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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썽으니 Sung Oct 16. 2019

내 인생 최악의 물갈이, 방글라데시

물만 조심할 것이 아니었어

극도의 빈민국 방글라데시


우리에겐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하면 떠오르는 2개의 단어가 있었다. 빈민국과 서민들을 위한 그라민은행 이야기. 어렸을 적 필독서로 읽었는데, 방글라데시의 유누스 교수가 1976년 고리대금에 시달리던 '조브라'라는 마을의 여성들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일을 시작하면서 여성들은 공예품을 만들어 팔아 저금리로 빌린 돈의 원금을 갚게 되어 경제적 자활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사업을 시작한 첫 3년 동안 500가구가 빈곤에서 벗어나는 성과를 보였으며, 극빈자에게는 아무 담보없이 빌려주기도 했는데 원금 상환율이 99%가 넘을 정도로 선순환적 구조를 보인 사회적 기업이었다. 93년 처음 흑자를 냈고, 이 은행에서 대출받은 60%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는 나의 뇌리에 박혔다. 물론 실제로 방문했을 때 모든 글자가 뱅골어로 써있기 때문에 어떤 은행이 그라민 은행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이야기가 방글라데시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방글라데시는 인도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때문에 물갈이를 조심해야한다는 것은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여행자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물은 꼭 사먹을 것! 심지어는 양치하는 물도 구매한 생수로 양치할 것. 특히 방글라데시는 인도보다도 환경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주의를 해야한다. 그래서 '물'에 관련해서 굉장히 조심했다. 또한 인도와 아주 느낌이 비슷했는데, 인도와 다른 점은 인도보다 흙먼지가 훨씬 많았다는 점이었다. 인도도 먼지가 많은데 방글라데시는 더 많았다면 대략적으로 마스크없이는 숨을 쉬기 힘든 환경이었다. 코 풀면 검은색 먼지가 더덕 더덕 붙어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여행객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없었다. 우리가 지나가면 굉장히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셨다. 이런 인종은 처음 본다는 느낌으로! 인도에 가면 연예인 병에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이다. 인도는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타 인종과 관광객에 대해 익숙해져 버렸다. 인도 영화관도 발리우드 영화에서 춤추는 장면이 나올 때 다 함께 일어나서 춤추는 분위기라고 듣고 기대했었는데,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완전 시골에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메가박스 IMAX관보다 더 좋은 영화관이 수두룩하고 영화 관람 도중 파스타같은 요리도 시켜먹을 수 있고 직접 요리를 서빙까지 해주는! 한국보다 더 도시화 된 영화관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인도였다. 물론 빈익빈 부익부가 극명하기 때문에 낙후 된 곳도 많았지만,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마치 청나라와 조선의 후기 때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인도가 청나라라면 방글라데시는 조선의 느낌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아산만질 박물관을 구경갔는데, 도저히 구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었고 영혼 가출한 상태로 셀피를 100장은 찍어준 것 같다. 조선에 온 서양 선교사의 느낌이 상상되었다. 그러나 낯설지만서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호기심 가득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아직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거리


강제 셀피 찍히는 중

가족 단위, 아이들, 여성 분들은 셀피 요청을 하신다면 최대한 함께 찍지만 서남아시아 또는 인도 부근 국가에서 성인 남성 분들이 단독으로 사진찍자고 할 때는 거의 찍어주지 않는데, 셀피 함께 찍자고 접근해서 사진을 찍어간 후 본인 SNS에 이 여자랑 잤다는 형식으로 올린다는 피해를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는 다른 서남아시아보다도 특히 더 여성을 보기 어려웠다. 시장, 노상, 길거리, 가게에도 남자들이 있고 여성들은 장을 보러 나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다카대학교는 방글라데시의 정재계를 아우르는 엘리트 집안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 곳인데, 여자(여학생)를 볼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곳이었다. 고위층의 딸은 공부를 시키는 것 같았지만, 일반 길거리에서는 여자를 꽁꽁 숨겨놓은 듯이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다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집시 아이들이 너무 맛있게 쳐다보길래 우리의 마음이 동해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줬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홀연히 가더니 꽃을 한송이 꺾어다 주었다. 쏘 로맨틱~ 도대체 이게 얼마만의 꽃 선물이야. 졸업식 때 부모님께 받은 것을 이후로 받아본 적이 없는 꽃 선물을 이렇게 방글라데시에서! 또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가는 여행의 길자락.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사람들


비록 인프라는 열악했지만 방글라데시를 여행하고 남은 기억은 안 좋은 환경도 아니었고, 음식도 아니었고, 물갈이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이었다.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 준 따뜻한 사람들, 한국인을 환영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첫 날 우리는 거리 산책에 나섰다. 낯선 도시니까 서로 뒤에 꼭 붙어서 가려고 했으나 꼭 붙어있기에는 날씨가 너무나 더웠기에 우리는 햇볕을 피해 Cafe sara라고 써있는 커피숍으로 피난을 갔다. 커피는 더위사냥 맛이 났는데 시원해서 좋았고,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사장님이 직접 음료에 Korea와 하트까지 써주셨는데, 커피 데코가 너무나 귀여웠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스낵인데 한 번 먹어보라고 서비스로 벨뿌리라는 음식을 앞에 노상에서 사다주셨다. 방글라데시에 여행온 우리를 환대해주시는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다. 비록 인프라는 유럽, 호주, 미국에 비해 많이 떨어질 수 있어도, 사람 냄새나는 인간적인 정이 서남아시아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담은 라떼아트, Cafe Sara 사장님, 벨뿌리


고백친구들에게 단골 맛집이 생겼다. 방글라데시에서 머무르는 3일의 일정 중 무려 3번! 매일 방문한 단골 맛집 Cafe 4 Star. 호텔 인근이어서 지나가다가 발견한 음식점이었는데, 사람도 많아보였고 닭을 굽고 있는 비쥬얼에 혹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부딫힌 난관은 모두다 뱅골어로 써있어서 전혀 무슨 메뉴를 어떻게 시켜야 할 지 추리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했다. 그러나 굶으란 법은 없는지, 사장님 친구 분이 갑자기 우리 테이블로 오시더니 한국어를 하시는게 아닌가! 분명 방글라데시 분인데 이게 무슨 어메이징한 시츄에이션(?!) 

한국말로 능숙하게 대답하셨던 Cafe 4 Star 사장님 친구


알고보니 5년을 부산에서 살다오셔서 한국어를 하실 줄 아셨다. 정말 이 분 아니었으면 방글라데시에서 쫄쫄 굶고 다녔을 것 같다. 치킨, 난, 블랙커리 등 다양한 메뉴를 시켰는데 굉장히 음식 맛도 좋았고, 한 번 먹어본 후 탈도 나지 않았기에 이곳 음식은 믿고 계속 먹어도 되겠다 싶어서 3일 연속 이곳에 식사하러 갔다. 우리를 보고 엄청 반가워해주시는 모습에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본인은 한국에서 잘 지내셨다고 했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태도를 알기 때문에 잘 지냈다는 말 뒤에 분명히 많은 어려움과 서러움이 있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반갑게 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정말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한국에서 살다온 분을 만난 것이 확률적으로 가능한가? 그런데 우리의 3일 간의 다카 여행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3일 밖에 안 있었는데 한국에 연고가 있는 세 분의 방글라데시인을 만났다. 한 분은 시장에서 만났는데 옷가게 사장님이셨다. 이분도 유창한 한국어로 이야기하셨다. 솔직히 너무나 생소한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에서 영어보다 한국어를 이렇게 자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국에서 일하시면서 번 돈으로 방글라데시로 돌아와 가게를 오픈하셨다고 했는데, 그 분도 굉장히 반가운 미소로 우리를 환대해주셨다. 또 다른 분은 지나가는 우리를 잡은 어떤 할아버지셨는데, 아드님이 한국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는데 잘 대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한국에서는 매일 똑같은 동선을 왔다갔다 하는 나이기 때문에, 솔직히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 분들이 많은 줄 상상도 못했다. 난 죄송스럽기만 한데 자꾸 고맙다고 인사해주시는 모습에, 나라도 혹여나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분들을 만나게 된다면 피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들이 베풀어 준 따뜻함과 고마움에 나도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고백친구들의 메인 미션은 '맛집' 찾기였다. 딩고(Dingo)에 업로드 될 컨텐츠 주제 도시 중 하나가 방글라데시였고 주제가 맛집이었기 때문에 촬영한 후 영상 소스를 딩고에 전달해야했다. 하지만 관광객 자체가 별로 없을 뿐더러 영문으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맛집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난감했다. 이 때 또 다른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해시태그를 영문으로 해서 인스타그램을 검색하는 도중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맛집 전문 인스타그래머를 찾았다. 나도 푸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추천을 부탁하는 DM을 보냈다. 그는 단번에 답장을 주었다. 그러나 답장 내용은 훨씬 더 젠틀했다. "내가 직접 맛집 투어를 시켜줄게!"


솔직히 낯선 사람을 타지에서 DM으로 만나는 것은 좀 두려운 일이지만, 든든한 고백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에 함께 만났다. 나의 걱정이 무색해질만큼 친절했고 정말 하루 종일 이곳 저곳 맛있는 맛집들을 많이 데려가 주었다. 뱅골어의 특유한 꼬부랑 글씨로 되어있어서 메뉴판도 못읽고 현지 의사소통도 어려울 뻔 했는데 그 친구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다카 관광을 다 마칠 수 있었다.


▣ 방글라데시 맛집 투어 일지


① 다카대학교 - 학생들의 길거리 간식 체험. 사실 너무 생소한 음식이어서 당황했고, 솔직하게 입에 맞지 않아서 실례를 무릎쓰고 몰래 뱉어버렸다.(죄송합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엄청 달달하지만 미지근한 수박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려서 주었는데, 더운 나라라서 그렇게 먹는 문화가 생겨난 것 같다. 다른 한 음식은 딱딱한 그린 바나나, 고수, 소스(고추장 느낌의), 야채, 소금을 넣고 미니 블라인더기에 넣고 빻는데... (말잇못) 세상 신선한 체험이었다. 

소금 뿌린 수박
바나나로 만든 간식


② North end coffee roaster - 직원들도 영어를 잘하며 다들 교육받으신 분들이라고 한다. 커피도 맛있고 시원하다 못해 추울정도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는 방글라데시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방글라데시의 스타벅스라고 해야 할까.


③ Choi Jhal Dhanmondi - 점심식사 로컬 맛집. 낮은 가격에 가성비 좋은 방글라데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전체적으로 굉장히 매콤했고 현지인과 똑같이 손으로 밥을 쥐어 먹는 경험을 했다. 전체적으로 음식이 매콤했고 밥(비리야니)에 반찬으로 나온 음식을 올려서 먹었다. 


④ 과일 주스 가게 - 생과일로 갈아주시고 색소나 설탕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 당미를 높이려고 아주 살짝 소금을 넣긴 했다. 망고와 수박 주스가 정말 꿀맛이었고, 외국인이 처음 방문해서 그런지 사장님이 함께 사진찍어달라고 하셔서 더 기억에 남는 주스집이였다.

하늘색 옷 입으신 사장님
깔끔한 위생관리
수박 주스 먹는 중

⑤ Salim Kabab - 40년 된 허름한 카밥집이나 맛은 허름 하지 않았다. 특히 숯불 고기를 넣어 동그랗게 빚어 만든 숯불 카밥이 최고였다. 근데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인 아이가 일하고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구워주는 맛있는 숯불고기


오른쪽이 숯불 카밥

⑥ 짜이 밀크티 - 장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포스로 짜이를 만들어 주시는데 우유가 데워졌을 때 나오는 찌꺼기를 맨 마지막에 올려주셔서 고소함이 더 강했다. 그리고 한국와서 짜이 팔고 싶다며 계속 어필하셨다.

Salim Kabab 집 건너편에 위치한 짜이집


사실 촬영해서 딩고에 전달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인들이 거의 가지않는 국가다보니 최종 선정에서 빠져버렸다. 그러나 내 유튜브에는 언젠가 다 올리리라... 결심을 해본다.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막간 홍보타임)



복병은 숨어있었다


밤에 인근 시장에 갔다가 과일에 꽂혀서 청포도와 수박을 사왔다. 커다란 수박을 반으로 잘라달라고 호텔에 부탁해서 먹방을 찍었다. 소영이는 오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참외나 수박도 좋아하지 않아서 한 조각 밖에 먹지 않았다. 그리고 나, 치우, 보준이까지 셋이서 수박 반통을 청소기처럼 흡입하듯이 빨아들였고 그날 밤 나는 죽을 뻔 했다. 주여 주여 살려달라고 얼마나 기도를 했던지 위로 아래로 아주 그냥 물갈이를 통한 탈수증세가 엄청났다. 위 꼬임도 너무 심해서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고, 딱 죽기 직전까지 아픈게 이런 건가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몸에 체온 조절 장애까지 와서 너무 추웠다. 덜덜덜덜 떨면서 "소영아 나 담요 좀..." 하면서 이불을 둘둘 싸매고 침대와 바닥과 화장실을 기어서 왔다 갔다했다. 최악의 물갈이. 소영이는 너무 놀라서 보준이네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들겼다. 그 쪽 방도 동일하게 아프기 시작한 상태였다. 해외에서 아픈게 제일 서러운데... 정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도 애처로웠다. 설령 병원을 간다고 하더라도 방글라데시 병원 찾아가는 것이 더 복잡하다. 밤새 너무 아파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보준이는 수박이 문제였다고 했다. 근데 상한 수박이라기엔 너무나 달고 아삭하고 맛있었다. 수박은 80%가 수분이기 때문에, 결국은 방글라데시의 필터 안 된 현지의 물을 듬뿍 마시게 된 경우여서 우리가 물갈이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준이는 우리의 장기여행에서 건강을 책임지는 간호사답게 처방을 내려주었다. 지금 이 증상은 병원가도 포도당 링거 맞는 것 말고는 어짜피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탈수를 방지하기 위해 이온음료를 조금씩 마시고 물은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너무 목이 말라서 말라 죽을 것 같다는 생존 위협에, 아침에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서 인근 슈퍼로 향했다. 포카이 스웨트가 생명수처럼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범기업이긴한데 그 순간 내 한 몸 살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러한 물갈이 때문에 다음 여행에는 포카리 스웨트 가루분말을 구매해서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근데 우리는 새벽에 이 끔찍한 물갈이를 경험한 후 바로 캄보디아로 떠나야 했다. 아파도 머무르지 못한다. 우리는 프로여행러다! 이 후로 2주간 설사로 고생했다.


문제의 그 수박
항상 환하게 웃어주시는 시장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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