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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Nov 24. 2023

코치님, 저 풋살 못하겠어요

나의 가장 못나고 어색한 모습에 직면하는 일

 


 

코치님, 저 풋살 못하겠어요.



 실제로 3월 정규 수업 내내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워밍업부터 나만 혼자 로보트처럼 뻣뻣했고 패스 연습과 연이은 미니 게임에서는 안 그래도 어색한 팀원들에게 번번이 민폐(보통, 이 단어는 풋살에서는 금기어다. 특히 우리팀에게는 그렇다.)가 되는 것 같았다.



 ‘할 수 없다’, ‘못 하겠다.’와 따위의 말은 보기에는 나약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실체를 가져서, 딱 그 정도의 인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나는 불안한 마음과는 반대로 더 잘하고 싶어서, 나도 딱 남들 만큼만 하고 싶어서 역설적으로 못하겠다는 말을 뱉었다.



솔직히, 실력은 다 비슷해요.
일단 골 때리는 그녀들 보세요.


 

 내가 유튜브가 아닌 책으로 풋살을 꿈꿔왔다는 것을 읽라도 하신 듯, 아니면 여느 초보자들이 거쳐가는 과정 중 하나인 듯 코치님은 내게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을 보라고 권했다.(나는 유튜브를 즐겨 보지 않는다. 그래서, 보지 않았다.)



‘골 때리는 그녀들’ 구척장신 팀. 주장 이현이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다 무심코 알고리즘에 뜬 골때녀 클립을 보게 되었다. 나보다 체구가 작고 가녀린 여성들이 민첩하고 씩씩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을 보고, 내가 왜 풋살을 하고 싶었는지를 다시금 되새겼다. 그라운드를 익숙하게 누비는 그녀들에게도 누구나 처음은 있었다.



 살면서 공을 다루어 본 적이 없으니 처음부터 잘 할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는데, 왜 스스로 못하는 나를 질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잘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좋아서 하는 운동으로 나를 낮추고 탓해서는 안되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버티기였다. 요즘 20대들 사이에서는 ‘존버(존X 버티기)’라는 말이 유행인데,(요즘 맞아?) 존버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인내하고 "좋은 날이 올때까지" 버티자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 아무리 못해도 오늘보다 더 못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공을 잡지 못해 창피하고, 차지 못하는 발이 원망스러운 그 시간을 그냥 받아들였다. 그랬더니 결국 나도 골을 넣는 날이 오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제대로 해야 해’라고 계속 명령을 내리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 <있는 그대로의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잘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나를 받아들이자. 인생에서 처음을 겪은 적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 언제나처럼 시작은 낯설고 내 모난 모습을 마주하는 건 특히 익숙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가장 못나고 어색한 모습에 직면하며 조금은 성장했다.



 이제 나는 더이상 부족한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가끔.. 언제 성장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다음] ‘꾸준함’이 가져다 주는 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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