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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Oct 13. 2022

살 날이 두 달 남았다면 누굴 만나시겠습니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 리뷰


연휴 끝날. 엄마께 데이트를 신청했다. 요즘 나를 돌보느라 바빠 엄마와 시간을 못 보내 서다. 실은 엄마를 위한다지만 엄마랑 놀면 내가 제일 재밌다. 어디 바람 쐬러 나갈까 했더니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여의치가 않았다. 해서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주말마다 <출발! 비디오 여행> 류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는데, 그냥 시청만 하시는 게 아니라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 넷플릭스로 볼 영화 등을 찜꽁 해두신다. 그중 그날의 픽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너무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엄마 시대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이라 호감이 간다고. 다소(?) 뻔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소소한 웃음 포인트와 잔잔한 메시지가 있어 엄마랑 보기엔 안성맞춤인 영화였다.


주관적 평

3.5점 / 5점


줄거리 요약

아이 둘 뒷바라지하랴, 무뚝뚝한 남편 인봉을 참아내랴 외롭고 바쁜 나날을 보내는 열혈 주부 세연. 병원 건강검진 결과 폐암 진단을 받는데... 남은 기간은 길어야 두 달. 세연은 남편에게 첫사랑을 찾아달라고 요구한다. 인봉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의 황당한 부탁을 내키진 않지만 들어주는데... 첫사랑을 찾아 나선 여정의 끝에서 세연과 인봉은 과연 무엇을 만났을까?

첫사랑과 함께 있는 고등학생 세연


좋았던 포인트 


1. 가장 비참한 삶의 순간에도 숨어 있는 고마운 얼굴들


첫사랑을 찾아 떠나며 세연과 인봉은 지난 결혼생활을 돌아본다. 지난 결혼 생활 속에서 인봉은 영화관 관객들의 탄식을 자아낼 정도로 얄밉고 무심한 남편이다. 이 장면이 압권.

(입덧이 심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세연이 인봉에게 회를 구해달라 한다.)

인봉: 회는 무슨 회야, 해 먹어!
세연: 냄새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겠단 말이야. 당신 저녁도 그렇고...
인봉: 그럴 줄 알고 나는 다 먹고 들어왔지.
세연: 뭐 먹었는데?
인봉: (약 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회덮밥!

인봉의 태도에 세연은 집 앞 평상에 앉아 서럽게 운다. 비참하기 그지없는 순간. 그때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벽이 얇아서 모른 척할 수가 있어야지...' 하며 홍어회 한 접시를 내민다. 하루 종일 굶은 세연은 맨 손으로 회를 허겁지겁 먹는다.


회상 장면은 여기까지였지만 아마 그 후로도 옆집 아주머니는 세연을 살뜰하게 보살폈나 보다. '그때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어쨌을까 몰라... 보고 싶다.' 하며 말을 마친다.


때론 이처럼 아주 가까운 사람보다 조금 멀리 있는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선물한다. 이웃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산다고 해도, 접점이 없으면 생각보다 가까워지기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집안 속사정 다 내보이는 것이 때로 달갑지 않고 부끄러울 때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들을 한 기대는 자주 무너진다.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라기 보다, '너만은 날 알아줬으면' 하는 동일한 기대가 충돌해서 일 테다. 너무 가깝다 보면 놓치는 부분도 생길 수밖에 없고 말이다. 받아들여지고 싶을 때 비빌 언덕이 없다는 생각은  사람을 곧 잘 비참한 외로움에 빠트린다.


재미있는 건 그때 손 내미는 건 또다시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무런 기대가 없던, 조금은 먼 관계의 사람이 건네는  작은 호의. 꼭 내가 바랐던 대상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한테 이해받고, 공감받을 때 사람은 또 다시 살 힘을 낸다. 요즘 화두인 느슨한 관계에서 얻는 연대감? 그런 종류의 감정이 실은 삶의 곳곳에 녹아 있다는 것.


흥미로운 건 때론 그런 작은  호의가 삶이 두 달 밖에 안 남았을 때 떠올리는 얼굴과 장면으로 꽤나 오래 강렬하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2. 아는 노래와 아는 배경에서 펼쳐지는 뮤지


<인생은 아름다워>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일상적인 한국의 풍경과 상황들로 가득 차있다. 만원 버스, 기사 식당, 서울극장, 동사무소, 휴게소 까지... 매우 익숙한 배경에서 극의 상황에 맞춰  <조조할인>, <애수>, <다행이다> 등 익숙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휴게소에서의 넘버

나는 뮤지컬을 꽤나 좋아하는데 가끔 뮤지컬에서나 볼 수 있는 극적인 상황이 삶에서도 일어나면 꽤나 즐겁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특히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때 노래를 읊조리며 맘을 달래고, 앙상블과 함께 화려한 춤을 추며 털어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뮤지컬의 극적인 장면이 아닌, 매우 일상적인 상황에서 아는 노래로 뮤지컬이 펼쳐지니 상상만 하던 일이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인봉이 아내가 폐암이라는 소식에 힘들어하며 소주를 마시는 장면은 특히 좋았다. 노래의 구절을 다른 테이블에서 술 마시던 앙상블들이 이어 부르는 형태로 넘버가 구성되었는데, 개별적인 테이블의 사람들이 노래와 술을 나누며 함께 고민하고 이겨내는 느낌을 조금 받았달까.


3. 심각한 상황을 넘기게 하는 소소한 웃음 장치들


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 라인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은 어찌 보면 다소 무겁다. 그런데 중심 스토리 라인에 대한 대답, 곧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스토리라인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바로  "남편과 함께 첫사랑을 찾아 나선다."는 것.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데 그 과정과 결과는 더욱 재밌다. 말 그대로 웃기다. 그래서 무거운 주제에 잠식당하지 않고 즐겁게 영화 감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영화관에서 확인하시길...!

첫사랑 찾기의 결말은?



아쉬웠던 포인트


1. 뜨거웠던 연인은 어쩌다 무뚝뚝한 츤데레 남편이 되나?

영화에서 인봉은 정말이지 화가 날 만큼 무심하고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과거 회상신에서 연애시절의 인봉은 뜨겁기 그지없는 연인이었다. 세연과 결혼하기 위해 준비하던 꿈을 포기할 정도로. 그런데 대체 왜 이랬던 연인이 결혼만 하면 아내를 업신 여기는 남편으로 돌변해버리는가? 그리곤 겉으론 무뚝뚝해도 실은 뒤로 다 챙기고 마음 쓰고 있었다는 의 마무리... 그냥 앞에서 다정하면 안 되는 걸까?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클리셰....


2. 다소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음

뮤지컬은 노래를 이어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기에 스토리 라인이 너무 복잡하면 극을 전개하기에 좋지 않다. 관객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힘들 테고, 길이도 과도하게 길어질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도 슴슴한 스토리라인을 채택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강렬하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를 고려했을 때는 다소 밋밋하게 여겨질 수 있다.


스토리 라인 뿐 아니라 음악도 살짝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다. 워낙 유명한 곡들이 많이 사용됐는데, 곡에 기대하는 포인트들이 살짝 빠진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시원하게 뻗는 고음이 인상적인 곡인데, 절반만 올린다던지.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주연배우가 뮤지컬 배우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정도



덧.

류승룡의 코믹 연기는 늘 그렇듯 얄밉도록 일품이다.

염정아의 얼굴이 이토록 따뜻했던가? (장화홍련, 스카이 캐슬 속 차갑고 무서운 엄마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세연

<열여덟의 순간> 때부터 느꼈지만 옹성우의 얼굴은 정말이지 첫사랑 그 잡채다..

결국 남는 건 사랑받고 사랑 줬던 기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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