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철 Nov 21. 2021

음악의 신(神) 라디오헤드가 표절을?

[대중음악 속 법률 이야기 ②] "Creep" 표절 사건

2021년 현재를 기준으로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를 꼽으라면 음악성이나 대중적인 인기를 척도로 하여 볼 때 단연코 최근 4집 앨범을 발표하며 다시 활동을 재개한 영국의 아델(Adele)이 첫 번째로 손꼽힐 것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Amy Winehouse, Duffy, Adele 등 영국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분명하지만, 70여 년의 긴 팝 음악 역사로 볼 때, 역시 캐롤 킹(Carole King)을 필두로 한 미국에서 더 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배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미국에서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를 잇는 여러 걸출한 아티스트가 데뷔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여가수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일 것이고, 그 뒤를 쫓는 가수들 중에는 메이저 레이블 데뷔 앨범 <Born to Die>의 발표와 동시에 평단의 주목과 대중적인 인기를 동시에 얻은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가 있습니다. 


Lana Del Rey (Mat Hayward/Getty Images)

<사진>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데뷔 이후에 승승장구하던 라나 델 레이에게 지난 2018년에 시련이 닥친 바 있는데, 영국의 대표 밴드인 라디오헤드(Radiohead)가 라나 델 레이를 상대로 표절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라디오헤드는 1992년에 발표한 자신들의 데뷔곡 "Creep"과 라나 델 레이의 곡인 "Get free"가 일부 소절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법적 조치*를 한 것입니다. 이후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라나 델 레이 측에서 "Get free"에서 발생하는 저작권료(로열티)의 40%를 "Creep"의 저작권자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소송외 합의로 종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표절에 대한 법적 조치: 우리나라 기준으로 표절이 발생하였을 때, 원저작권자는 민사적 그리고 형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우선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고의 또는 과실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저작권법 제127조). 우리나라는 저작권을 침해한 자를 형사적으로 처벌하고 있는데, 저작인격권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습니다(저작권법 제136조 제2항 제1호). 다만, 저작권 침해죄에 대한 공소제기를 위하여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하는 이른바 '친고죄'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미권에서는 단지 민사적 조치만 허용되고 저작권의 침해로 형사 처벌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표절을 당한 라디오헤드의 데뷔곡 "Creep"도 표절 시비가 붙었던 곡이라는 점입니다. "Creep"이 수록된 그들의 데뷔 앨범인 <Pablo Honey>부터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상업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3집 <OK Computer>는 그 완성도 측면에서 음악적 선배인 비틀즈(Beatles)에 견줄만하다고 평가받은 거의 유일무이한 1990년대 대표 밴드이자 '음악의 神'이라고 불릴만한 라디오헤드에게 '표절'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당시 젊은이들의 송가라고 불리면서 라디오헤드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선사한 "Creep"은 라디오헤드에게 영광을 가져다주었지만, 이와 함께 그들에게 '표절 시비'라는 흑역사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Radiohead (Photograph: Insight-Visual UK/Rex Features)

<사진> 라디오헤드 멤버 : Colin Greenwood, Thom Yorke, Ed O'Brien, Jonny Greenwood, Philip Selway (좌로부터)


"Creep"의 작곡자 Credit을 살펴보면, 총 7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라디오헤드의 멤버 5명인 Thom Yorke, Jonny Greenwood, Colin Greenwood, Ed O'Brien, Philip Selway 이외에 Albert Hammond, Mike Hazlewood라는 라디오헤드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름이 공동 작곡자로 올라 있습니다.


여기서 'Albert Hammond'라는 이름의 작곡자가 눈에 띄는데, 그는 70년대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등의 곡을 불러 인기를 얻은 바 있는 영국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바로 그 앨버트 하몬드입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 화려하게 데뷔한 미국의 Garage rock 밴드인 스트록스(Strokes)의 기타리스트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Albert Hammond Jr.)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ALBERT HAMMOND AND ALBERT HAMMOND JR. (Photo :Ourstage)

<사진> 앨버트 하몬드 주니어, 앨버트 하몬드 (좌로부터)


앨버트 하몬드는 몇몇의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수로서보다는 오히려 작곡가로서 더 유명합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80년대 미국 영화 '마네킨(Mannequin)'의 주제가로 유명한 Starship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  휘트니 휴스턴의 히트곡인 "One Moment in Time"* , 우리나라에서도 라디오 애청곡인 리오 세어어의 "When I Need You" 등이 있습니다.


* "One Moment in Time":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은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이탈리아의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가 작곡하고 코리아나(Koreana)가 부른 "Hand in Hand"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미국의 올림픽 중계 방송국인 NBC에서는 "One Moment in Time"을 마치 서울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인 것처럼 소개하곤 했는데, 미국인들의 우월감 내지 오만함이 느껴지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앨버트 하몬드는 상기의 곡 이외에도 또 다른 히트곡을 작곡한 바 있는데, 영국의 락그룹 홀리스(Hollies)가 1974년 발표하여 히트한 "The Air That I Breathe"라는 곡입니다. 여기서 '홀리스'라는 락그룹이 생소할 수 있는데, 영국 내에서는 비틀즈가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 비틀즈와 유사한 음악을 하던 밴드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는데(좀비스, 킹크스, 애니멀스, 야드버즈, 후, 롤링스톤즈 등 다수), 그중에 "Bus Stop" 등의 곡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은 밴드가 바로 홀리스입니다. 원년 멤버는 앨런 클라크(Allan Clarke), 토니 힉스(Tony Hicks), 그레이엄 내쉬(Graham Nash)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그레이엄 내쉬는 홀리스에서 탈퇴하여 전설적인 밴드 CSN&Y(크로스비, 스틸, 내쉬 앤 영)을 결성하기도 하였습니다. 홀리스의 곡 중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라디오 애청곡이기도 한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라는 곡이 유명합니다. 홀리스(Hollies)라는 밴드는 몰라도, 이 곡만큼은 국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바 있습니다.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이 구절의 유래는 1884년 제임스 웰스(James Wells)가 쓴 책 ‘예수의 비유(The Parables of Jesus)’로부터 비롯되는데, 그 책에서 소개된 한 이야기 속에서 스코틀랜드의 한 소녀가 무거워 보이는 동생을 업고 가는 모습을 본 목사가 무겁지 않으냐고 물어보니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무겁지 않아요. 제 동생인 걸요(He ain’t heavy, he’s my brother).” 


The Hollies (Photo: Redferns)

<사진> 홀리스(Hollies)


비록 그레이엄 내쉬가 탈퇴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홀리스는 60년대 결성된 영국의 락그룹 중 롤링스톤즈와 더불어 해체되지 않고 최근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룹으로 유명한데, 본 사례에서 문제가 되는 "The Air That I Breathe"라는 곡은 그들의 70년대에 나온 마지막 메이저 히트곡으로 영국에서 차트 2위, 미국에서 빌보드 6위까지 오른 바 있습니다.




한편, 시간은 흘러 1992년 영국의 락그룹인 라디오헤드는 그들의 데뷔곡인 "Creep"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밴드의 리더인 톰 요크(Thom Yorke)는 당시 미국 아티스트인 스콧 워커(Scott Walker)의 곡에 심취해 있었기에 '스콧 워커 노래(Scott Walker song)' 스타일로 곡을 만들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지난 2019년에 스콧 워커가 타계했을 때, 톰 요크는 "그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이며, 자신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라고 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톰 요크를 비롯한 라디오헤드는 스콧 워커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의도와는 달리 영 딴판으로 흘러 자신들의 선배 락그룹인 홀리스의 "The Air That I Breathe"를 표절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였습니다.


(Photo : REX/SHUTTERSTOCK)

<사진> 스콧 워커(Scott Walker)




우선, 표절 대상곡(원곡)인 1974년 영국의 락그룹 홀리스(Hollies)가 발표한 "The Air That I Breathe"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HkUgpfZ3rjQ


다음으로 표절시비가 제기된 라디오헤드의 "Creep"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XFkzRNyygfk


라디오헤드의 "Creep"이 발표된 후 1993년에 들어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면서, 앨버트 하몬드의 귀에도 그 곡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앨버트 하몬드는 "Creep"과 자신이 작곡한 "The Air That I Breathe" 간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느끼고 라디오헤드 곡의 판권(Publishing right)을 보유하고 있는 'Warner Chappell Music Ltd'을 상대로 표절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사건명: Hammond and Hazlewood vs Warner Chappell Music Ltd (1993)


우선 두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은 서로 너무 달라서 한 곡이 다른 곡을 표절하였다고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 노래의 도입부는 그 코드 진행에 있어서 상당히 유사성을 띄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유사성 ①

두 곡 모두 "C E F Fm"로 구성되는 같은 코드 진행을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서 두 번째 코드인 E는 그 자체로 특이한 코드는 아닌데, 두 번째 코드 내에 G#음이 포함되어 있어 C 코드에 후행하면서 G가 아닌 G#이 나와 일상적이지 않은 코드 진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코드 진행은 우연히 같을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유사성 ②

두 곡은 전반적으로 멜로디의 측면에서 서로 닮아있지 않은데, "Creep"의 코러스 "she's running out the door"의 부분에서 멜로디의 유사성이 보이는데, 이와 같은 멜로디는 우연히 같을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입니다(아래 참조).


(Source: University of Westminster)


위와 같은 유사성이 법원에 의하여 밝혀짐에 따라 결국 라디오헤드는 자신들이 표절하였음을 시인하고 밴드 멤버 5명 이외에 원고인 Albert Hammond, Mike Hazlewood를 공동작곡가로 표기하고 향후에 발생하는 저작권료(로열티)를 배분하는 데에 합의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Creep"과 "The Air That I Breathe"의 표절 사건에서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아닌 도입부에서 유사성을 보인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사례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사례는 법적 분쟁화가 된 케이스는 아닌데, 이 역시 두 곡의 도입부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 한 곡이 다른 곡을 표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문제의 노래는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대부이자 개척자로 불리는 한대수 선생님의 "행복의 나라로"라는 곡입니다. 이 곡은 한대수 선생님이 작사 및 작곡을 한 곡으로 알려져 있고, 선생님이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시다가 1969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남산예술센터(서울예술대학교 남산캠퍼스)인 드라마센터에서 역사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을 때에 불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행복의 나라로"가 비로소 음반화가 된 것은 1973년에 양희은의 3집 앨범인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제3집>에서였고, 그 이듬해인 1974년에 발표된 한대수 선생님의 데뷔 앨범에도 수록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ma6rdXNVp4Q


한편, 놀랍게도 프랑스의 샹송 중에서 "행복의 나라로"와 매우 유사한 곡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곡은 그램 올라이트(Graeme Allwright)가 부른 "Ballade De La Desescalade"라는 곡입니다.


https://youtu.be/gwGc5naETuY


이 곡의 발표 연도는 1973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문제의 두 곡의 공식적인 음반화 시점도 같은 해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누가 누구의 곡을 표절한 것인지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도 있고 세계적으로 교류가 활발하여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발표되는 노래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거의 50여 년 전인 1973년 경에는 한대수 선생님도 그램 올라이트도 상대방의 곡을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램 올라이트라는 가수가 활동 당시 프랑스의 샹송 음악시장은 조니 알리데(Johnny Hallyday), 클로드 프랑수아(Claude François) 등의 남성가수들이 인기를 구가했던 시절로 그램 올라이트와 같은 포크 음악은 거의 인기가 없어서 프랑스를 벗어난 외국에 까지 알려지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반대로 프랑스에서 동방의 작은 나라인 한국에서 발표된 노래를 알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앞서 전 시간에 살펴본 "My Sweet Lord" 표절 사건,  위에서 살펴본 "Creep" 표절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래의 작곡이라는 것이 자유도가 높은 까닭에 두 노래 간에 유사성이 있는 경우에는 십중팔구 후행하는 작곡자가 선행하는 곡에 대해서 표절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램 올라이트와 한대수 선생님 중의 한 분은 다른 곡을 표절하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인데, 그램 올라이트는 작년인 2020년에 타계한 것으로 보이니, 한대수 선생님께서 나는 표절을 하였다 또는 표절을 하지 않았다라고 속시원히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그램 올라이트가 표절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終).   

작가의 이전글 무의식에 의한 표절이 가능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