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습니다>

프롤로그/에필로그–글의 앞과 뒤, 당신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건네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청명한 하늘 아래 거친 바위 능선의 산봉우리드이 겹겹이 이어지고, 전경에는 돌로 쌓은 낮은 성벽과 바위, 초록빛 나무가 어우러진 산 풍경]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지나 다시 로그인을 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매일 살다시피 했던 곳인데, 오랜만에 접속한 제 브런치 공간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지난날의 시간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 제 글들이 있고, 애정으로 남겨주셨던 라이킷과 댓글의 온기가 남아있는 제 공간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멍하니 브런치 공간을 바라보다 ‘왜 낯설게 느껴질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제가 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의 이곳은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쓰는 나’를 인정받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책상 앞에 앉아 브런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좀이 쑤시듯 어색하고,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치 길을 잃어 난감해하며 잠시 땀을 훔치고 서있는 방랑자의 기분이었달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이러함에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준 이 공간에 대한 미안함과 반가움 섞인 묘한 안도감 또한 들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마지막으로 썼던 <페이지 너머의 풍경 2> 에필로그를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12월의 마지막 날, 강릉 여행에서의 이야기와 방학을 알리며 2월 8일 찾아뵙겠다는 글이었습니다. 새해를 앞두고 독자분들의 안녕과 평화의 인사를 건네던 문장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방학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지금의 저를 비추어 보니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이어서 통계버튼도 눌러보았습니다. 집주인도 들르지 않았던 곳임에도 다녀가 주신 분들이 있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매겨진 숫자를 보며 찾아봐주신 그 마음들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새 창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몸은 글을 쓰던 감각을 잃어버렸더군요. 자꾸만 몸이 들썩이고 머리는 하얘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 상태를 그동안의 근황과 함께 프롤로그로 남겨보기로 했습니다.


방학이라 말씀드렸지만, 제 일상은 방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을 가지게 해 준 안식년이 끝났습니다. 지난 12월 업무에 복귀한 뒤로, 저의 하루는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금세 바빠졌습니다.


타이트한 일상임에도 다시 돌아가 되찾은 점심 루틴에 흐뭇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점심시간, 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싸간 도시락을 먹으며 책을 펼치는 순간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려 이어폰을 꽂고, 도시락 한 숟갈을 입에 넣은 채 오물거리며 눈으로 책을 좇습니다. 오전 내내 알게 모르게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아내리며 다시 오후를 보낼 수 있게 에너지가 축적되는 그 기운에 만족스러운 마음이 든달까요.


그렇게 방학기간 동안 안식년 때만큼은 아니지만 짬짬이 틈을 내어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 등 완독기준 총 11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읽기만 해도 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저에게 방학기간 동안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으로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은 소소한 자유로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책을 읽고 감동이 벅차오를 때면 잠시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구성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더군요.


생각해 보면 저는 그동안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읽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으며 시작한 글쓰기가 바로 브런치 공간의 글쓰기였습니다. 글쓰기의 감각이 어렴풋이 들 즈음 저만의 방학에 들어갔던 건데요. 그런데 한 달 남짓한 시간이 그 감각을 이렇게나 쉽게 앗아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예전의 '쓰기 전부터 부담감을 끌어안던' 저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쓰기를 그만둘 거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아니요’라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비록 브런치에 부담감을 안은 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마음으로 되돌아갔지만, 그럼에도 저는 잘 쓰는 사람이 아닌 계속 쓰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공간을 통해 알게 된 읽고 쓰기를 사랑하는 여러분들과의 느슨하지만 따뜻한 그 응원의 마음을 이으며 이 공간을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변함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올해는 저에게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읽고 쓰기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제가 많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임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방송통신대 3학년에 편입했고, 3월부터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일과 공부, 읽고 쓰기까지 잘 조율해서 일상을 채워나갈 수 있을지, 잘 해낼 수 있을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지 솔직히 걱정이 되긴 합니다. 그럼에도 걱정은 미리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믿으며 '그냥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브런치북은 나중에 엮는다 치더라도, 다시 매거진 형태로 시작을 해보려 합니다. 가능하면 일요일마다 찾아뵙는다는 마음을 가지되, 형식에 저를 묶어 두지는 않으려고요.


조금 느려도, 쉬어 가더라도, 대신 오래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다시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참 반갑습니다.

느린 걸음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그럼 곧 다음 주에 새로운 첫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