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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성 Sep 10. 2020

(5) 기반형 로컬, 강남

Infra-based Locality

강남 역삼동  (출처: 픽사베이)

어디론가 자전거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다 보면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 주변의 풍경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근데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쉴새 없이 페달을 밟으며 움직이는 로컬이 있다. 이번 회에는 ‘교육’과 ‘일’이라는 행위로 쉴새 없이 페달을 밟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떠나버리게 되는 로컬, 강남을 얘기해보고 싶다.

지도를 보면 대치동을 중심으로 삼성·논현·청담·압구정이 북쪽에, 서쪽엔 역삼·강남·반포가, 남쪽엔 개포·일원동이 펼쳐진다.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60년 전쯤부터 북강남(대치동을 중심으로 북강남과 남강남이 나뉜다) 지역인 청담·압구정동을 차량이 다니기 좋은 도로 중심으로 구획한다.

도보로 걷기보단 차량으로 건너기 좋은 다리(한남대교)를 연결하고, 감히 걸어다닐 수 없는 경부고속도가 가로지르는, 현대적 도시의 모습을 두루 갖춘 조직이 서울에 생긴 것이다.

전국 어디서도 도시와 재생을 생각할 겨를이 없던 60년대에, 더욱이 강남은 천지개벽한 듯 낯선 모습으로 동경과 기피의 동시적 대상이 된다. 닮고 싶거나 어쩌면 갖고 싶던 도시의 모습을 강남이라는 기존의 관심 밖의 지역에 맘껏 그려본 것이다.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강남-역삼-삼성까지 치열하고 세련된 듯한 상징적 업무지구가 만들어지고, 구도심에서 이전해오는 10여 개의 명문 고등학교가 강남·서초를 사교육의 전쟁통으로 갖추어(?) 갔다. 자전거를 힘차게 달리게 하는 두 개의 페달처럼 강남은 가득한 열정을 넘어 과열되어 충열된 도시의 상징처럼 만들어지는 듯하다.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 로컬시대, 코로나 시대가 오기 전까지 말이다.

삼성동 선릉 동쪽을 따라 걷다 보면 <커피볶는집>이라는 카페가 있다. 정말 눈에 들어오지 않는 촌스러운(?) 간판과 더 촌스럽고 낯선 인테리어 장식들을 가진 카페다. 하이엔드 스피커가 중간중간 있지만 적어도 그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커알못’인 나이지만 아주 조용히 선릉을 바라볼 수 있기에 간간이 들르는 카페다.

조용하다 보니 시간이 멈춘 것 같고, 엉성한 인테리어다 보니 사람이 적고, 어느 정도 지저분해 도리어 강박이 없어지는 편안함이 있다. 또 (무덤이긴 하지만) 선릉이라는 푸르름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강박의 강남 한복판에서 분주함에 잃었던 나 자신을 잠시나마 집중할 숨 쉴 공간인 것이다. 차를 마시러 가는 길도, 마시고 나와서 어디를 향하는 길도 나무들 사이에서 강남을 견디게 하는 쉼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여기를 들른 후 가볼 만한 다른 공간은 없다. 아니 이상하게 숨 쉴 공간이 없다.

부동산의 환금성이 강하고 보행보단 차량교통에 집중된 도시조직은 로컬리티를 만들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임대료는 크리에이터가 돈을 벌고 작당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1층의 주차장들은 동네에 구경 오고 싶지 않게 한다.

하지만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양재천 인근에는 신기한 카페가 있다. <브라운핸즈>라는 쇼룸카페 1호점이다. 세련되지도, 새롭지도 않고, 쉼이 있지도 않은데 주차장이 넓어 사람들이 항상 많다. 건물을 재생했고 자신들의 철제 주물제품이 전시되어 있지만, 사실 손님들은 넓은 주차장 때문에 간다.

같은 <브라운핸즈>지만 부산(백제)점은 다르다. 건축자산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조심스레 손대었기에 ‘재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또 오랜 도시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니 도시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릉역에 있는 <커피볶는집>만 못하다. <브라운핸즈>는 강남이라는 로컬을 살아내기에 필요하지 않고, 가는 길도 매력적이 않으며, 모든 매장이 큰 주차장으로 다 막혀 불친절하다. 커알못에게도 커피가 별로인 것도 한몫한다.

무엇을 로컬에 만들까 할 때, 적절한 로컬을 만들기 위한 내구력이 강한-오래 자리할 수 있고 시간이 만드는 경제적 역학을 극복가능한-곳이 되기 위한 해석이 필요한 듯하다. 단지 재생, 화려함이 아닌 적절한 어느 지점 말이다.

필자의 이 질문이 강남이 구성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있었다면 지금쯤은 더 걷고 싶고, 있고 싶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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