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율과정,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다

- 교사가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 아이들의 삶과 닿았을 때 일어나는 일 -

by 햇귀쌤


이른 봄, 빠르게 지나치는 길가에는 듬성듬성 움튼 연둣빛 잔디 위로 하얗고 노란 무엇인가가 흩뿌려져 있습니다. 여름 잔디가 푸르게 빛났다가 가을바람에 누렇게 시들었다가 겨울눈에 하얀 밭이 되었다가. 그들이 누구인지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그들을 잡초라고 불렀거든요. 그들이 무성해지면 누군가 깔끔하게 예초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른 봄꽃들이었을 그들은 어린 시절 제게 그저 잡초였습니다.


어느 해 봄, 발을 멈추고 키를 낮추어 들여다보았을 때야 하얀 것은 냉이요, 노란 것은 꽃다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이름을 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비교사로서 바쁜 마지막 해, 어느 교수님이 내준 학기 과제 때문이었습니다. 과제 덕에 야생화를 촬영하는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름난 공원들을 누비고 가파른 산을 쉼 없이 올랐습니다.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피고 지는 많은 잡초들에게도 저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요. 이름을 알게 되자 그들은 제게 일개 잡초가 아닌 귀한 꽃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출처] 김춘수의 꽃에서 일부 발췌


김춘수 님의 꽃은 그저 시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된 삶의 진리가 담겨있었습니다. 제게 꽃이 된 그들은 실수로라도 밟고 싶지 않은 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관심만큼 주변을 봅니다. 일상적인 공간이 주는 의미는 그래서 매일 같을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길가의 꽃들도 분명 소중한 하나의 생명이었으나 그 이름을 알고 친구로 여기기 전까진 지나치는 길가에 핀 작은 꽃이었습니다. 그것도 운이 좋으면 작은 꽃이지, 누군가에게는 평생 때가 되면 예초작업을 해야 하는 잡초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계기로든 관계 맺기가 시작되지 않고서는 주변 환경에 눈을 뜨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다행히 야생화와 친구가 된 예비교사는 김포의 한 자락에 햇귀마을을 꾸렸습니다. ‘햇귀’는 ‘해돋이 때 처음 비치는 햇빛’이라는 뜻의 옛말입니다. 제자들이 세상의 어두운 밤을 걷어내는 첫 햇빛처럼 귀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당찬 새내기 교사의 포부였습니다. 새내기 교사는 첫 햇귀들에게 당연한 듯 야생화 친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햇귀마을에서는 선생님도 햇귀들도 모르는 사이 생명존중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환경을 더 공부하게 된 햇귀마을 선생님은 학교에서 마을로, 우리 집에서 세계로, 우리나라에서 지구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작하며 햇귀들이 환경에 눈을 뜨는 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실천하였습니다.

환경교육이 하고 싶어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교육과정 재구성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햇귀들의 선생님은 20년 차 중견 교사가 되었고, 환경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유난히 더운 여름, 예년 기록을 갈아치우는 가뭄 또는 장마 등 우리가 이상기후라 부르던 현상은 어느 순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계절 감각을 잃기는 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봄꽃은 더 이상 봄에만 피지 않습니다. 환경교육은 어느새 필수적인 의무교육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꾸준히 환경교육을 진행한 사례를 나눠달라는 강의 요청이 많아졌습니다.


'환경교육, 어떻게 하는 건가요?'

'어떻게 해야 환경교육 잘할 수 있나요?'

'생태환경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탄소중립학교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요?'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환경교육을 이론적으로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이미 교육의 내재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선생님들이라면 아이들에게 환경에 눈을 뜨는 순간들을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학교자율과정(경기도 버전,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의 학교자율시간)이라는 교육과정에서의 여백을 얻었습니다. 아이들의 삶에서 필요로 하고 교사가 즐겁게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의 계획과 운영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교육과정이야말로 교사의 전문 분야입니다. 학교자율과정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지금, 교사의 교육적 상상력이 모든 교육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부터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담아 교사 스스로가 도전하고 즐기며 실천하면 누구라도 환경교육을 쉽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환경교육시간에만 환경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교육만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교육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치가 녹아있어야 하고, 다양한 분야의 교육이 우리가 바라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독서를 사랑하는 선생님은 책과 함께, 영화관람이 취미인 선생님은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에 관심 있는 선생님은 소프트웨어를 다루며, 운동을 즐기는 선생님은 체육활동 안에서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나의 아이들과 우리의 교실 속에서 담아가면 그것이 바로 환경교육, 기후위기 대응교육, 탄소중립교육, 지속가능발전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선생님의 관심 분야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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