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의 We Are Young과 영화 '어바웃 타임'의 결혼식
올 1월의 이야기다. 코로나로 재택을 하다 간만에 거실 말고 회사로 출근길에 올랐는데, 월급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대략 120번째 월급이었다. 급여명세서에는 ‘10년 근속 포상금’이 찍혀 있었다.
나는 여섯 번째 월급부터 열일곱 번째 월급을 제주에서 받았다. 입사 첫 프로젝트 출근지가 한라산 중산간 소재 회사였다. 11개월 프로젝트 투입기간 동안 신제주 숙소로 퇴근하기 위해 고객사 셔틀버스에 몸을 의탁하곤 했는데 이때 아끼던 데이터를 써가며 Fun. 의 ‘We Are Young'을 들었다.
제주대학교와 다음 구사옥을 지나 시내 어딘가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매일 새롭게 절망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렇게 살다 인생 끝나는 건가. 맑은 날이나 눈 내리는 날이나 기쁜 날이나 슬픈 날이나 하루 8시간을 사무실에 갇혀서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테이블(DB라고도 합니다)에 값 넣고 빼는 궁리로 남은 생의 1/3을 보내며 좋아하는 음악도 못 듣고 책도 못 읽고 학교 도서관에서 영원히 추방된 채로 오로지 먹고살기만 하다가? 마르크스는 이미 산업혁명 시대에 모든 것을 예견한 것이다. 아니, 논리적으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난 망했다. 당시 내 용어사전 상의 이렇게를 풀어쓰려면 2주일 정도는 아무 노래도 말할 수 없는 데다 재미도 없으므로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좋겠다. 게다가 다 지난 일이다. 사전 개정판에서 이렇게는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직 먼 미래의 일. 끝이 정해진 책처럼 뻔할 앞으로의 30년 앞에서 절망하는 이십 대 젊은이 귀에 대고 네이트 루스는 속삭였다. 아니 소리쳤다.
오늘 밤, 우린 젊잖아.
그러니 세계에 불을 지르자.
우리는 태양보다 더 환하게 불태울 수 있다구!
노래 속 젊은이는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는 집에 갈 수 없을 정도로 고주망태가 되겠다고 몇 번이고 선언한다. 뭔가 잘못된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은. 지금 당장은 마셔버리겠다는 선언이다. 아, 이 얼마나 가볍고 무상한 한 줌짜리 젊음인가.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어리고 어리석을지는 몰라도 그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아니 스스로 저당잡은 나와 달리 말이다.
뮤직비디오는 노래 속 화자가 주장하는 현재에 충실한 젊음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파티가 한창인 술집에서 우리의 젊음들은 여자친구 머리를 술병으로 내리치고(놀랍게도 진짜로 산산조각 난다), 멱살을 잡고, 따귀를 맞은 입에서는 음료가 뿜어져 나온다(실제로 그 장면이 나온다). 머리끄댕이를 잡고, 레슬링을 하고, 화분이 날아가고(역시 정말로 날아간다), 상대방을 집어던진다. 누군가 도망치고 다른 누군가는 도망치는 자를 잡으려 달린다. 깨지고 찢어지고 부서지고 더럽히고 더러워진다. 이런 난장판은 톰과 제리 이후 처음이었다. 게다가 톰과 제리와 달리 이건 실사다! 와우. 난장판을 치워야 할 스트레스로 보기 이전의 마음을 재생시켜본다. 그 엉망진창은 순전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약간의 시각적인 반칙 혹은 마법이 작용한다. 슬로모션으로 펼쳐지는 엉망진창 난장판은 해방감과 낭만만을 마음에 남긴다. 별거 아닌 일에 젊음을 충실히 탕진하는 이 순간은 아름답고 영원하게 그려진다.
그들에게서 두려움은 찾을 수 없다. 깨지고 부서져 망가지고 엉망이 되어 있을 게 뻔한 다음 순간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말이다. 숙취나 청소 같은 것들은 감히 젊음에 대적할 수 없을 듯하다. 젊은이들은 배짱이 두둑하다. 이 용감함에는 근거가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그리고 그 시간만큼 기회와 가능성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달은 우리 편이야. 나는 달릴 이유가 없다고.
그러니 오늘 밤 누가 와서 나 좀 집에 데려다줄래?
천사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지.
그러니 오늘 밤 누가 와서 나 좀 집에 데려다줄래?
이젠 더 이상 이 노래가 내 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후회는 없다. 어떻게든 내게 주어진 시간의 일부를 확정지었다. 그래도 가끔 뮤직비디오를 찾는 것은 아직 내게 남은 시간을 위해서다.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엉망진창을 만드는 순간에 열중하며 거기에서 언제까지나 오로지 기쁨만을 느끼는 스피릿을 두둑하게 충전하기 위해서. 물론 술을 마시고 난장판을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지마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도 못지 않게 멋진 엉망진창의 사례가 있다. 시간을 과거로 돌이킬 수 있는 주인공이 폭풍우로 엉망진창이 되는 결혼식과 피로연을 고치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신랑 신부는 물론 잘 차려입은 하객들이 비바람을 맞아 꼴사나워지고 피로연장의 캐노피도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만 모두가 이보다 더 즐거워 보일 수 없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정한 인생의 즐거움은 완벽에 있는 게 아니라는 영화의 주장에 나는 더없이 동의한다. 그래서 지미 폰타나의 ‘Il Mondo’와 결합된 이 장면을 아끼고 자주 본다. Il Mondo만 들어도 그 해방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인생은 이런 거지! 하면서. 엉망진창의 쾌감과 의미를 잃고 싶지 않다. 결코 잊고 싶지 않다. 늙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재미주의자일 뿐이다. 아무런 소란도, 먼지도 일으키지 않고서는 재미가 없지 않은가. 언젠가 그 소란과 먼지가 가라앉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해도 나는 부지런히 먼지 일으킬 궁리를 한다. 나는 그저 사랑할 뿐이다, 이 삶을. 그러니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탕진하고 싶다. 지금과 오늘과 남아있는 모든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