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육아”
최근 카카오TV에서 ‘며느라기2...ing'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중이다.이 드라마에는 상반된 성향의 두 며느리가 등장하는데, 한 명은 전형적인 k-며느리인 ‘민사린’이고 나머지 한 명은 명절 집안일에 당당히 ‘NO’를 외치며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던 ‘정혜린’이다.
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씨월드의 모습은 소름끼치게 현실과 비슷하다. 며느리를 하나의 존중받을 인간이 아닌 ‘귀한 아들의 악세사리’ 정도로 여기는 시어머니와 그것을 당연하다 방관하는 시아버지, 그 사이에서 지극히 효심 가득한 ‘진정한 남의편인 남편’이 결합된 구조가 바로 씨월드의 정체다.
이런 씨월드의 모습에 많은 여성들이 격하게 공감하고 분노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공중파나 케이블 tv 드라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회 100만뷰 이상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 방영된 시즌2 9회에서는 사이다 며느리 정혜린의 이야기가 전개 되고 있는데, 시어머니와 그녀와의 육아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주요 스토리다.
딸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당차고 쾌활한 그녀지만 육아로 인해 시어머니와 극심한 갈등을 겪은 뒤,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양자 택일을 해야 할 운명에 놓인다. 아직 그 다음 10회가 공개되지 않아 그녀의 선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이런 식의 고민은 워킹맘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커리어냐 vs 육아냐! 과연 그녀의 선택은 ???
나의 경우는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27살에 일찍 결혼을 했고 2년만에 예쁜 첫 딸을 얻었다. 너무 기뻐 눈물이 났다. 누군가 그랬다. 아이를 낳은 뒤 1년간 엄마의 뇌는 마약을 한 상태와 비슷하다고. 내가 마약을 먹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정말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도파민이 품어져 나오는지 얼굴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그만큼 깊다고 했던가. 그 기쁨의 크기 만큼 고통이 함께 왔다. 겪어보지 않은 신체의 변화가 매우 힘들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생명체는 나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시간 마다 깨서 젖을 달라 울며 보챘고, 잠시라도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동네가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늦은 저녁 남편이 오기 전까지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샤워를 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을 마음 놓고 가지도 못했다.
감사하게도 회사는 1년 간의 넉넉한 육아휴직으로 나를 배려했다. 하지만 나는 4개월 만에 백기를 들고 시댁에 아이를 맡긴채 회사에 복귀했다. 둘째를 낳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7개월만에 두손 두발 들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아침마다 헤어지는 게 가슴이 찢어졌지만... 나는 모질게 아이를 시댁과 친정에 맡기고 회사에 복귀했다. 더 이상 집안에서 아이와 단둘이 그렇게 살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댁과 친정에서 아이를 잘 돌봐주셨다. 유아기 시절에는 부산의 시댁에서 아이를 돌봐 주셨고, 어린이집 갈 정도의 유아기(약 24개월)가 된 이후엔 친정 엄마에게 인계 되었다. 그 당시 회사에는 나와 함께 일했던 워킹맘이 6명 정도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라고 했다. 조선족 도우미나 종일반 어린이집이 아닌 시댁과 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나의 상황이,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누릴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여성 동료들은 안타깝게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공이 없었던 것 같다. 계속되는 야근과 해외 출장을 그들은 견딜 수 없었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는 모든 종류의 바이러스를 다 경험해 보려는 듯 계속 아팠고, 그녀들은 육아 문제로 남편들과 날마다 말다툼을 해야 했다. 약 1~2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그녀들은 결국 차례 차례 커리어를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어 갔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나만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은 절대 해서는 안 되고, 설사 운이 나빠 결혼을 했더라도 아기를 절대 낳아서는 안 될 것 같다.’ 라는 독한 말을 한다. 주변에서 들리는 결혼과 육아에 관한 이야기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한 MZ세대로서는 ‘나를 상실하게 될 것 같은’ 결혼과 육아를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가?’ 혹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결혼하여 아이를 기르는 것!’ 이라고 말할 것이다.
‘쳇! 당신은 운 좋게 부모의 후원을 받을 수 있어서, 그런 한가로운 소리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다양한 요리를 맛 보듯이, 인간으로 태어나 삶의 희노애락을 골고루 맛보는 것도 참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이 ‘내 인생은 그저 달달하고 담백한 맛’으로 평생 사는게 편하고 좋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매운맛도 보고, 시큼달달한 레모네이드도 먹어보고, 톡쏘는 초정리광천수도 맛보고, 가끔 씁씁한 맛과 비리고 고소한 맛도 느껴보고 ..... 다양한 삶의 경험을 다채롭게 맛보고 싶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 생명을 키워내는 최고의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면 어떨까 ?
나는 그랬다. 내가 가진 자원과 능력은 한정적이지만, 느끼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워킹맘임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도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아이를 낳으며 느꼈던 그 신비스러움과 환희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뒤 사람 자체를 보며 느끼는 존귀한 감정은,뭐랄까 마치 뇌가 리셋된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의 세계관이 너무 달랐다. 가끔은 아이를 못 낳는 남자들이 안타까울 정도다. 이런 기분을 못느껴보다니 말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늙고 힘이 없어졌을 때 진정한 나의 편이 되줄 사람은 내가 낳은 자녀들 뿐이다. 만약 부모, 친구, 배우자가 다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면 누가 나를 돌봐주겠는가? 그리고 내가 죽은 뒤 나를 거두어 장례라도 치뤄줄 사람은 내 자녀 외에는 없다.
다행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울 때는, 육아에 대한 사회적 정서가 지금만큼 호의적이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선입견을 가진 기업들이 더 많긴 하다) 또한 관련 정부 지원 제도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육아서비스와 정부 지원 제도가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워킹맘들에게 특히 필요한 것이 베이비터시터 즉 돌봄서비스인데, 내가 한참 유아기와 초등시절 아이를 키울 때는 국가지원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물론 부분적으로 정부차원에서 지원해주는 뭔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이용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사용자가 너무 많아 감히 신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란다'나 ‘째깍악어'와 같은 상용 돌봄 서비스가 활발히 운영중이다. 이 둘은 육아가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것을 해결하고자 뛰어든 M세대 워킹맘들이 만든 스타트업 회사다.
‘자란다'의 경우 약 5~13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터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본적인 돌봄뿐 아니라, 검증된 선생님들을 통한 다양한 놀이학습도 하고 있어서 젊은 엄마들에게 인기가 많다.
‘째깍악어'는 동일한 시터 서비스를 제공하나 조금 더 어린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보인다. 돌봄 대상은 1세부터 초등아이들까지라고 되어 있으나, 컨텐츠 자체는 유아기 아이들에게 좀더 적합하다.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컨텐츠를 서비스 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빌리지베이비'라는 회사인데, ‘베이비빌리'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초보엄마들을 위한 다양한 컨텐츠와 서비스가 많다. 핵가족화된 사회를 살면서 육아와 관련된 문제를 홀로 해결해야 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다양한 육아 정보와 도움을 주고 있어 큰 인기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런 회사들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게 무척 힘든데, 충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서비스들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나는 일하는 게 좋다. 일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며 하루하루 깨닫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하지 않은 실수 때문에 비난을 받는 억울한 상황은 참 견디기 힘들다. 또한 나와 성향과 맞지 않은 사람을 대하거나 그들과 일할 때는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과하며 나는 배우고 느끼며 성장한다.
나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굳건히 믿는다. 만약 엄마가 여유가 없어 몸이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면, 어떻게 다른 생명을 온전히 돌보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산소마스크를 보호자인 어른이 먼저 쓰고 , 그 다음 아이를 씌워야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내가 없으면 아이도 없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쩔수 없이 내가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는 아이의 이슈들을 챙기고, 일하면서 가족을 돌보다 보면 어쩔수 없이 나는 사라진다. 그 때문에 사실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느라기2...ing’ 드라마 속의 정혜린이 커리어와 육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가 조금만 더 이기적인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일하는 엄마도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가끔은 힘겹지만, 그게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