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그릴 때
종이가 예전처럼 하얗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빈칸은 여전히 많은데,
거기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20대의 계획에는
대체로 과장이 섞여 있었다.
조금 더 잘될 거라는 기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확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고,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던 시간.
그 시기의 미래에는
항상 변화가 들어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 같은 것.
하지만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현실과 부딪히는 시간이 쌓이면서
미래는 점점
현실의 연장선에 가까워진다.
꿈이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는
꿈의 크기가
현실에 맞게 접힌다는 쪽에 가깝다.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상상해도
지금보다 조금 나아진 장면 정도만
떠오른다.
현실에
무언가를 더하는 그림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써본 종이 위에
지나온 시간을
다시 포개 놓는 느낌.
그래서 한동안은
미래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쪽이
편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나이를 지나면서
다시 계획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번에는
야망보다는
정리에 가까운 마음으로.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을지보다
어디까지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무렵
주변 사람들의 인생 계획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가족 단위로 완성된 계획들,
배우자와 아이를 중심으로
정리된 시간표들.
그 안에는
지켜야 할 이름들이 있고,
놓치면 안 되는 역할들이 있다.
그런데
그 계획들 어디에도
내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굳이 지운 흔적은 아니다.
처음부터
넣을 필요가 없었던 이름에 가깝다.
당연하다고 설명할 수는 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우선순위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그 사실을 또렷하게 인식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잠깐
제자리를 잃는다.
아,
인생은 정말로
각자 완결되는 이야기구나.
그 깨달음은
크게 아프지 않다.
다만
천천히 남는다.
실패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과하고,
성공이라고 말하기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상태.
아무 일도 없는데
생각이 잠깐
빈자리를 더듬는다.
문득
아프면 병원에
혼자 가게 되겠구나,
라는 장면이 스친다.
그 상상은
비극처럼 다가오기보다는
현실적인 풍경에 가깝다.
내 인생 계획 속에만
내 이름이 적혀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또렷해진다.
혼자는
확실히 편하다.
결정은 빠르고,
설명은 필요 없고,
기다림도 적다.
하지만 가끔은
숲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처럼
조금은
쓸쓸해 보일 때가 있다.
그 감정을
굳이 밀어내지는 않는다.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그런 마음이
스쳐 가는 편이 자연스럽다.
무언가를
애써 바꾸고 싶지는 않다.
흐름을 억지로 틀고 싶지도 않다.
욕심이 줄어들면
야망이 생겨도
야욕으로까지는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생각은
결론이라기보다
잠시 머무는 쪽에 가깝다.
누군가의 인생 설계도에서
내이름을 발견하지 못한 하루.
그 하루를 설명하지도,
정리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지나가는 저녁.
이 마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다만 오늘은
집 안의 소리가
조금 더 또렷하게 들린다.
불을 하나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창문을 닫는다.
하루 동안 열려 있던 생각들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는 것 같다.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있고,
아프다고 부르기에는
그만큼의 흔들림은 없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기분을
말로 묶지 않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