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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Sep 08. 2018

산젠인, 햇살도 빗겨가는 한적함으로

이끼가 소복히 덮인 일본식 정원에서 맛챠와 양갱을

작년 한 해에만 일본을 찾은 관광객수가 2천9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한국(1천3백만 명)의 2배가 훌쩍 넘는 숫자다. 여기에 아베 정부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관광객 연 4천만 명 시대를 열겠다며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내수침체를 걱정하던 일본 경제에 관광수입이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도쿄라면 긴자나 아사쿠사, 교토라면 청수사(키요미즈데라)나 아라시야마 등 주요 관광스팟에 놀러가보면 왠지 뜨악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인파에 휩쓸려 걷다보면 그 장소만의 특별함이 조금은 옅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산젠인에 가는 길 버스 차창 밖으로 찍어본 사진. 교토 시내를 벗어나 맑은 개울물을 따라 1시간 이상 달리다보면 오하라(大原)에 도착한다.


나 같은 걱정이 드는 분들꼐 이 곳 산젠인(三千院)을 소개한다. 이 곳은 햇살도 빗겨간다는 말이 딱 적당할 정도로 신기할만치 그늘이 많고, 덕분에 온 사방이 이끼로 소복히 덮인 사찰이다. 이끼밭 속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꼬마 동자승과 시선이 가는 순간 감탄사를 자아내는 멋진 일본식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산젠인은 교토 인근의 오하라(大原)라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교토역에서도 버스를 타고 1시간 이상 달려야 겨우 가볼 수 있다. 교토에 오는 관광객들은 보통 오사카에 숙소를 두고 교토에는 당일치기 또는 길어야 이틀 정도 머문다. 게다가 교토의 대부분 관광명소들이 4~5시면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하루 중 실제 관광할 수 있는 시간은 반나절 정도. 웬만해서는 이렇게 멀리까지 와볼 생각을 못 한다. 필자도 교토여행이 네 번째쯤 되었는데, 산젠인이 줄곧 궁금했으면서도 네 번째 여행을 와서야 비로소 가볼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훨씬 한적한 분위기다. 경내가 워낙 조용해서 다들 큰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도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일단 사람 수 자체가 많지 않다. 서로 조심조심 어쩌다 옷깃 정도만 스쳐가며 사찰의 고요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산젠인의 주인공. 어딜 가나 이끼가 소복히 덮여있어 따뜻한 느낌이다.

8세기 말에 지어져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목조건물을 둘러보다보면 마루에 앉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본식 정원을 꾸며놓았다. 도쿄에서도 아름답다는 정원을 찾아다녀 보았지만 이 곳은 정말, 시선이 닿는 순간 아,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잘 꾸며놓았다.


일본식 정원의 풍경. 사진에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해 아쉽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친구 설명에 의하면 일본의 정원은 드넓은 산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한정된 공간 안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산에는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키 작은 풀숲도 있고, 이끼와 바위도 있고, 개울도 있고, 그 사이로 푸른 하늘도 보인다. 이 모든것을 한데 모아 조화롭게 축약한 데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확실히 일본의 정원을 보면 아 예쁘다, 하고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완벽하게 다듬어진 모습에서 기분좋은 긴장감도 느껴진다. 일본 정원이나 한국 정원이나 다 아름답지만, 어딘지 결이 다른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맛챠와 양갱. 맛챠는 가루로 된 차를 저어 낸 것으로 거품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두 손으로 들고 호록호록 마시면 된다. 달달한 양갱과 궁합이 잘 맞는다.


인당 500엔을 내고 오챠석(お茶席)에 앉으면 정원을 바라보며 차 한 잔 할 수도 있다. 이런 명당 자리를 500엔짜리 동전 하나로 차지할 수 있다니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아무도 안 앉아있길래 이거 앉아도 되는건가, 하면서 쭈뼛쭈뼛 돈을 내고 앉았는데 친구와 내 모습을 보고 다들 용기를 얻은건지 속속 자리가 차 나중에는 뒷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 할 것 같아 조금 일찍 일어났다.


제대로 거품을 내 온 맛챠는 물론, 요지로 쿡 찍어먹는 양갱도 적당히 달고 참 맛있었다.


언뜻 돌부리 같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귀여운 동자승 모양이다.


이 곳의 상징 동자승. 이 곳 산젠인을 처음 추천해준 건 남동생이었는데, 고만고만한 동자승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참 사이좋아 보여서 한 시간도 넘게 서서 바라보았다고 한다. 당시 그 아이 관심사(연애)를 반영해서, 나도 그런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같은 풍경을 보고 필자는 다른 생각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유명한 동자승이 여기있는 줄 모르고 지나쳤다가 경내를 다 둘러보았다. 동자승을 못 보았다고 친구한테 말하니 아까 거기 있었잖아, 하고 다시 데려다주었다.


다시 돌아가 사진도 찍고 하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조그맣고, 땅에 눌러붙어 있는데다, 그나마도 이끼에 뒤덮여 바위 본연의 색깔조차 이끼에게 뺏겨버린 게 아닌가. 불상이라고 하면 으레 크고 웅장하고 심지어 금칠을 해 번쩍번쩍 빛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처님들과는 백만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듯한 이들 동자승을 보니 기분이 색달랐다.



언뜻 대단치 않아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들을 위해 마음을 담아 기도해주고 있을 것 같은, 이 곳의 이끼를 닮아 따스한 친구들이었다.



뭐 이런 연애를 하고싶다 든, 기도해줘서 고마워요 든, 산젠인은 관광도시 교토에서도 아주 이례적으로 따스한 고요에 둘러싸여 각자의 심상을 키워갈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다. 여름과 가을에 특히 아름답다고 하니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와보실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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