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론1. 번아웃이 일상화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를 위해 쓴 지침서

by sunday noon couch

*디지털로 긴 글을 꼭지별로 클릭해서 읽기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같은 내용의 책을 종이책으로 보실 수 있도록 출간을 하였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본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s://www.bookk.co.kr/book/view/93946


대학교 때부터 창업을 해 약 8년여간을 고군분투하며 사업을 운영해 왔다. 학교에서 전공한 것은 법학이었는데, 다른 문과 전공들에 비해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우리 학교는 경영학과나 신문방송학과 등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법학과도 매년 사법 고시 합격생을 120명씩 배출하는 등 나름 학교의 자랑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 학년에 법학과 학생이 약 300명 정도였으니 단순하게 계산했을 때 1/3이 사법고시를 패스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2학년 2학기부터 사법고시 준비 모드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같은 반 동기 중에는 1학년 때부터 바로 사법고시 준비 모드로 들어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법학과 건물에는 예쁘고 멋있게 차려입고 다니는 새내기들만큼이나 추리링 차림으로 고시 공부에 들어간 선배님들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대부분 그렇게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레 중앙 동아리나 외부 활동 등에 관심을 두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고, 2학년이 되어서도 그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사람들을 다소 한심하게, 아직 정신 못 차린 학생으로 보는 시선도 느슨하게 존재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아직 정신 못 차린’ 한심한 사람 역할을 맡았다. 공부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데에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고, 법학과가 아닌 다른 학과의 친구들이 가지는 진로나 경험들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며 고등학교 때 자유를 억압받기만 했던 시간들이 너무 괴로웠는데 그 시기를 이겨냈던 동력이 ‘원하는 대학 가면 진짜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는 것이었는데, 그 억눌린 자유에 대한 욕구가 대학교에 가면서 폭발한 것이다.


나의 창업은 그런 일련의 대학 생활의 끝자락에서 시작되었다. 창업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어렵기 마련이지만, 나의 경우, 창업에 관해 조언을 구할 선배들이 아예 없었다. 창업을 먼저 겪었거나, 그런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선배들이 계셨다면, 그래서 멘토가 한두 명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덜 힘들게, 우왕좌왕하는 시간이 조금은 더 짧게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건 나의 스타트업 인생은 남들은 피해 갈 괜한 고생까지 사서 한 것 같다. 많은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사법 고시를 통과하고 변호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 나가는 동안 난 알바들을 전전하며 몇 십만 원씩 모은 푼돈들이나마 고개 숙여 받아가며 창업의 길을 걸어갈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8년여 만에 회사를 매각하고 엑시트할 수 있었다. 보통 엑시트라고 하면 평생을 넘어 3대가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만큼 큰 부를 거머쥐게 된다고 하지만, 사실 나의 엑시트는 그 정도는 전혀 아니었고, 1-2년? 아껴 쓰면 2-3년 정도 쉬어갈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열에 아홉은 망하는 창업 판에서 처음의 시도치고 이렇게나마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결국 나는 잠시의 쉬는 시간을 마치고 나면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번 스타트업 인생을 8년 정도 살아보니, 더 잘 할 거라는 자신감만큼이나 그 길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다. 100억을, 1,000억을 버는 회사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창업은 정말, 너무, 무척이나, 아주 힘-들-었-다. 죽을 힘을 다해 문제들을 해결해 내고 있는데 왜 자꾸 새로운 문제는 끝없이 나타나는지, 사람 관리는 왜 이렇게 힘들고, 경쟁자들은 왜 그렇게 잘 하는지, 하고 싶은 것에 비해 자원은 왜 이리도 항상 부족한지. 돈을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빌리겠다는 데도 대출의 문은 또 왜 그리 높은지. 작년보다 올해 훨씬 더 버는데도 통장엔 항상 잔고가 부족하고. 번아웃이 일상처럼, 습관처럼 이어지는 날들.


이 책은 처음에는 그런 나를 위해 썼다. 창업 성공의 1원칙은 ‘존버’(존..심을 걸고 버티기?)라고들 하는데, 그만큼 시장에서 끊임없는 실패들 속에서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고 더 정교화해 나아가는 고된 길에 버티기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창업의 길로 나아갈 나는 20대의 나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떨어지는 나일 텐데, 그때의 내가 쓰러지지 않고 존버하려면 나만의 필승 건강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하우들은 단순히 그 당시 핫하거나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검증된 연구 결과에 따른 것들이어야 하고, 시간이나 돈이 무한대로 있다는 전제하에서가 아니라 시간이나 돈이 부족하더라도 그 제한된 상황에서나마 최선의 효과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잠 충분히 많이 자시고 건강하게 식사하시고 운동 많이 하세요’ 같이, 돈 많고 시간 많을 때에나 할 수 있는 조언들은 각박한 창업가의 삶에 하나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운 기준들을 바탕으로 찾아본 자료들을 정리하는 가운데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 지식들을 간단히 공유해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지인들마다 한결같이, 나중에 그 내용들 다 정리되면 자기에게도 꼭 알려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 말들을 계속 듣다 보니, 그럼 어차피 정리할 것, 나만을 위해 쓰기보다는, 이 지식들이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도록 책을 쓰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힘들었지만 창업의 여정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응당 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세로 돈도 많이 벌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책으로 돈 버는 건 스타 작가들이나 되는 것이라, 나는 그저 이 책이, 주 100시간을 일해도 끄떡’ 없어야 하는’ 창업가들이 그럴 수 있는 ‘존버 피지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물론, 이 책의 지식들을 모두 생활화한다고 해서 창업 과정의 피로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창업가의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무한대에 가까워서, 절대 0으로 되는 일은 없다. 이 책의 효용은 그러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조금 더 줄어든, 생산성 차원에서 조금 더 개선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제품이라고 보면, 이 제품은 결국 나 같은 사람들, 매일같이 찾아오는 멘붕을 이겨내고, 제한된 상황 속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하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창업가들로 대표되지만, 사실 극심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는 모든 현대인들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우리 모두 너무 지치지 말고 나아갈 수 있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