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치아노적인 저녁
파도바 역에서 여유있게 기차를 기다린다. 외국에서는 플랫폼 찾는 법도 새로 익혀야 한다. 익숙한 모든 게 낯설다. 그게 싫지 않다. 변기 물 내리는 법, 수전에서 물 나오게 하는 법… 모든 화장실이 미션인 게 신경질 나면서도 재밌다. 기차가 정차한 잠깐 사이 승객이 플랫폼에 내려 담배를 피운다. 지금은 놀라지만 곧 이 나라에서 낯설지 않은 광경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기차 여행은 아직도 즐겁다. 낯선 자연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11월. 낮고 평평한 하늘이 6월 보다 온화한 색을 하고 있다. 나무와 집까지, 국외 여행자에게는 모든 것이 볼거리다.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은 소장품이 많지만 대표작은 역시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2019년에는 마침 성모승천이 복원 중이라 볼 수 없었다. 적잖은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간 마당에 주 방문 목적이 좌절된 것이다.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은 베네치아 재방문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복원이 끝났다는 소식은 여행을 결정한 후 확인했다. 어찌나 기쁘던지!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베네치아에 가면 ‘베네치아 회화’랄지 ‘베네치아 르네상스’ 같은 용어를 듣게 된다. 저 유명(하고 콧대 높은) 피렌체 회화와 대별하려는 모종의 노력이 느껴진다. 피렌체가 (미켈란젤로 식의) 구성을 중시한 데 반해 베네치아는 색채가 뛰어나다고 보통 소개한다. 그런 베네치아 식 회화, 색채의 끝판왕이 티치아노라고 나는 거칠게 이해하고 있다. 티치아노의 명성은 당대에 이미 국제적이었던 만큼, 피렌체-베네치아 구분을 뛰어넘은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티치아노는 여러 점 봤다. 그러나 어쩐지 여행책자에서 가장 내 마음을 끈 건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의 성모승천이었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해가 뜨거나 질 때 창밖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으로 이 작품을 보면 감동적이라고 했다. 적잖은 환상을 품고 이번에야 말로 작품을 만나러 간다.
성당에 가는데 길을 잃었다. 두 번까지도 이겨낼 수 있었는데 세 번째 같은 장소를 지나자 소름이 끼쳤다. 이건.. 빠져나올 수 없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인가. 아니면 베네치아식 농담인가. 아는 길이라고 자신감에 차서 걷더니 꼴 좋다. 겸손하게 구글 맵 앞에 무릎을 꿇어보자.
마침내 성당에 도착했을 때, 한참 동안 제일 가까운 자리 한 가운데서 성모승천을 바라봤다. 기대했던 감동을 받은 건지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그림이 멀고 작게 느껴졌다. 성모가 향하는 세계의 노란 하늘빛은 인간세계의 노을처럼 아름답다.
이 그림은 애초에 바로 이 자리에 있기 위해 그려졌다. 여러 이유로 다른 곳을 전전하는 운명을 겪었지만 결국 돌아왔다. 원래 장소에 있다는 게 그림에게 행인지 불행인지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림이 그려질 시기 성당의 의미와 목적이 오늘날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고, 유지된다 하더라도 종교가 아닌 관광 목적으로 성당에 오는 나 같은 인간이 많은 이 시대에 성당 제단화가 제자리를 지키는 것의 의미를 어쩐지 쉽게 단언할 수 없어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그림은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인간 세상을 초월하는 순간을 제공했을 것 같다. (그것이 단 한 순간일지라도) 충분한 성스러움을 말이다. 나 같은 비종교적 관광객이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고단한) 삶에 위안을 주고도 남을 그림이다. 예술이 그런 거 아닌가. 적어도 내게 그 순간, 이 그림은 그런 예술이었다. 내킬 때 이 그림을 볼 수 있을 베네치아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이 그림을 보며 예배하는 삶도.
이렇게 예술을 찬양하는 순간에도 실은, 그저 여행 계획을 차질없이 달성했다는, 보고자 했던 것을 마침내 봤다는 단순한 성취감과 예술적인 초월의 순간을 내가 과연 정확히 분별하는 건지 의심이 인다. 더구나 한달이나 지난 이야기를 쓰면서 좋을대로 미화하는 건 아닌지 자신을 검열하게 되는 것이다.
확인을 위해서 다음 방문에 다시 한번 그림을 보러 성당에 들러야겠다.
한편, 이곳은 내 사랑 도나텔로의 조각도 소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성당에 들르면 동네 유지들이 자기 예배당을 갖고 예술품으로 치장한 것을 보게 된다. 베네치아 어떤 집안은 예배당에 도나텔로의 세례자 요한을 소유했다. 부럽다. 5-600년 전 개인 소유 예술품을 내가 볼 수 있다는 데 늘 고마운 마음이 든다. 세례자 요한은 피렌체 오페라 델 두오모 미술관에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떠오르게 한다. 도나텔로의 인물들은 초췌한 순간에도 아름답다(그러므로 아름다우려고 작정한 인물들의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다).
벨리니의 아름다운 성모에는 이번 방문에서야 비로소 새롭게 눈떴다. 같은 곳을 거듭 방문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은 이번 여행에 반복될 요소이다.
이날 저녁은 아침에 동네 빵집에서 봐둔 빠네또네를 먹었던가보다. 2008년 연희동 리치몬드의 빠네또네에서 났던 럼주와 발효된 맥주 냄새가 아직도 선명하다. 이곳 빠네또네는 (의외로) 단 맛이 무척 진하다. 잘 발효된 빵 속살의 식감은 언제나 나를 웃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