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차,여행이라는 희비극: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오지은,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이봄, 2018

by 만정

최고의 여행기다. 다시 읽으면 다를까도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짧은 여행기의 모든 페이지는 여전히 내 웃음 지뢰밭이었다. 출퇴근 버스와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 거의 모든 순간 나는 참을 수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만은 막으려 애를 쓰며 웃었다.


여행자의 섣부른 편견이라는 가능성을 한 순간도 배제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를 시종 유지하면서도(그렇다, 작가는 모든 순간 자기 검열 센서를 작동시키는 게 분명했다), 자기가 경험하는 가장 구체적인 순간으로서의 나라와 도시, 거주자들 인상을 스테레오타입으로 일반화한다. 이 기법은 놀랍게도 (불쾌함보다는) 귀여움과 유머, 폭소로 승화된다. 이 ‘섣부른’ 일반화는 그 자신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동북아인”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줄곧 그녀라는 개별 인간으로 환원된다). 그렇다. 이 책에서 일반화는 자기 객관화의 특수한 기법이 된다.

다시 보니 유난히 많은 의성어가 또 다른 웃음 포인트. (그녀 식으로 말하자면,) 역시 가수인가. 모든 소리는 그녀에게 유의미한지도 모르겠다. 정성껏 활자화한 소리들이 그녀만의 고유한 감각 세계, 그 지극히 개인적인 세계를 상상하게 했다.


물론 이 책을 다시 읽은 건 기차 여행 때문이었다. 빙하 특급과 베르니나 특급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바로 그 기차 여행을 앞둔 지금, 책을 다시 열어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두 코스가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건 이 책이 여행을 대하는 어떤 일관된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 태도를 스위스 기차 어트랙션보다 더 극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은 후반부 이탈리아 여행이다. 특히, 기대를 품었던 친퀘테레에서 이렇다 할 아름다운 경치는 즐기지도 못한 채 응급실에서 전전긍긍하는 한나절이 백미다. 불안과 우울로 점철된 날. 여행지에서 너무나 있을 법한 이 불쾌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진가다. 다채로운 당혹, 실망, 그 모든 기대에서 어긋남이 잠시의 아름다움을 감싼다. 이 비율은 대체로 한 챕터에 한 문단을 제외한 전체와 한 문단이다. 대개의 여행에 대한 진실 아닌가. 아니, 인생에 대한 진실된 은유일지도 모른다.


나는 제법 계획대로 되는 여행 경험을 쌓아왔다. 운이 좋았다. 지독한 비행기 연착(2019년 프랑크푸르트였을 것이다)과 그보다 아주 약간 덜 지독한 열차 지연(2018년 여름 피렌체였다. 정말 더운 밤이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이모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을 경험해 봤고 비수기라 문을 닫은 관광지 앞에서 발길을 돌려본 적이 있지만(2015년 12월 비엔나는 어떤 의미에서 2022년 11월 소렌토보다 더 비수기였다) 그 정도였다. 소매치기도 201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저녁 엄마 핸드폰에 당한 게 전부다. 물론 예정에 없던 일을 잘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리고 대체로 안전한 계획에 기댄 여행 방식을 나도 모르는 새 구축해 왔지만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작년 봄에는 루브르 예약일 하루 전, 오픈이 연기되며 언제 오픈할지는 정확히 알려주기 어렵다는 이메일을 받아봤고, 작년 여름 겐트 제단화의 경우에는 예약 불가능한 슬롯이 실수로 열려 있었다며 예약 시간을 조정하자는 메일을 받아봤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사실 언제나 양쪽 마지막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 꽉 물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떤 에피소드도 여행을, 인생을 허무하게 만든 적은 없었다. 오지은 씨의 유럽 기차 여행과 달리. 또한 그런 일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일어나는 나 자신의 직장에서와 달리.

그러니까 나는 어쩐지 여행지에서 실제로 맞닥뜨리는 실망, 즉 기대에서 어긋남으로부터 안전했다. 이 여행기의 오지은 씨와 다른 부분은 그런 정도다. 반면 그 모든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 경험하는 다양한 불안에는 공감했다. 그 불안들을 여행의 일상적인 일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내게도 네 번, 도합 두 달 여의 여행은 너끈히 필요했다.

그렇다. 실망과 불안,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은 여행에서 한 몸이다. 그 지점이 웃음과 함께 잘 드러나는 이 여행기가 나는 여전히 좋다.


다만,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바, 이렇게 안 열리려고 저항하는 책이 전에 있었나 싶다. 정말이지 기를 쓰고 펼쳐지지 않는 책은 사실 한껏 좋은 종이, 활자뿐 아니라 사진과 그림이 아름답게 인쇄되는 종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흥미롭다.


오래간만에 오지은 씨 다른 책들을 찾아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여기도 저기도 아닌 우리들은: 베네치아의 종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