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을
요즘 들어 자주 떠올리게 된다.
그 말은
침묵이 언제나 옳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손해가 적다는 경험에
가까운 문장처럼 느껴진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대체로 신중한 편이다.
단어를 고르고,
맥락을 생각하고,
이 말이 지금 필요한 말인지
한 번쯤은 돌아본다.
그런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불필요한 말이 붙는다.
처음에는 의미가 있었던 이야기들이
점점 방향을 잃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용보다 사람의 태도가 먼저 남는다.
정치적인 이야기나
성향에 대한 대화를
굳이 피하게 되는 이유도
아마 그 지점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를 이야기하고,
이 사회를 이야기하고,
부동산이나 주식,
가정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때부터 대화는
본래의 질문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법인카드의 사유화를 이야기하다가
주차 딱지 끊긴 사람이 성낸다는 비유를 하면
본인을 주차 딱지 끊는 사람으로 본다며
그에 대한 분노로 옮겨 붙는다.
나는 어느새
맥락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유난스러운 사람이 된다.
반차나 여름휴가를 쓰고
주말에 출근해 수당을 받는 일이
정당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화는 곧
'다들 그렇게 해'라는 말로 정리된다.
그 순간
더 말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진다.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결론이 정해진 대화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본래의 뿌리를 붙잡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대화는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는 사람인가.
내가 세상을 모르는 건가.
하지만 곧
그 질문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결혼 이야기도 비슷하다.
결혼을 꼭 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 말하면,
처음에는
각자의 결혼 생활에 대한 장점들이 이어진다.
그러다 내가
부모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하면,
상대는 자신도
자식이 결혼을 안 하고 싶다면
응원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대화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이야기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도착하는 결론.
그러니까
네가 혼자라는 거지.
그 말을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대화의 공기 속에서는
분명히 전해진다.
그 결론은
의견이 아니라
대접에 가깝다.
설득도 아니고,
이해도 아니면서
어쩐지
이미 판단이 끝나 있다는 느낌.
그 대접을 받을 때마다
나는 내가 말을 잘못한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야기할 자리가 아니었던 건지
잠시 헷갈린다.
억울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넘기기에는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과 조금씩 거리를 둔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 생각이
그렇게 소비되는 자리에
더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서다.
사람과 거리를 둬서
후회한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까워서 생긴 후회는
몇 개 떠오르는데,
멀어져서 생긴 후회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우아하고 교양 있는 대화란
무엇일까.
상대를 이기지 않아도 되고,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말하지 않은 맥락까지
함께 존중받는 그런 대화일까.
나는 과연
그런 대화를
살면서 몇 번이나 해봤을까.
그래서 요즘은
사람보다
나와의 대화가
조금 더 길어진다.
적어도 그 시간에는
내 말이
중간에 잘리지 않고,
내 생각이
대접으로 바뀌지 않으니까.
오늘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대신
이 마음을 여기까지 써 내려왔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비슷한 장면이
한 번쯤 떠올랐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대화는
헛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버린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
나만은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