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I
·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재발견.
·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쓰는 나'로 거듭남.
· AI가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서사)을 갖자.
· 외할머니의 강한 '이야기의 힘'을 믿고 『역(逆)한 나의 인생』연재.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데 동생의 문자가 도착했다.
할머니의 부고였다.
"내가 지금 부모님 모시고 가니까, 오빠는 내일 천천히 와"라고 했다.
손주들 중에서 유독 나를 예뻐하시던 할머니셨다.
지체 없이 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빈소에 들어가자 영정사진 속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향을 피워 올리고 두 번 절을 했다.
밤 11시 정도가 되니 조문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막내 삼촌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
애교가 많은 막내아들은 알 수 없는 춤사위를 보이다가,
"엄마 사랑해"를 외쳤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충혈된 눈가엔 눈물이 번져 있었다.
사촌들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육개장이 맛있네"라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몇몇은 반주(飯酒)를 했다.
나는 몰랐다.
장례식에서는 서로 술을 따라주지도 않고,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외치면 안 되는 것을.
오랜 외국 생활 후 장례식은 어색하기만 했다.
옆에 앉은 사촌동생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형 그거 기억나? 어렸을 때, 형이 나 천자문 가르쳐준 거?"
"내가 그랬나?"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구체적인 상황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누구든 붙잡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길 좋아하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그러자 갑자기 플래시백처럼 할머니와의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유난히 입담이 좋으셨던 할머니.
무슨 이야기든 할머니의 입을 통해 나오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매년 여름방학마다 할머니의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사촌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서 외갓집을 찾은 것은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타고 온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가자 시골은 진공처럼 고요했다.
그날 밤 대청마루에 펴놓은 모기장 안에서 잠을 청했다.
축축한 이끼 냄새와 간지러운 풀벌레 소리,
차갑게 피어오르는 밤안개는 흡사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귀신 이야기의 배경 같았다.
옆에서 할머니도 잠이 안 오시는지 내 어린 시절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강원 영서 사투리)
"너는 어렸을 적부터 인사를 참 잘했어랬어.
하루는 지나가는 동네 할매한테 '안녕하세유' 하고 꾸벅 인사를 하이,
그 할매가 '고놈 참 인사 잘 한데이' 하고 칭찬하셨자니.
그러구, 난중에(나중에) 그 할매 또 지나가이깐
니가 '안녕하세유' 하고 또 꾸벅 인사를 했자니.
그러자 그 할매 말이 '아가, 인사를 몇 번이나 하나?' 했져.
또 하루는 내가 길 건너 작은할배 댁으로 너를 데리고 갔져.
아 근데 베룸빡(담벼락)에 매어 놓은 송아지한테
니가 꾸벅 절하며 '안녕하세유' 했자니. 하하하"
너무 어릴 적 이야기라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화였다.
하지만 이것도 분명 나의 모습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 내내 줄곧 듣던 칭찬이
"넌 참 인사 잘한다"였으니까.
그 여름밤 잊고 있던 어린 나와 조우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이는 마치 예전에 시골에서 이사하던 날, 장롱을 들어냈다가
그 밑에서 잃어버렸던 유리구슬이나 동전을 다시 찾은 기분 같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작고 소중한 보물들을.
할머니만 기억하시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이제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초등학교 4~5학년 이후의 기억은 그나마 띄엄띄엄이라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그 이전의 기억들은 물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하루는 작정하고 부모님을 찾아가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물어봤다.
어떤 아이였고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는지.
하지만 대부분 내가 익히 들어 알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과거 모습은 그렇게 '잊혀져'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나는 나름대로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아내나 오랜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 혼자 전혀 엉뚱하게 기억하는 일들이 많았다.
기억의 체에 걸리지 않고 빠져나간 에피소드들을 너무나 많았다.
이제 더 촘촘한 체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글쓰기다.
나는 글을 싫어했다.
교과서, 문제집, 전공책들을 제외하고
그때까지 완독한 책은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합해 꼽을 정도였다.
읽는 것이 이 정도니 글을 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썼던 글이라곤 수십 통의 러브레터가 전부였다.
감수성만 과잉된 유치한 문장들이겠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다.
물론 그녀들(?)은 오래전에 폐기했겠지...
다행히 아내에게 보낸 편지만큼은 아직 보관하고 있다.
이러던 내가 3년 전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회사에서 전자책 무료 구독권을 나눠준게 계기였다.
치열하다 못해 전투적으로 읽었다.
하루에 한 권 정도의 페이스로,
하루 할당량을 못 채우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읽었다.
출퇴근 버스 안, 업무 중간중간 비는 시간,
많은 주말을 카페에 틀어박혀 책만 읽어댔다.
그렇게 지금까지 완독한 책이 1,200여 권이다.
처음엔 자기계발서였고, 과학, 역사, 에세이를 거쳐갔는데, 지금 보니 절반 이상이 소설이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무슨 책을 읽었더라?' 싶을 때가 많아졌다.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손으로 쓴 독서 노트였다.
읽으며 마음에 꽂히는 좋은 문장도 적어두고,
소설의 경우 인물·사건별로 간단히 메모도 해뒀다.
중요한 것은 한켠에 당시의 내 감상과 생각을 적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흘러 노트를 다시 읽으며,
행간에 더 작은 글씨로 새롭게 발견한 인사이트나
그 사이 읽은 다른 책들과의 연결고리를 적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화산 밑에 마그마가 차오르듯 조금씩 쌓인 생각거리, 글거리들이
지금의 '글쓰는 나'를 만들었다.
지금은 영상 자료가 넘쳐나고, AI가 인류의 창조성에 도전하는 시대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그저 시대착오적인 퇴행일까?
나는 AI 반도체 분야에서 일한다.
누구보다도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늘 묻는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 그 대답은
'물리적인 세계에서 동료 인간들과 부딪히며 살아낸 자신만의 경험'이다.
아무리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AI'가 발전해,
학습력과 추론력이 실제 환경과 접한다 해도,
인간 각자의 개인적 인식,
또 다른 인간과의 여러 층위의 경험,
그 경험을 되새기며 엮어낸 이야기,
그 방대한 서사만큼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경험을 글로 쓰려고 한다.
누군가는 "글쓰기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는 행위"라고 했고(reflect),
또 다른 이는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recover).
어떤 이는 "쓰면서 우리의 삶을 다시 산다"고 말했다(relive).
앞으로 나도 글을 쓰고, 그 글을 돌아보며, 내 생각을 되새기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더 많은 글을 남기려 한다.
왜냐하면 먼 훗날 AI는 우리의 추모 방식까지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식과 그 후손들은 나의 '디지털 트윈'—AI가 재현한 나의 모습—으로
나를 추억하고 위로받을 것이다.
내 사진과 영상, 음성에 더해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더 높은 해상도와 선명도로 나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쓰는 글은 그들을 향한 러브레터다.
티브이 속에서만 보던 봉안당에 처음 들어갔다.
봉안단의 크기와 높이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고,
몇 년마다 재계약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할머니는 5년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곁에 모셔졌다.
유골함에 적힌 이름을 보다 잠시 멈칫했다.
"갑순"
그렇다.
노래에 나오는 "갑돌이와 한마을에 살았는데, 사랑은 하는데 마음뿐"이라던 그 갑순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겨진 글씨로 마주하니 낯설고도 새삼스러웠다.
그 옆에는 또렷하게 생몰 연도가 적혀 있었다.
1924年 生, 2023年 卒.
1924년은 갑자년이다.
혹여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진 않으셨을까.
"갑자년에 태어난 계집 아이니, 이름을 갑순이라 하여라."
많은 것이 궁금하지만 이제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박경리 선생과 마르케스가 각각 1926년, 1927년생이다.
만약 두 분이 할머니와 같은 마을에 살았다면,
할머니는 그들의 언니이자 누나였을 것이다.
두 작가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외할머니'이다.
마르케스는 열두 명 자녀 중 첫째였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특히 외할머니는 민간신앙과 미신이 깃든 전설을 자주 들려주셨다고 한다.
박경리 선생의 외가는 거제도였다.
그녀는 인터뷰 중, "외할머니가 들려준 호열자(콜레라)로 끝도 없는
넓은 논에 누렇게 익은 벼가 그냥 땅으로 떨어지도록
거둘 사람이 없었던 이야기가 어떤 선명한 빛깔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위대한 작품을 낳았다.
따라서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힘이 세다.
봉안당을 나와 우리 가족은 홍천 읍내의 한 도가니탕 집으로 향했다.
뽀얗고 깊은 국물에 사흘간 쌓인 피로와 추위가 녹아내렸다.
식사를 마칠 무렵, 큰삼촌이 모두에게 수고했다며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막내 삼촌이 덧붙였다.
"이 도가니탕은 우리 엄마가 백 년 동안 끓이고 고아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에요."
미지근한 다른 친척들의 반응과 달리,
나 혼자 조용히 뜨거운 감동의 도가니(坩堝) 속에 빠졌다.
할머니의 백 년은 어떠셨을까?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 나오는 우르술라처럼
여러 말 못한 과거를 가슴에 묻고 고독 속에 사셨을까?
그러나 오늘처럼 내가 기억하고,
이렇게 글로 불러낸다면 하늘 위에서도 미소 지으시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오후, 식당 창밖으로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이번 장례식을 통해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꿰뚫는 글자 하나를 찾았다.
바로 거스를 '역(逆)'이다.
제목은 『역(逆)한 나의 인생』으로 정했다.
그 역자가 들어가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뽑았다.
1. 역인과(逆因果): 미래가 현재를 부르고, 현재가 과거를 재해석하는 인과율의 반전.
2. 역발상(逆發想): 제약이 창의력을 낳고, 부족함이 풍요를 만드는 역설.
3. 역류(逆流): 주류를 거스르는 에너지,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는 용기.
4. 역설의도(逆說意圖): 공황장애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약함 속에서 발견한 강함.
5. 역전(逆轉): 거대한 반전은 아니지만, 작고 빛났던 승리들.
이 다섯 장은 각각 다섯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먼저 내 경험에서 길어 올린 세 편의 이야기가 있다.
16년간 세 나라를 떠돌며 살아온 경험은 나의 가장 든든한 밑천이 되었다.
이어지는 꼭지에서는 내 제한된 시선이 낳을 수 있는 오해와 한계를 재조명했다.
그리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민했다.
마지막 꼭지에서는 각 장의 주제와 맞닿은 두 권의 책을 교차로 비교했다.
앞만 바라보고 달려오다 번아웃이 온 사람들,
미래를 생각하니 막연한 불안이 엄습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권한다.
인생이 종이접기라면, 오십은 반을 접어 과거와 미래를 겹쳐보기 좋은 때다.
청년들에게는 지금의 허무함이
언젠가 구슬 꿰듯 연결되어 이해될 날이 온다는 확신을 전하고 싶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아니라
"그때는 몰랐더라도 지금 알면 돼"라는 깨달음을.
그리고 글쓰기를 망설이는 분들께,
AI 시대에 우리가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방법은
자신만의 경험을 글로 써보는 것이라 믿는다.
과거를 돌아보며 글을 쓰는 이 여정이 여러분께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