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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Oct 06. 2020

세번째 팔을 창조하다, B.A.T

로컬리콜 시리즈 토크쇼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ep.3

인간의 머릿속엔 존재하지만 물리적, 신체적 한계로 구현해 낼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는 기계. 바로 로봇이다. 지치지 않고 정밀한 반복작업을 하거나, 인간이 직접 탐색할 수 없는 달이나 화성의 표면을 탐색하거나, 아주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릴 때 등 로봇은 인간의 신체를 대신하여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여기 그런 로봇을 이용해 상상 속 건축 디자인을 완성해 내는 팀이 있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기술을 활용하여, 건축, 예술, 산업 등 창작/제조 분야에 적용 가능한 디자인-제작 솔루션을 제공하는 제작자 그룹 BAT 다. 로컬리콜 4회에서 그들을 만났다. 



B.A.T, We Build with Robot 

B.A.T는 산업용 로봇팔을 기존에 사용하던 방식과
다른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입니다.

로봇, 솔루션, 개발 왠지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가득하지만 B.A.T가 하는 일은 “We build with robot”이라는 의외로 매우 단순한 한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로봇으로 건축을 하는 회사라는 것이다. 사실 하필 로봇팔을 건축에 적용하게 된 것은 ‘건축에 적용하면 왠지 좋을 것 같아’라는 신동한 대표의 본능적 이끌림에 따른 것이었다. 


건축물에 평균 한 5천 종류 이상의 부속품,
부재가 장착이 되요. 각각의 부속품은 여러 번의
후가공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이 되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니까 내가 디자인한 걸
직접 만들기까지 해보고 싶더라구요.
 일종의 캐드 캠 시스템을 도입해보고 싶었어요.


컴퓨터로 디자인한 것(CAD)을 특정장비를 활용해서 제작하는(CAM) 시스템을 건축에 도입해보고 싶다는 그의 욕망을 실현해줄 매개로 로봇팔은 장점이 매우 많은 장비였다. 우선 역사가 깊은 로봇팔은 가공방식을 변경하기 위해 장착해야 하는’툴’들이 이미 많이 개발되어 있어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본래 산업 쪽에서도 어느 하나의 공정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용접, 절단 등을 포함한 복합가공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건축분야에 적용하기도 적합했다. 뿐만 아니라 3D프린터와 같이 어떤 구조물 안에서 가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움직임의 자유도가 높고 크기에 대한 제한도 적은 편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산업용로봇을 전통적인 ‘대량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맞춤형 ‘소량생산’에 사용하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아직 사례가 적긴 하지만 해외에서는 상대적으로 자동화 정도가 낮은 건축, 디자인에 로봇을 적용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로봇제어를 돕는 친절한 친구 ‘GERTY’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로봇팔의 사용이 제한적인 편이다. 이미 입력된 코드에 따라 반복동작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건축ᆞ디자인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복잡하고 섬세한 동작에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BAT는 이런 부분을 보완하여 로봇팔이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분야 외에 건축ᆞ디자인에서도 활발히 사용될 수 있도록 로봇제어 소프트웨어 GERTY를 자체 개발했다. GERTY는 3D모델링 소프트웨어 라이노 기반의 에드온으로 사용되는 프로그램으로 컴퓨터 그래픽 상에서 툴패스를 계획하고 시뮬레이션해 동작을 코드화 해준다. 

                                                  

GERTY 구동 화면 ©BAT
GERTY는 영화 ‘더 문’의 인공지능 캐릭터인데,
시종일관 건조한 말투로 영화의 말미까지
사람을 돕는 것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어요.
 저희가 개발하는 프로그램도 사람과 로봇의
새로운 시도에 일조하면서, 존재감 있는 무언가로
 남길 바라면서 GERTY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라이노라는 디자인툴(CAD)에 통합된 제작 툴(CAM)이라는 점은 GERTY를 강력하게 만드는 특징이다. 우선, 디자인 툴에 익숙한 디자이너들이 특별히 새로운 기술을 익히지 않고도 산업용 로봇을 보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설계부터 로봇의 동작을 프로그래밍하고 운용하여 제작하기까지 여러 과정을 단일 플랫폼 환경에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독립된 CAM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에 비해 경제적이다. 더불어, GERTY는 기존 머시닝 제어에 치중된 기존 로봇 CAM의 틀에서 벗어나 라이노(그래스호퍼)의 비주얼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면서 동작의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간단한 동작부터 피크-앤-플레이스(Pick&Place), 연삭(grinding), 용접, 3D프린팅까지 다양한 가공 제어를 위한 캠 기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용자만의 특별한 툴이나 가공방식에 대한 맞춤 제어도 비교적 쉽게 구현할 수 있다. 


처음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BAT는 멤버 4명 모두 건축전공으로 개발자가 없다. 그런 이들이 GERTY를 직접 개발하게 된 배경에는 기존 소프트웨어들이 상당한 고가임에도, 사용성(Usability), 활용의 자유도, 확장성이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BAT의 목표는 소프트웨어 개발보다는, 로봇팔을 이용한 건축 디자인/제작 솔루션 개발에 더 가깝다. 향후에는 해외에서 BAT와 같은 작업을 먼저 펼쳐 나가고 있는 AI Build나 MX3D처럼 캠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된 하드웨어 개발, 이 들을 이용한 통합솔루션 제공 및 제작 대행까지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확장한 포트폴리오


B.A.T는 산업용 로봇팔을 GERTY로 제어해 다양한 건축디자인 프로젝트에 적용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새로운 공정 혹은 소재를 이용한 작업에 도전할 때 마다 이들을 움직인 게 한 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아?”라는 자신감이었다. 

사실 디자인 구현은 기술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이 굉장히 많거든요.
저희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더 많은 디자인이
가능해지기를 바라죠. 


▶  STEP1: 절삭 


BAT가 초반에 많이 했던 작업은 건축에서 사람의 능력만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비정형 구조물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Chohelo A+U가 디자인한 동굴 같은 천장구조물의 신사동 레스토랑은 BAT가 참여해 완성시킨 국내 첫 로봇 건축물이다. 열선작업으로 단열제를 깎아서 비정형 구조물을 완성시켰다. 건축사사무소 ‘삶것’의 <위례주택 프로젝트>에 사용될 비정형 코너벽돌도 BAT의 로보틱 패브리케이션 방식을 도입해서 완성할 수 있었다. 벽돌을 수평으로 쌓는 것이 아닌 지붕선과 지평선을 따라 쌓는 디자인이었는데, 이를 위해 약 600여개의 코너벽돌을 모두 다른 모양으로 잘라냈다. 


위례주택 프로젝트(건축디자인: 삶것 / 코너벽돌 : B.A.T ) ©lifethings
FDM 3D 프린팅 (Zer0ne Creator Exhitbition, 2019) ©B.A.T


▶  STEP2: 적층과 복합가공


동작이 자유로운 로봇에게 최근 자주 적용되는 또 다른 가공방식으로는 적층 방식이 있다. 3d 프린터와 마찬가지로 필라멘트, fdm 등을 이용하여 층을 쌓아 형태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적층 가공을 로봇팔에 적용했을 때 최대 강점은 서포터 없이도 3d프린터에 비해 적층 방향을 다이내믹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비정형으로 휘어진 BAT의 zero01ne Creator 전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다른 가공사례인 InFormed Ceramic에서는 BAT가 말하는 복합가공을 구현했다. 단열재를 열선으로 잘라 일종의 몰드를 만든 후 직접 개발한 세라믹 익스트루더(압출기)를 이용해 단열재 위에 클레이를 쌓았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구조물을 구워서 대형 스케일의 세라믹 조형물을 완성했다.

      

세라믹 3D 프린팅 (Informed Ceramic,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 2017) ©B.A.T


▶ STEP3: 금속 프린팅

 

나무, 클레이 등 비교적 부드러운 소재 작업이 익숙해지면서, BAT는 보다 단단한 산업용 소재인 쇠 등의 금속을 다루기 위해, WAAM(Wire Arc Additve Manufacturing)이라는 금속 3D 프린팅 솔루션에 도전했다. 당시 로봇제어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었던 BAT는, 해당 기술을 선도하는 해외 기업 MX3D의 작업들을 참고하면서, 용접기만 장착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저희가 용접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용접 분야가 매우 복잡하다 보니까,
초기에 장비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모른 채로
무모하게 진행을 했어요. 처음에는 1~2cm만
쌓아도 행복했는데, 점점 프로젝트 마감기한이
다가오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어려워서 힘들었죠.

용접기술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WAAM 기술에 적합한 장비를 갖추고 금속 적층을 구현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결론적으로 쇠를 녹여 연속적으로 긴 시간동안 비드를 쌓아가는 ‘적층’방식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특수 기술이 적용돼 보다 저온으로 용접이 가능한 고사양의 아크 용접기가 필요했다.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닌 끝에 창원에 위치한 용접기 전문 기업 BEST F.A.에서 꼭 맞는 용접기를 구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완성한 것이 송도 RM2 지역아파트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높이가 3.5m에 달하는 이 조형물은 조경설계사무소 ANF가 디자인했고 BAT가 제작했다. 


WAAM 금속 3D프린팅 활용 환경 조형물 제작 ©B.A.T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금속을 다룰 수 있게 된 BAT는 더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금속 적층 기술을 이용해 자체 상품인 스툴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고, 현대엔지니어링, 삼표산업과 함께한 최근의 연구프로젝트 The CRUX에도 이 기술이 사용됐다. 비정형 UHPC(초고강도 콘크리트) 구조체 제작 방식을 실험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에서 BAT는 점용접을 이용 두께가 5cm밖에 안되는 매립형 철근 구조물을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WAAM 금속 3D프린팅 적용 스툴 제작 ©B.A.T


          

초박형 비정형 콘크리트 구조물 제작 (The Crux, 2020)  ©B.A.T


 


신구 기술 융합의 플랫폼으로서 로봇 


사실 저는 로봇이 보다는 확장된 저의 일부이자
기계로 생각하면서 로봇팔을 다루고 있어요.
하나의 솔루션을 완성하기까지 방법을 고안하고,
로봇팔을 하나하나 티칭해야 작업이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로봇팔을 이용해 내가 작업하는
느낌이 더 적합한 것 같아요.


익숙한 우려와 달리 건축 및 디자인 현장에서 로봇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는 인간 및 과거 기술을 대체하기 보다는 오래된 기술과 새로운 기술이 로봇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융합되고, 이전에는 접근이 어려웠던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에 더 가깝다. BAT가 로봇을 이용해 금속 적층에 성공하기까지도 ‘용접’이라는 역사가 깊은 기술을 잘 알고 있는 선배 엔지니어들의 조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소재에 대한 누적된 지식도 BAT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마치 TV의 등장이 라디오를 없애 버리지 못한 것처럼 로봇의 진화 역시 수공적 노동, 전통제조업을 없애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 신구 기술이 만나고, 제조업과 창작자가 만나는 플랫폼이자 완전히 새로운 산업 체계를 구현하는 시작이 되길 바라본다. 


*토크쇼 3회 B.A.T편 다시보기 

https://youtu.be/nxQDbbHTMA4

* 포럼 아카이브

https://forum.betacity.center/2020/archive

* 포럼 웹사이트

https://forum.betacity.center/ 

* B.A.T 공식 홈페이지 

http://b-at.kr/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4회에서는 철제 디자인 가구를 제작하는 rareraw를 만난다. 이들의 이야기는 10월 중 세운베타시티센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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