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에서 한 상으로
혼자 밥 먹는 속도
숟가락을 드는 속도가
예전과 다르다.
손이 먼저 급해지지 않는다.
한때는 밥이란
해야 할 일 사이에 끼어 있었다.
먹는다는 과정보다
시간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컸다.
입에 넣고, 삼키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
밥은 거의 숨처럼 처리됐다.
누가 옆에 있지 않아도
나는 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먹었다.
왜 그렇게 바빴나 싶다.
그때의 나는
배고픔을 달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줄이고 있었다.
처음엔
한 그릇만 올렸다.
간단히 먹고, 빨리 치우고,
바로 움직이기 위해서.
아깝다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 먹는데 굳이.
접시를 늘리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밥은 늘
작고 단단한 형태로 끝났다.
비슷한 반찬, 비슷한 속도, 비슷한 표정.
그런데 혼자라는 시간이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식탁도 달라졌다.
혼자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남는 시간에 끼워 넣는 식사가 아니라
그 시간 자체가 하나의 휴식이 되었다.
나는 투잡러다.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
할 일의 목록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런데도 밥을 먹을 때만큼은
천천히 먹게 된다.
쉬는 시간을 쉬듯 먹는다.
밥을 빨리 먹고 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천천히 먹는 쪽이 하루를 더 길게 만든다.
맛을 느끼는 시간이 생기고
씹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잠깐의 멈춤이
다음 움직임을 덜 거칠게 만든다.
혼자 먹는 밥은
누구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
속도도, 메뉴도, 리듬도
내 쪽으로 고정된다.
그래서 나는
밥을 '처리'하지 않게 된다.
밥을 '사용'하게 된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어느 순간부터
밥상이 한 그릇에서 벗어났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배달음식이어도 괜찮고
직접 만들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식탁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접시가 늘어나고
색이 늘어난다.
빨간 것, 초록인 것, 하얀 것, 노란 것.
그 알록달록함은
맛보다 먼저 마음을 건드린다.
혼자 먹는 밥이 이렇게 밝을 수 있다는 걸
나는 늦게 알았다.
나는 영상을 틀어둔다.
소리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그 소리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배경이 된다.
혼자라는 상태는
고요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온도로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식탁이
예전보다 덜 쓸쓸하고
오히려 더 꽉 차 있다.
천천히 먹는 동안
나는 자주 생각한다.
내가 나를 꽤 잘 돌보고 있다고.
그 생각은
과장되지 않고
그냥 씹는 속도만큼 자연스럽다.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치우는 시간도
예전처럼 급하지 않다.
오늘의 밥이 끝나면
오늘의 하루도 조금 정리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밤이 오면
내일이 슬쩍 기대된다.
내일은 뭘 먹을까.
그 질문은
허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챙길 수 있는지에 대한
작은 계획처럼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