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이야기
구순을 바라보는 외할머니는 아들 둘, 딸 둘을 두셨다.
삼십 년 전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로 혼자 사셨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외할머니의 삶은 혼자셨다.
내가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집 안은 늘 조용했다.
할아버지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다른 젊은 여자와 함께 지내시는것을 보게 되었다.
그 여자가 첩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남들은 숨어서 한다는 일을, 할아버지는 당당히 두 집살림으로 이어가셨다.
그 모든 세월 동안, 할머니는 묵묵히 아이들을 키웠다.
식당을 하고 장사를 하며, 손이 닳도록 일하셨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의 손에는
늘 그릇의 온기와 삶의 거칠음이 함께 묻어 있었다.
이모는 교장선생님이 되었고, 외삼촌은 경정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하셨다.
그들의 단단한 삶은, 아마 할머니의 어깨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늘 말했다.
“나는 자식 잘 키운 거 하나면 됐다.”
그 말 속엔 체념보다, 다 지워내고도 남은 강인한 온기가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할머니는 이모네, 외삼촌네를 거쳐
다시 큰딸인 엄마 곁으로 오셨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살림 밑천이었다.
사랑받기보다 견뎌야 했던 시절이었기에,
할머니의 품은 엄마에게 늘 어딘가 낯설었다.
그 낯섦이, 세월이 쌓여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새벽 두 시.
할머니는 잠든 엄마를 깨우셨다.
수첩이 없어졌다고, 그 안의 돈을 가져간 게 아니냐고 따지셨단다.
엄마는 잠결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그 수첩은 나중에 동생네 교회에서 찾았다.
엄마한테 도둑년이라고하니 동생이 그건아니지않냐고
할머니께 따지니 할머니는 집을 나가겠다
하셨고
그날 , 할머니는 정말 짐을 싸서 나가셨다.
가을날씨는 차고,바람끝이 매서워졌다.
그 길 위에서 할머니는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다행히 외삼촌이 곧 집으로 할머니를 모시고왔다.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의 길은 여전히 멀다.
피는 이어져도, 함께한 시간이 서로의 언어가 되기까지는
참 많은 이해와 용서가 필요할꺼 같다.
나는 바란다.
서로의 상처를 더 이상 탓하지 않고,
그저 남은 날들을 편안히 맞이하시길.
그리고 아직도 고운 우리 할머니가,
이제는 한평생의 기다림을 내려놓고
자신의 봄날을 맞이하시길.
누군가의 아내로, 어머니로, 할머니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으로 피어나는 마지막 꽃으로
그렇게 다시, 환하게 웃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