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고 나서야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비로소 하나로 정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전에도 나는
분명 혼자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선은 늘
누군가와 겹쳐 있었다.
가족과 있을 때는
함께라는 감정이 먼저였고,
연인과 있을 때는
두 사람의 눈으로
하나의 풍경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느 쪽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시선은
항상 나 하나의 눈은 아니었다.
진짜 혼자가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느낌을 알게 됐다.
시야는 넓지 않았다.
대신
선명해졌다.
그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불균형부터,
조금 더 큰 구조적인 차이까지.
둘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들,
가족을 전제로 한 혜택들,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선택지들.
그동안은
함께라는 말 뒤에 가려져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장면들이다.
혼자가 되자
그 장면들이
조금씩 확대되어 보였다.
망원렌즈를 낀 것처럼
멀리 있는 것들이
가까이 당겨졌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대로 약자의 위치에
익숙해져도 괜찮을까.
세상을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앞서가고 싶은 야망도 크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었다.
경쟁하는 쪽이 아니라,
개척하는 쪽으로.
여럿이 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는 영역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인데도 바쁘다는 말이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혼자인데도
둘, 셋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기분이 생겼다.
그제야
렌즈의 초점이
완전히 나에게 맞춰졌다.
이전에는
세상이 먼저 있었고
나는 그 안에 끼어 있었는데,
지금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다시 배열되는 느낌이다.
내가 먼저 채워지고,
그 다음에
누군가를 채운다.
그렇게 하면
예전보다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혼자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밀해질 수 있는 상태라는 생각도 든다.
렌즈를 바꾸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이다.
지금의 이 시선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예전처럼
남의 속도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게 됐다는 것.
나는 이제
내 거리에서,
내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이 렌즈가
완전히 맞춰진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직 조정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초점으로
하루를 보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