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교사 연구년 이야기
'교원대 파견을 다녀왔으니 내 인생에 연구년은 없겠구나'했던 생각과는 달리 부활한 연구년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파견 다녀온 게 벌써 17년 전. 음,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구나...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참고로 경기도는 2023년부터 연구년이 부활했다. 이전에 시행되었던 연구년에는 제외대상이었기에 남의 나라 얘기구나하고 흘렸던 연구년이다.)
환경교육 석사과정 파견근무에 이어 경기 교사 연구년까지, 운이 좋다고 말하기엔 참 바쁘게 살았다.
이것저것 기웃거리기 대장인 내가 환경교육이란 한 우물 파기를 놓지 않았기에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복이 많은 자는 쉽게 선물을 풀어볼 수 없는 법인가보다.
작년 11월 연구년 최종 합격 발표를 받고 나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내년에 연구년이니까'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지도 못한 분들마저 '연구년이니까 좀 여유롭지? 이것 좀 해줘.' 하셨다. '아직 저 연구년 아닌데요?'라는 말이 몇 번이고 입 안을 맴돌다 사라졌다. 언제 거절이란 걸 해봤었나... 내 마음 편하려면 차라리 기분 좋게 해버리는 것이 나았다.
학교는 바쁘다. 아마 뭐가 그리 바쁘냐고 묻는다면,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귀찮을 정도로 바쁘다.
십년 전쯤까지만 해도 6월과 11월은 그래도 한시름 놓고 수업을 했었던 거 같은데, 요즘 학교는 여유로울 때가 없다. 끊임없이 일은 더해지고 요구하는 의무는 쌓여만 간다. 대부분의 교사는 사명감은 둘째치고 성격상 이걸 대강도 못한다. 늘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하고 싶은 욕심은 아직 버리지 못했다.
쉬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다. 격렬하게 쉬고 싶었다. 번아웃은 이미 왔다갔고, 정신력으로 버텨도 몸은 지쳐갔다. 학교는 그 정신력마저 흔들어댔다. 그럼에도, 그 바쁜 학교생활을 하면서 제안받은 수많은 외부활동을 해왔던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시켰다면 이미 못한다고 두손두발 다 들었을 거라고(사실은 그러지 못할 거면서), 고생을 사서 한다고 스스로도 생각하니까 말이다. (참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은 어쩔 수 없나보다. 중년이 되어서도 아직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연구년 대상임을 알았을 때 반드시 도전할 거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하지만 이미 알았다, 학교 업무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활동을 쉴 생각 따위는 없었다. 연구소도 연구회도 교재 개발도 지속할 거였고, 도교육청 위촉장은 이미 25년까지인 것들이 2개나 된다. 정책연구인 만큼 학교 환경교육 지원 활동도 결국 계속할 것이다. 내게 연구년은 무언가를 새로 연구하는 게 아닌 이미 하던 활동을 계속하는 해이다. 다만 그걸 버거울 정도로 숨가쁘게 해치우며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아도 될만한 여유가 생겼을 뿐이다.
내 역량이 작아서인지 신경써야 하는 일이 넘쳐나니 하나둘씩 상대적으로 신경쓰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 아이들은 자기 일을 잘 해주지만, 엄마가 이 정도로 바쁘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은 챙김을 당연히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아이들은 항상 바쁜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다. 바쁨을 핑계로 그동안 소홀했던, 교사가 아닌 내 역할에도 충실해야지... 큰딸로도 엄마로서도.
하지만 내게도 연구년의 로망은 존재한다. 초등 담임은 퇴직 후에나 꿈꿀 수 있었던 그런 것들 말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늘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그림이라던가, 바쁜 와중에 놓지 못했던 글쓰기라던가. 게다가 연구년이 확정되고서 환경교육사든 박사과정이든 고민만 하던 것들도 우선 다 질러놓았다. 그림책 작가수업도 신청했다가 취소되는 바람에 조금 미뤄졌다. 이건 미지의 영역, 새로운 게 더해지긴 하겠다. 참... 유난맞기는 하다.
지난 주에서야 세부적인 운영계획이 나왔다. 연수원이 통폐합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수원도 가깝지 않다 생각했는데, 가장 우려했던 이천까지 오가게 생겼다. 요구하는 게 많아지는 걸 보니 교사 연구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 연구년을 어떻게 바라보든 학교에서처럼 여전히 내 일을 묵묵히 할 거다. 나처럼 유난스럽게 바깥으로 보여지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교사의 경험은 모두 교육이 된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올해 연구년이 아니었으면 억울해서 울었을 만큼 겨울방학을 달렸다. 학기보다 더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거 같다. 3월이 다가오니 연구년이 이제야 좀 실감난다. 메신저창에 쌓인 메시지를 보면서 연구년이 아니었으면 해야했을 2월의 업무들이 새삼 많았음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하는 법.
'오, 연구년이라며?'하면 '좋겠지? 나 연구년이야~' 너스레도 좀 떨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