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마음 앞에서 글이 멈춘 날

마음을 쓰려다,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by JH


마음을 쓰려다,

마음이 어지러워져

잠시 글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글을 쓰기 위해 앉았다가

아무 문장도 적지 못한 채

한참을 멈춰 있게 되었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는데,

그 생각들은 예상보다

훨씬 제각각이었다.


앞뒤가 맞지 않았고,

서로를 부르지도 않았다.


문장으로 엮기에는

너무 흩어져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을까.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잘 정돈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감정은 감정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방 한 칸씩 나눠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고 믿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되는

서랍 같은 마음이라고.


그런데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자

그 마음은

정리된 방이 아니라

이삿짐을 풀지 못한 집에 가까웠다.





상자들은 많은데

어디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적혀 있지 않은 상태.


열어보면

당장 쓸 수 있는 것도 있고,

지금은 손대고 싶지 않은 것도 섞여 있다.


정돈이 아니라

적층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혼자여서 정리가 안 된 걸까,

라는 질문도 떠올랐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이 마음은

조금 더 빨리

자리를 찾았을까.





요즘의 공기를 떠올리면

그 질문은

더 자주 고개를 들었다.


적막했던 사회에

온기가 다시 돌고,

사람들은 하나둘

자기 자리를 찾는 듯 보인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시간.


그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나는

컬러는 분명한데

어딘가 흐릿한 화면처럼 느껴졌다.


선명하지 않아서

더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상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한 박자 늦은 느낌.





그 어지러움이 부담이 되어

나는 잠시

글에서 물러났다.


마음을 글로 정리하는 일은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하지만

글을 멈춘 자리에서

또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이야기 속에

계속 등장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배경으로 밀려난 것 같은 기분.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 된 느낌.


실패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거창했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넘기기에는

마음이 자꾸 걸렸다.


그래서 다시생각했다.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쓰지 않는 건

오히려 나를 더 멀어지게 한다는 걸.





모든 생각이

정돈된 다음에만

글을 써야 한다면,

아마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리된 마음으로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은

조금 헝클어진 채로 하루를 지나고,

그 상태로 다시 내일을 맞이한다.


혼자라는 건

이런 오락가락하는 마음까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이

반드시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도

다시 앉아보는 선택,

한 줄이라도 적어보는 용기,

그 자체로

이미 하루를 살아낸 흔적일 테니까.





오늘의 마음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완벽하게 정리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상태로도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마음 옆에

잠시 앉아 있어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많았고,

마음이 조금 어수선했고,

그래서 글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하루를

아무 말 없이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

당신도 요즘

머릿속은 복잡한데

말로 꺼내기엔

정리가 안 된 느낌이라면,


그 상태로도

글 앞에 앉아도 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잘 쓰지 않아도,

정리되지 않아도,

그냥 지금의 마음 그대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고.


오늘은

그 정도의 공감만으로도

괜찮은 밤이었으면 한다.


이 상태로 하루를 지나며,

나는 혼자라는 이유로

자주 넘어지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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