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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읊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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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필 Jul 16. 2022

열한 번째 달

바람 줄기는 서늘한데 햇살은 따뜻하고

달력은 가벼운데 마음은 무거웁고

'풍요로움‘과 ’서걱거림’이 함께하는 그런 달에는 


살아온 날에 대한 아련함에 살아갈 날에 대한 막막함에

어제를 등에 업고 내일을 머리에 이고 있는 버거운 오늘이 있기도 하지요 


 잡을 수 없는 아쉬움에 담을 수 없는 애달픔에

보내야 하는 외로움에 잊을 수 없는 그리움에

그저 내 그림자 안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기도 하지요. 


잊고 싶은 기억들이 지독스레 잊혀지지 않는 아픔에

품고 싶은 기억들은 바람결에 부서질 것 같은 걱정에

생 속을 그대로 드러낸 채 소금에 절여진 것 같은 날이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마세요. 


바람 부는 초원에 저녁이 오면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낸 맹수 한 마리도

제 상처를 제가 핥으며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요. 


밤하늘에 별들이 떠오르면

갈 곳 잃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도

제 마음을 제가 다독이며 별을 보며 길을 찾아 나설 테니까요. 


저 태양도 제 몸을 태우며 오늘을 살고 있고

저 별들도 그리움에 당신을 헤아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열한 번째 달에는 외로워 그대 찾아온 외로움도

그리워 그대 찾아온 그리움도 잠시 곁에 쉬어가게 해 주세요.

왔을 때 곁에 두고 아껴주다 갈 때는 소리 없이 보내주세요. 


그렇게 하루하루 열두 번째 달이 다가오고 있네요.

그렇게 하루하루 그대 삶의 숲이 깊어지고 있네요. 



2010년 2월

내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스산한 마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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