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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Dec 23. 2022

절묘한 희비극, 미아 한센-러브 감독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베르히만 아일랜드’를 봤다.한 계절이 지나도록 영화에 대해 콕 집어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은 이번에도 많았다. 아름다워서 위장이 찌릿하게 아픈 것 같았다. 올리비에 아사야즈 감독과 파트너인 감독의 자기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문인가 긴장도가 매우 높은 상태로 영화를 봤고 감정적으로 기진맥진했다. 나는 왜 영화 안팎의 결혼생활이 깨질까 안절부절하는걸까?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감독 인터뷰를 읽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공히 극중 감독 부부의 결혼생활이 ‘당연히‘ 곧 끝날거라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은 ’열려 있을’ 뿐이었다!) 전제한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이 지속될 것이며, 그게 비극일 이유도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결혼생활이 끝난다는 게 굳이 비극일 필요도 없는데, 영화 밖에서 이들이 곧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괜히 내가 아쉬워졌다.


돌이켜보면 감독의 전작 ‘다가오는 것들’을 바라보는 내 감정적 태도도 다른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극중 주인공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중인 것 같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철학 교사가 된 프랑스 여성이다. 자기 일에 확신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명망 높은 철학 교재 전집의 편집자로 활동한다. 철학 교사인 남편과는 십대에 만나 결혼했고 두 자녀를 두고 살고 있다. 심한 불안증이 있는 엄마를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외동딸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도 안정된 인생처럼 보인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이 겪는 일은 ‘객관적’으로 전부 상실이다. 남편이 (젊은 여자를 만나) 떠나고, 어머니가 갑자기 죽고, 편집자의 자리를 잃는다. 교사로서 애정으로 대했던 옛 제자는 보수적인 지난 세대로서 주인공을 규정하며 멀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비극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주인공은 이 모든 상실을 대면하고 받아들이고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계속 해나갔기 때문이다. 자기연민도 없이 말이다. 상실이라는 객관적인 비극이 주인공의 주관적 비극이 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관점과 태도가 희비극을 가리는 거라고,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전작 ‘에덴’은 한 청년이 자신의 열정을 따라 음악(아마도 EDM)과 그 음악을 둘러싼 세계(밤과 클럽, 불안정한 직업/경제적 지위를 포함한)에 발 다디고 완전히 잠겨 있다 벗어나기까지의 인생의 한 시기, 아마도 청춘이라고 할 시간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나는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청년은 마음이 이끄는대로 한 때를 산다. 거기에 물론 즐거움과 쾌락, 달콤함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 세계에서의 고통과 슬픔, 씁쓸함과 알싸함을 나는 이 청년이 모두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신체/정신적인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인 자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트랙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음악의 세계에서 보낸 한 시절이 이 청년 인생에서 우회로였는지 아니면 전체 여정의 한 부분이었는지 나는 말하기 힘들다. 그는 다만 그의 인생을 살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의 인생을 살 것이다. 음악의 세계에 기거하지 않았다면 소위 말하는 더 ‘평탄한’ 삶을 살았겠지만 그게 그 인생이 더 행복한 것이라고 결정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누구나 이 영화를 나처럼 희비극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건 자기가 가진 기본 관점에 따르는 결과 같은 게 아닐까?


나는 세 영화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각적으로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신은 없다고 생각한 장면이 많다. 그 아름다움은 다른 감독, 특히 남성 감독들에게서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감독만의 미적인 관점은 나를 그녀의 세계로 끝없이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덧붙여 그녀의 영화에서 내가 얻는 위안 혹은 감동은 인물의 태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어떤 영화도 비극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다음을 살아가려는 영화 속 인물의 마지막 모습에서 오히려 난 늘 안도한다. 그는 어쨌든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만약 작가(감독) 자신 마저 인물들과 자기 영화에 대해 비극의 느낌을 갖고 있다면, 그와 오히려 이야기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 설득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 자신이 숨겨놓은 희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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