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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부 Mar 20. 2021

<당신은 왜 걷고 있나요?> 라몽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


라몽은 스페인 사람이다. 아래위로 군복을 입고 다니고, 식당엔 가지 않고 혼자 빵과 과자를 먹는 것으로 봐서 돈이 넉넉한 친구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이전에 군인이었다고 했다.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쉬운 영어 단어로 우린 대화했다. 어제는 배고픈 나를 위해 알베르게에 남아있는 파스타를 삶아 주고 케첩을 뿌려주었다. 삶은 파스타에 케첩 소스일 뿐이었지만, 정말 배고파서인지, 알단테로 적당히 삶아진 파스타가 맛이 있던 것인지, 그 상냥한 마음이 고마웠던 것인지 정말로 맛있는 파스타였다. 그는 서른다섯 살이다. 



라몽! 너의 이름은 참 쿨하게 들려. 멋진 것 같아.

라몽? 내 이름은 내가 어렸을 때 너무 큰 이름이었어. 어른들은 나를 '라—몽!'이라고 불렀어.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 인생과 마찬가지로.

그래? 난 너의 이름이 너무 멋지게 들리는데. 라몽! 너무 쿨해. 정말 멋진걸? 마음에 들어.


라몽이 내게 물었다.

넌 행복해?
나는 멈칫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응 행복해. 지금은.
그럼 예전엔?

음. 아니. 전혀. 하지만 지금은 분명 행복해.

그럼 이 길이 끝나고 나서도 행복할 것 같아?

음.. 잘 모르겠지만, 응 그러고 싶어.

응 그래.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어.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될 거야.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질 거야.

응. 우리는 치유하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어. 나도 우리가 더 큰 사람이 되면 좋겠어. 길은 우리를 치료해 줄 거야.

응 맞아. 그럴 거야.

너 몇 살이야?

나 스물일곱 살. 너는?

나는 서른다섯 살. 늙었어.

아니야 우린 젊어. 난 우리가 아직 젊다고 믿어. 너도, 나도. 우리 이 길을 걷고 있잖아. 그리고 이 길이 끝나면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될 거야. 정말로.


그날 나는 등산화가 잘 맞지 않아 발목을 다쳤고, 더 걷지 못했다. 그를 먼저 보냈다.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부르고스에서 우린 다시 만나게 되었다. 라몽의 신발도 밑창이 떨어지는 바람에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고 우린 부르고스 데카트론에 같이 가기로 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라몽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까미노에 왔냐는 이야기에 처음 만난 라몽은 이전에 단지 for health라고 대답했었다. 그 뒤로 하루 저녁은 같이 파스타를 해 먹고, 또 아침에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또 같이 걸으며 가까워지고, 오늘은 데카트론에 같이 가며 조금 더 서로의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오프 더 레코드의 진가는 역시 친해진 다음에야 나온다.


라몽이 물었다.


너 왜 헤어졌어?

그 사람한테 새로운 사람이 생겼거든.

아이고,, 오래됐어?

아니 고작 지난 1월 28일이야.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힘들었고, 공황도 왔어. 너무 살고 싶어서 요가를 했는데, 요가를 하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또 왜 여기 와 있는지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그런데 아무튼 요가를 하다가 갑자기 I have to go Santiago. I don’t know why. but i have to go there.라고 생각했지.

그래 그거야!! 너 나랑 되게 비슷한 이유로 왔구나!

너는 왜 왔는데?

나는 여기 오기 전에 내 삶을 끝내고 싶었어. 죽고 싶었어. 내 삶은 정말 거칠었거든. 쉽지 않았어.


M 언니도 그랬는데 라몽도 비슷한 단어를 썼다. My life is not easy. It’s very turf.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돼?

내 아내가 내 친구랑 퍽 했어.

응? 나 잘 못 들었어. 뭐라고?

내. 아내가. 내. 친구랑. 퍽, 했다구.


사실 라몽의 영어 발음은 썩 좋지 않다. 문장 구사력도 조금은 떨어져 단어로 대화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내 눈치 없음과 영어 듣기가 문제였다.


뻑이 뭐야? 뻑? 퍽?

아이고 이 눈치 없는 인간, 나는 그때까지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몽은 뭔가를 다시 떠올리기 굉장히 괴로운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팔 동작 뻐큐를 보여주었다.


너 fuck 몰라? Fuck?

오 마이 갓. 네가 말하는 게 섹스야?

응.

... i am sorry.


보통 영어로 이런 상황에서 아임소리라고 하면 유감이야 정도겠지만, 이때 나는 진짜로 미안했다. 눈치 없이 못 알아들어서 그걸 계속 말하게 했네.


나 너 기분 알아. 너 잠도 못 잤겠다.

응.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어.

응. 알아. 나도 그랬거든.

나도 그랬어. 너무 살고 싶어서 여기에 왔어. 내 삶은 결코 쉽지 않아. 정말 쉽지 않아.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았다.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먹먹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맴돌았다. 데카트론에서 새 신발을 산 뒤 서둘러 돌아왔다.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원래도 미사는 몇 번 안 드려 봤는데 심지어 에스파냐어로 하는 미사를 알아들을 리 없었다. 하지만 미사 내내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라몽은 이혼을 위해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덟 살, 다섯 살 어린아이들이 생각난다며 더욱 괴로워했다. 자기는 열심히 매일 일만 했다고 했다. 돈을 벌어 아내의 대학 공부까지 시켜 주었다고 했다. 그랬을 것 같다. 라몽은 좋은 사람이니까. 그는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기를 매일 때렸고, 매일 맞았다고 했다. 엄마는 자기를 돌보지 않았다고 했다. 십 대가 끝날 무렵 그는 집을 나왔다. 그의 상처가 안쓰러웠다. 왜 그가 자기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했는지, 왜 자기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같은 방식의 행동을 하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내를 때릴 수도, 용서할 수도 없던 그는 삶을 증오했고 죽고 싶어 했지만, 그 모든 선택 대신 자기의 짐을 짊어지고 이 길을 걷는 것을 택했다.


대화를 마친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말려 있는 흰 종이를 풀었다. 그리곤 다시 담뱃잎을 4등분으로 나누어 갈색 종이에 다시 말았다. 고향에 있을 때 나는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웠어. 지금은 하루에 딱 네 번만 피고 있어. 딱 한 개비를 4개로 나눠서.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천천히 계속 담배를 끊어 갈 거야.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일까?

그 애는 늘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봐 두렵다고 걱정했다.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없어.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과,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우리는 우리가 매일 하는 선택과 행동으로 우리가 바라는 어떤 형태의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 거고. 좋은 사람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과거의 가정사와 고통스러운 현재 상처 속에서도 라몽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기에, 그 노력이 얼마나 용기 있는 것인지 잘 알기에 나는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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