동시에 두 번째 잔에 굴복한다. 아주 스트레스가 많은 날, 그러니까 극도로 출근하기 싫은 날은 세 번째 잔까지 내리는 자해에 가까운 행위를 자행한다.
나는 좋아하는 커피 맛이 컨시스턴트한 것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조엘 님의 브런치북 '호주 바리스타'에 언급되는 이 용어가 더 인상 깊고 재미있었다. 출근길 아침에 들르는 카페에서 매일 마시는 커피 맛이나 온도에 차이가 느껴지는 날엔 기분이 찌그러지곤 했다. 그냥 넘어가는 날도 있지만 그날의 커피 상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오늘은 탄 냄새가 좀 더 나네요. 커피 뒷맛에 찌꺼기 맛이 좀 나는 것 같아요. 올해 커피 작황이 안 좋아서요. 라든가, 최근에 머신 세팅을 변경했어요. 와 같은 이야기를 바리스타와 주고받으면서.
커피 맛 자체는 일정한 것이 좋지만 계절이나 기분,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즐긴다는 점에서 나는 호주 사람들과 다를 것이다. 양 많은 음료를 못 견디는 나는 아메리카노보다 에스프레소를, 라떼보다 마키아토를 선호한다. 술도 맥주보다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게 좋다. 가장 마시기 쉬운 건 마키아또다. 집에 거품기는 없지만 에스프레소가 담긴 에스프레소 잔 나머지 공간에 찬 우유를 채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뜨거운 음료라면 질색인 내게 더 맞는 방식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목이 없는 와인잔에 레몬 탄산수를 1센티가량 붓고 그 위에 인텐소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이것이 이번 계절 나의 커피 메뉴로 밝혀졌다. 베네데토의 달콤하고 자잘한 포말도 좋지만 씨그램 레몬 맛이 제일 기분 좋다. 탄산수 위에 에스프레소가 떨어지면서 만들어내는 풍성한 탄산 거품이 일품이다. 나만의 커피 샴페인이랄까. 스타벅스 커피 맛은 끔찍하지만 단 하나, 블론디 에스프레소 토닉 때문에 작년 여름엔 매주 스타벅스에 갔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꽤 컨시스턴트한데, 매주말 마셔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다 스타벅스가 나쁜 결정을 내렸다. 어느 날 그 음료가 메뉴판에서 사라진 후 나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에 토닉을 붓고 레몬을 곁들인 이 커피 음료 맛이 너무 그리웠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내 나름의 메뉴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요즘 조엘 님의 브런치북 ‘호주에서 바리스타’를 읽는다. 커피 중독자인 나는 카페인 과민반응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강요하여 몸을 괴롭힌다. 그러니 커피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밖에. 하지만 이 브런치북이 훌륭한 건 커피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다. 커피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손님과 사장님의 상호작용이 무척 훌륭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조엘 님은 뛰어난 관찰자이다. 보통 손님 역할만 해온 나로서는 나라는 손님을 대했을 내 바리스타들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에 만나다 보면 느슨한 유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산미와 내가 원하는 우유 온도, 우유 양을 기억했던 사람들. 그분들은 나를 어떤 손님으로 기억할까?
더 훌륭한 점은 손님과 사장님이 살아가는 호주라는 곳의 환경, 자연, 사회와 복지, 인구구성이 자연스럽고도 날카롭게 얽혀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읽다보면 호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또 호주라는 곳에서 카페라는 비즈니스를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호주의 손님은 카페에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제공하기 위해 바리스타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전달해낸다. 그리고 이런 밀도 높은 정보와 이야기는 왜곡이 없는 몸처럼 곧은 문체로 작성되어 있어 읽기에 거슬림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카페가 위치한 골드코스트처럼 시원하고 나긋하게 이어지는 문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12개 에피소드쯤 읽었는데, 아침 커피 마실 때나 잠자리에 누워 초코 까먹듯 하나씩 읽는 재미가 난다. 내겐 사회에 대한 통찰이나 정보제공 능력은 없지만 이 계기로 내 커피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화광, 음악광인만큼 커피광이기도 하니까. 좋은 글은 가끔 다른 글을 낳기도 한다. 이웃의 글을 탐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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