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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필 Sep 12. 2022

길우 3

언젠가 한방센터 선생님께서 길우 사진을 찍었던 것이 생각나서 병원 채널을 한참 뒤져서 길우 사진을 찾았다. 사진 속에 "안 아파요."라는 말이 가슴이 아리다.



“길우는 아팠다.”

문장을 현재형으로 썼다가 마침표도 찍기 전에 시야가 흐려졌다. 한참을 청승맞게 울다 다시 과거형으로 고쳤다. 길우가 떠나고 길우 생각이 날 때마다 이제 길우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길우가 아프다는 사실은 항상 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길우와 연이 닿았던 것도 길우의 병 때문이었으니 길우와 나 사이에 항상 길우의 병이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구내염과 만성 췌장염 진단을 받았다. 다음에는 퇴행성 관절염, 그다음에는 신부전과 심장병.... 마지막으로 발작 증상이 길우를 괴롭혔다.    

  

길우는 밥을 먹을 때마다 괴로워했다. 입이 아파서 고개를 흔들고 뒹굴기도 했다. 거의 항상 입가에는 침과 피가 뒤 엉겨 있었다. 상처가 커진 날은 선혈을 흘리기도 했다. 다리가 아플 때는 배변이 어려워 긴 시간 화장실에서 울었다. 길우에게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자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어 보였다.      


그런 길우가 안쓰러웠지만 나는 길우의 고통을 짐작할 수 없었다. 잠을 못 자면 입안에 구내염이 잘 생기는데, 항상 무리하는 상태로 살아서인지 작게 구내염 상처 한 개 정도는 거의 항상 있다. 그래도 나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살았다.      


길우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날이면 그 고통을 가늠할 수 없어서 조용히 입안에 있는 상처를 꾹~ 눌러보곤 했다. 이보다 백 배쯤 아플까? 아니 천 배쯤 아플까? 답은 알 수 없었지만 입안에 상처를 꾹~ 누르면 내가 길우의 고통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신부전, 심장병 그리고 발작... 길우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거대한 병들이 길우를 어떻게 괴롭히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힘없이 누워있는 길우를 볼 때마다 “길우야 힘들어? 많이 아파? 내가 어떻게 해줄까?” 하고 물어봤다. 길우의 고통을 알 수 없어서 나는 길우에게 미안했고, 우리에게 닥칠 미래가 더 두려웠다.      


나의 두려움대로, 길우의 고통대로 결국 길우는 죽음을 맞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아프다가 죽었으니 길우는 죽을 만큼 괴로운 고통을 느꼈던 걸까? 이 역시 알 수가 없어서 나는 길우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제발 누군가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길우는 아팠다. 나는 아픈 길우를 사랑했다.

길우는 이제 아프지 않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프지 않은 길우를 그리워한다.

길우는 이제 아프지 않다. 길우는 이제 아프지 않다. 길우는 이제 아프지 않다.

사실이 내 그리움에 작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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