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했던 우리의 시간
37세에 둘째를 낳았다. 아기와 형과는 여섯 살 차이로 당시 나는 노산의 산모였다. 내리 딸을 얻고도 아직도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같은 병실의 어느 아비가 그의 아내를 위로하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어. 저분을 봐 봐.”
그때 태어났던 아이가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나는 공식적인 할머니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던 시절은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가사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나의 일도 해야 하는 워킹맘, 모든 일은 여자의 몫인 시대였다. 더구나 남편은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당시 70대 중반인 엄마가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꾸려 나갈 수 있었을는지… 지금 생각해도 엄마께는 너무도 죄송하지만 엄마가 노년의 삶에 있어 새로운 낙을 찾으신 듯 힘드시다는 내색도 않고 행복해하셨음을, 당신이 키운 외손주가 생전에도 또한 돌아가신 후에도 당신을 최고의 할머니로 기억하고 있음이 내게 작은 위로가 될 뿐이다.
멀리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편과 노쇠하신 엄마의 손을 빌려 꾸려나가는, 급류에 휘말린 듯 허우적거리던 날들은 잃어버린 십 년이 되었다. 집과 일터만을 오가느라 늘 바빠서 지금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듣고 부르기를 좋아하건만, 그 시절만은 유행하던 노래조차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유일한 날들이 되었다. 아이들과의 그 시간들은 꿀같이 달콤했으되 내게는 그 달콤함을 그려내지는 못하는 그런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두 아이를 가진 것이었지만, 50대 중반까지 가늘고 길게 좋아서 했던 일에 관한 한 많은 아쉬움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가끔 이루지 못했던 일을 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허둥대며 일을 하느라 걸음걸음 헤매는 꿈을 꾸다 깨어나곤 한다. 그 일 또한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가.
두 아이 모두 6개월 정도는 모유수유만으로, 일을 하러 나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부터는 낮에는 냉동저장한 모유와 우유를 섞어먹는 혼합수유로, 그 흔한 공갈젖꼭지조차 사용한 기억이 없이 아이들을 키웠다. 젖만 물리면 따라오던 평화롭던 아이와의 시간은 참으로 좋아서 둘을 연결하던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을 실감하던 시간이었기에 늦둥이 둘째는 더 그 시간이 길어져 돌을 넘기도록 이어졌더랬다. 지금의 젊은 엄마들이 들으면 기함을 할 이야기다. 영양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이와 나는 그 시간을 마냥 사랑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의 내향적 성향 탓일까? 바깥 생활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기에 그저 행복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두고 일터로 돌아갔을 때는 쉬는 시간 동안의 변화를 따라가느라 너무도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겪었던 그 시간의 고충을 알기에 기꺼이 함께 일하는 아들내외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들이 원한다면.
조산기가 있어 예정을 벗어나 쓴 휴가기간 탓에 일찍 산휴휴가 기간이 끝난 며늘아이가 새로운 학기에 맞추어 육아휴직을 하기 전, 몇 개월만 내게 아이를 돌보아 달라는 요청을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한 친구들은 절대로 도와주지 말라는 친구와 도와주어야 한다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그러나 나의 건강을 엄려하여 간곡하게 말리던 소꿉친구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젊은 날 나를 도와주었던 손길들을 잊지 못했기에 아래세대를 도움으로써 그 마음의 짐을 갚고 싶어 흔쾌히 그 청을 받아들였다.
아기를 돌보는 시간은 봄날, 숲 속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나던 야생화를 지켜보던 시간들과 많이 닮았다. 하루하루 새 잎이 나고 꽃봉오리가 열리고 꽃이 피어나던 때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것처럼 아이와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노년의 나이에서 지켜보는 꽃 같은 아가의 날들. 여린 꽃 같던 아기사람의 시간들을 함께 나누던 그 짧은 나날들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러나 몸이 고된 날이면 자식들이 돌아올 시간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도 했고, 무언가 잘 해내지 못해 허둥댈 경우를 만나면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던가 자책하는 날들도 있었다. 아이는 나의 아이가 아니라 손녀인지라 더 두렵고 걱정이 많았으며 혼자 돌보다 보니 육아 초기에는 제때에 밥을 먹지도 양치조차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잠든 새 해야만 하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초기에는 자주 먹여야 해서 나오는 젖병들을 씻고 소독하고 조립하는 일, 소독장치에 익숙해지는 일,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잠든 새에 해내야만 했는데 아기는 너무도 잠귀가 밝아서 소음을 내지 않으려 숨죽여야 했다. 초기에는 나의 시대와는 달라진 집안의 신문물들을 배우는 일들이 산재해 있던 터라 삼십 년도 전에 모유로 아들 둘을 키운 할미는 분유수유와 잡다한 배움이 필요한 일들 앞에서 자꾸 작아지곤 했다.
두어 달이 넘어가며 나는 점차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기가 자는 동안 틈틈이 숨죽여가며 한 권의 책을 읽었다. 내 생일날 스스로에게 선물했었던 책. 곧 엄마가 될 며느리에게 한번 읽어 보라고 이사길에 남겨 두고 간 아끼는 책. 며느리가 보다가 책상 위에 올려 둔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라는 책이었다. 이미 이전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막상 육아의 현장에서 다시 읽는 책은, 천기저귀를 쓰고 홀로 육아를 하던 시절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던가를, 지녔던 생각과 행동들을 마주하며 그 시절 육아의 날들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힘든 육아의 날들을 타국에서 홀로 지켜내면서도 명쾌하며 위트 있게 삶을 풀어나가는 철학자의 이야기는 나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함께 눈물지으며 공감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게 만들었다. 때로는 그녀만의 눈길로 써 내려간 아기와 엄마 사이의 깜찍한 유머는 노년의 육아의 시간 새로운 감흥에 겨워 하하 웃는 즐거운 시간도 선물해 주었다. 꽤 긴 날들 읽는 일에 목말랐던 터라 그 시간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 실현된 것처럼 다가와 동네의 어여쁜 젊은 엄마와 마주 앉아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느낌의 시간이었다. 육아의 시간들이 더욱 선명하게, 철학의 한 자락으로 슬그머니 나의 곁에 다가왔다.
백일이 가까워서야 얻게 된 조각조각 작은 자투리 여유의 시간, 잊고 있었던 내 젊은 날의 육아의 날들과 두어 달 손녀를 키워낸 날들이 같이 넘어왔을 힘든 고개들이 그 시간 함께 있었다. 육아로 헤매던 할미의 시간들이 느리게 느리게 따뜻한 빛의 움직이는 그림이 되어 다가왔다.
마냥 좋은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모두 다 잘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장착한 자식들은 그와 함께 자신들의 세대에 얻어진 무수한 정보들을 내게 전하였고 때로는 서로 간에 작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례로, 얼마를 얼마의 간격으로 먹일 것인가 하는 것에서는 서로 다른 두 세대의 의견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살찌는 것에는 관계없이 양껏 먹이고 푹 재우면 된다는 편안한 우리 세대의 사고방식과 많은 정보로 아이를 잘 기우고 싶은 젊은 세대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내 아이가 아니기에 일정시간에 정량을 먹이길 원하는 아이들에게 맞추어 보려다 아기가 자꾸 울 때는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슴만 내어 밀면 금세 평온해지던 나의 아이들과는 달리 달래 줄 수단이 없는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얘들아! 나는 우는 아기를 달래줄 물려줄 젖이 없구나! 그리고 나도 할미는 처음이란다."
새로운 육아의 시간은 삶의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했다. 노쇠한 70대 중반의 연세에도 힘들다 않으시고 도와주셨던 나의 엄마를, 내 손으로 거두어주지 못해 못내 미안해하시던 시어른들을, 한 가족처럼 내 아이를 돌보아 주었던 언니네 가족들을, 다정하게 아이들을 품어 주었던 따뜻한 이웃들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진심으로 그 모든 이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엄마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음을.
아기는 새순처럼 매일 쑥쑥 자라났다. 초점조차 맞추지 못했던 아이는 어느새 눈을 맞추고 방긋방긋 웃고 힘차게 발을 휘젓고 옹알이를 했다. 새로운 사물에 관심을 보이고 함께 웃었다. 정지된 듯한 매일매일을 정신없이 살다 뒤돌아보면 아기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그래 아가야! 한 생명으로 태어나 처음 만난 이 새로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이, 이 하루하루가, 생애 그 어느 때 보다도 귀한 시간이구나. 할미는 늘, 매일을, 함께하는 너의 모든 날들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내 삶에 담아 두련다."
젊은 날의 나보다는 품이 많이 넓어졌고 가시일에도 많이 숙달되었기 때문일까. 경제적인 일에도, 바깥일에도 신경 써야 할 필요에서 벗어나 있는 지금이어서 일까.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매일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오늘을 오롯이 살기에는 힘들어도 힘든 날은 점차 사라지리라는 것을 안다. 또한 아이에게 있어 오늘의 너는 오늘뿐 임을 알기에, 나날이 더욱 소중함을 느낀다. 할미인 내게는 정해진 기간만이 주어졌으니 내 더욱 오늘을 아끼리라.
경이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매일 나는 겸손한 할머니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와 돌봄의 날이 끝나 그 시간이 준 기쁨을 생각하면 두렵고 어려웠을 터인데도 아이를 맡겨준 자식들에게 고맙기까지 하다(두둑이 챙겨준 용돈이 기쁘기보다 섭섭할 만큼). 몸은 힘들었어도 그동안 나의 젊은 시간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새로운 식구가 된 며늘아이와도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함께 육아에 참여하면서 세상이 무던히도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몇 번이나 세월이 바뀌었다. 이제 남녀가 아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향해 발전해 왔음을 보는 일은 새롭고도 반가운 변화다. 감긴 눈으로도 즐겁게 육아에 참여하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며 대견함과 짠함이 교차하는 마음 한편에 일방적으로 엄마만이 육아를 담당했던 세대의 일하던 엄마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러한 변화는 참으로 바람직하고 부럽기까지 하다. 만약 내가 지금의 세대를 산다면 어떠할까? 나의 성격 탓에 또 나의 일을 소홀하지는 않을까? 아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딸들을 키워내는 토양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지금의 아들딸처럼 자랐다면 나도... 다른 결말을 맞이할까?
이런저런 생각의 끝에 이르러, 나는 내 아이들의 소중한 날들을 지켜주신 엄마를 다시 생각한다. 70세 중반의 힘든 몸으로 행복한 얼굴을 하고 나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시던 나의 엄마.
나는 엄마의 그날들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