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내가 산 책(또는 음반)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기억하며

by 만정

‘빨간책방’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든다. 나를 웃기고 울리고 감동시키고 감화시키고 변화시켰던 세 임자들, 그리고 책을 둘러싼 그들의 끝없을 것 같았던 대화의 빈자리는 심대하다. 게다가 아직도 나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빨간책방을 기념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연재를 시작한다. 나는 임자일 수도 없을뿐더러, 다른 임자 없이는 ‘책, 임자를 만나다’ 코너를 절대 할 수 없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개별적인 둘 이상의 개체가 낼 수 있는 화학작용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산 책’은 이동진 작가가 혼자 진행했던 코너다. 메인 코너는 아니지만, 애서가로 소문난 이동진 작가는 어떤 책을 왜 사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작년에 책과 음반 소비자로서 나라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다시 말해, 엄청나게 사들였다). 올해도 그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글감 떨어질 일은 없겠지.


무엇보다 (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유혹적인가. 책 내용을 소개할 필요, 정확히 이해할 의무, 꼼꼼히 분석할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책에 끌린 경위와 이유, 책에 기대했던 바에 대해 쓰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이게 바로 기획 의도다). 실제 내용이 기대와 달랐다거나 다 못 읽었다거나 이해를 못 했다고 해서 책에 대해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사놓고 다 읽지 않(거나 못한)은 책에 대해 무엇인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에서 ‘책’으로 지칭한 것은 모두 ‘음반’으로 호환 가능하다. 이 기획은 그렇게 활용될 것이다.


나는 좋은 독자는 못될지 몰라도 좋은 소비자로는 제법 우쭐댈 자신 있다(책과 음반에 한해서라면). 그리고 늘 그렇지만, 서문을 쓰는 순간, 한 단어, 한 문장, 한 줄에 불과한 이 기획을 세상에 내던지는 순간은 정말 짜릿하다. 가능성을 여는 행위는 언제까지나 날 설레게 할 것이다.


자, 그럼, 올해도 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