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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ileen Nov 04. 2016

'이건 나답지않아'도 되는 이유

마음속의 도로공사



3년째 다니지만, 늘어나는 숙제의 양은 적응이 도통 되지않는 학교는, 프로젝트 300개를 머리위로 떨어트려놓고, 장학금 콘테스트같은걸 열몇개 더 얹어놓고, 그 위로 수십장의 페이퍼를 더 요구한 다음에. 자. 마감일은 내일이야. 한다.

우리는 이정도로 집중해서 뭔가를 오랫동안 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특히 더 없었다.

숙제를 같이하고 밥을 같이먹으며 수업도 같이 듣는 친한 친구 하나는, 새로운 일이 생길떄마다 입버릇처럼 '이건 나 답지 않아. 나 답지 않아. '하며 당황한다. 그럼 같이 밥을먹던 나는 생각한다.

진짜 나다운건 뭘까. 어떤 특징들이 '나다운' 것들의 기본이 될 수 있으며, 어떤 레퍼토리로 사람들은 나다움을 정하고 나 답지 않음으로 정의할까?

나는 그래서 하나씩 내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대본다.

난 자신감에 넘쳐.
난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해.
나는 옷을 좋아해.
나는

이런 리스트를 만들다가, 문득 나열된 문장들에 반하는 사건들이 최소 한번씩은 내 삶을 찾아왔었다는 곳을 깨달았다. 그럴적마다 나는 가장 큰 혼란, 그리고 갈피가 잡히지 않는 불규칙적임에 고통스러워했던 것 같다.

난 고통이 싫고, 고통의 근원지를 찾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해나갔다. 난 사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걸까? 나는 사실 어떤 사람일까? 사실은 뭘까? 사실은 누가 정하는걸까? 질문을 하다 하다 요즘은 하나씩 다른 시각으로 보는것을 연습한다.

난 자신감에 넘쳐. 하지만 자신감이 없을떄도 있지.
난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해. 하지만 잠을 못자면 열심히 가 안될때도 있어.
나는 옷을 좋아해. 하지만 일주일이나 잠도 못자고 옷만 보고있으면 옷을 보면서 토할것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어

나는, 나는 이럴때가 있고 저럴떄가 있어. 새로운것을 배워서 신나면 그 방향을 채택하기도 해. 이렇게 꺾였다가 저렇게 꺾였다가 그때 그때 예뻐보이는 길을 선택하고, 그때 그때 과거에서 후회하던 방향의 반대로 가기도 해. 변화는 항상 곁에 있고. 변화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는 거야.

변화가 싫으면 변화를 최소화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겠지만. 변화에서 영영 떨어져 살 수는 없어. 그리고 또 변화가 항상 찾아온다고 해서, 변화를 항상 받아들여야 할 필요도 없어. 감정의 시간이 넘쳐난다며 시험삼아 받아들여도 돼, 그러지 않아도 괜찮고. 하지만 나를 한가지 방향으로 스스로 정해놓는다면, 안정감이야 느낄 수 있겠지만, 그 한가지에 반하는 나머지 오천백만한가지 방향이 나에게 조금만 부딪힌다면 그 때 마다 느낄 고통을 생각해봐. 그냥 조금씩 천천히 넓혀가고 돼. 속도와 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변화를 기다리는 마음은 뭐랄까, 혹시 모르니 삽을 하나씩 지고 있는거야. 마음이 이끌리는 또 다른 방향을 만나면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인거야. 누군가는 포크레인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숟가락을 들고 기다릴 수 있고, 누군가는 마음의 마법으로 한번에 고속도로 이백개를 만들 수 있겠지만, 어차피 이 세상은 개인적인 공간이라서, 괜히 누구랑 대결할 필요없이. 혼자서 찻숟가락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해나가는 맛이 있는 공간인거야. 오프라인 게임같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거라서, 어디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받지않아도 할 수 있어. 그냥 일상의 잠깐의 대화에서도 길을 넓히거나 새 길을 파 볼 수 있는거야. 대화 상대조차 네가 속에서 길을 파고 있는지 모르게 개인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거야.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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