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던 25년 9월,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졌다.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겪는 첫 관문,
본인 소개와 함께 어떤 글을 쓸 계획인지
300자 (공백 포함) 이내로 적어서 올려야 한다.
그때 나는 짧은 글을 길게 늘리는 것보다
긴 글을 짧게 압축하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려운지를 알았다.
밥알을 씹고 소화시켜 포도당을 만들 듯
접속사와 부사가 가득한 만연체를
최소한의 의미구조를 갖는 간결체로 정제하는 과정.
그 가운데 솟아나는 무한한 창조성을 봤다.
AI 기술로 데이터와 정보가 점점 많아지는 지금,
제약과 빼기가 주는 창조성이 필요해.
제약은 창조성의 필요조건이다.
소네트는 14행과 각운,
하이쿠는 17음에 계절어,
시조는 종장의 첫 음보를 3음절에 맞춰야 한다.
뇌과학에서도 제약은 중요하다고 한다.
선택지가 많으면 결정 회피가 증가하지만,
제한된 조건은 되려 집중력을 높인다.
창조성이 내용이라면 문장은 형식이다.
그래서 난 한계속에서 언어를 날카롭게 벼리고 벼릴 작정이다.
하루는 『율리시스』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끙끙대고 있길래,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오늘은 일곱 단어밖에 쓰질 못했다네."
"그 정도면 자네치고 많이 쓴 거 아닌가?"
"그렇지 근데 순서를 정하지는 못했네."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꺼내
공백 포함 딱 300자를 쓰겠다.
자음은 ‘ㅇ’을 빼고 13자, 모음은 6자,
총 23개의 꼭지마다 세 개의 글이 들어간다.
김훈은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
"자음은 사람의 소리, 모음은 짐승의 소리"라 했다.
자음은 사람에 관해, 모음은 짐승에 관해 쓰겠다.
매편마다 계절어가 들어가고,
마지막은 시조의 종장처럼 3-5-4-3구로 마친다.
송창식은 "가나다라마바사”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노래가 너무 짧고,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가사 없이 오직 모음으로만 노래했다.
나 또한 한계속에서 노래하리 내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