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수영장 사다리와 어두운 물이 그려진 정유정 소설 『종의 기원』표지 / © 정유정 / 은행나무]
『종의 기원』
이 책에 호기심이 동했던 것은 어느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였다.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고패턴을 간접적으로나마 따라가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 대해 수많은 말이 떠돌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사고를 직접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주인공 ‘유진’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영문을 모른 채 피범벅이 된 채 잠에서 깬 그는, 1층에서 날카로운 무언가로 목이 깊게 베인 채 죽어있는 어머니를 마주한다.
끊긴 필름처럼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들을 이어 붙이며 그것이 자신의 짓임을 깨달은 유진은, 살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 과정과 이유를 복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패턴이 읽혔다.
사건의 발단을 상대의 잘못으로 돌리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그 책임을 철저히 외부로 돌리는 경향 말이다.
출간된 지 꽤 지난 작품이라 대중의 평가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긴장감과 몰입감이 엄청나지만 너무 사실적이고 잔혹해서 읽기 힘들다는 부류와 내면의 심리 묘사가 섬세하고 탁월하게 그려져서 좋았다는 부류.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우선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책을 덮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폭력과 살인의 묘사가 생생했지만,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보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에 초점을 맞춘 덕에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그의 마지막이 아프게 다가왔다.
책을 덮고 나니 처음 들었던 질문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사이코패스의 사고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는가?’
답은 ‘아니요’다.
오히려 그들의 감정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단절감만 더 선명해졌다. 사고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을지언정, 왜 그런 악이 형성되었는지는 여전히 내 이해 영역 밖이었다.
유진은 어릴 적 그린 그림을 우연히 의사 이모가 보게 되면서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아들이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라던 어머니의 불안과 이모의 날 선 진단이 만나면서 유진은 강압적 치료와 통제를 받게 된다.
만약 유진에게 우연과 상황이 꼬이지 않았다면, 억압적 치료 대신 보통의 환경과 관계가 주어졌다면 그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유진이 유일하게 애정을 가졌던 입양된 형 해진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해진은 유진의 범행을 알고도 자수를 권하며 그를 다시 ‘사람의 자리’로 돌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 믿음의 대가는 가혹했다. 그는 유진의 죄까지 뒤집어쓴 채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들의 선택과 믿음이 잘못된 걸까?
나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했을 때 내 대답 역시 “아니요”였다.
나 또한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해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그 선택으로 죽음을 맞았다. 그렇다면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나 역시, 사이코패스를 마주한다면 같은 결과에 놓일 수밖에 없는 보통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기를, 환경과 관계에 따라 그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지켜지길 바란다.
저 앞 흐릿한 안개 속에선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짠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훅, 밀려왔다.
<종의 기원> 정유정
그래서인지 마지막 구절이 유난히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마치 연쇄살인자로 삶을 예고하는 듯한 유진의 잔상이 남아서, 유난히 더 쓸쓸하고 씁쓸하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순간의 기록자입니다 : )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실제 신경뇌과학자 제임스 팰런 박사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치매 연구를 위해 여러 뇌를 분석하던 도중, 자신의 뇌가 사이코패스 뇌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계도를 조사했을 때 조상 중에 악명 높은 살인자도 나열이 되어 있었다고 하고요.
그럼에도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보통의 환경에서 양육을 받으며 과학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후천적 환경과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합니다.
유진이 제임스 팰런 박사처럼
보통의 환경과 관계 속에서 자랐다면
그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