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대부분 '둘'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정부 혜택을 들여다보면
신혼부부 특별공급이 있다.
부부 공제부터,
가족 단위로 나뉜 기준들이 있다.
예약을 하려 하면
기본 인원은 대부분 두 명부터다.
숙소를 고를 때도
침대는 자연스럽게 두 개가 놓여 있다.
설명은 없다.
누구도 '혼자는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은
아주 자연스럽게
'둘'을 전제로 흘러간다.
그 안에서
미혼은 언제나 '1'이다.
아니, '0'인가?
숫자 하나 차이인데,
그 차이가 주는 거리감은 생각보다 크다.
부족하다고 말한 적도 없고,
불편하다고 항의한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약자라는 말은
그때부터 조용히 따라온다.
특히 여자 미혼에게는
그 단어가 조금 더 쉽게 붙는다.
말로는
'아직 아가씨잖아요'라고 하지만,
그 말이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호칭은 바뀌고,
시선도 바뀐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설명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왜 아직인지,
왜 안 했는지,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누가 직접 묻지 않아도
공기는 이미 그 질문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점점
사람이 많은 곳보다
조용한 공간을 찾게 된다.
여기서는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혼자여도 괜찮은지,
앞으로도 괜찮을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이곳에서는
내가 약자가 아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그런데 이런 감정은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러닝을 할 때도 그렇다.
분명
내가 잘못 걷고 있는 건 아니다.
우측으로,
정해진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다.
누가 비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불편한 표정을 지은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내가 먼저 옆으로 비켜선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마치,
그래야 할 것처럼.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조금 뒤에
문득 돌아보면
이상해진다.
방금 그건 배려였을까.
아니면
이미 몸에 배어버린
습관 같은 것이었을까.
피해의식이었을까,
아니면
약자의 위치에 오래 서 있었던 사람의
무의식이었을까.
누가 밀어낸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약자로 규정한 것도 아닌데
나는 늘
한 발 먼저 자리를 내준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세상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불리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이미
그 불리함을 고려한 움직임을
먼저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약자라는 말은
어쩌면
누군가가 붙여준 이름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몸으로 익혀버린 자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 시끄러운 곳에서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조용한 곳을 선택한다.
여기서는
내 속도로 움직여도 되고,
내 리듬으로 살아도 된다.
혼자라는 이유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내가 기준이 된다.
강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가끔은
이 선택이 도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맞서 싸우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은
옆으로 비켜서고,
어떤 사람은
아예 다른 길을 고른다.
그 길의 방향이 다를 뿐,
모두 같은 세상을
각자의 위치에서 지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한 쪽을 택한다.
그 선택이
늘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잃지는 않는다.
혹시 당신도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먼저 자리를 비켜준 적이 있는지.
그게 배려였는지,
아니면
이미 익숙해진 위치였는지.
가끔은
그 차이를 구분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질문을 마음에 남긴 채
하루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