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
난 푸드쉐어링 프로젝트를 운영해본 적이 있다.
종강을 앞둔 대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히 푸드 쉐어링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된다.
푸드 쉐어링은 말 그대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음식을 남기게 된다. 그 중에는 분명 충분히 먹을만한 음식이지만 애매하게 남아서 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푸드쉐어링은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필요 없는 음식은 나누고, 내가 필요한 음식이 있으면 가져오자는 개념이다. 가깝게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멀리는 글로벌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사회운동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입시다' 라고 쓰여진 플랜카드를 들고 길거리에서 소리치지 않아도 작은 수고로움과 약간의 사회성만 투자하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 동네 근처에서 푸드쉐어링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지만 당시에 당연히도 그런 곳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없다) 푸드쉐어링 다큐멘터리에서는 마을 공공장소에 냉장고를 하나 두고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음식을 채우고 가져가는 형식으로 운영했다. 어려울게 없어 보였다. 판만 깔아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활발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푸드쉐어링을 직접 운영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2010년대 당시에는 (모든 것을 온라인화하고자 했던 2000년대 시대정신의 반작용 때문인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여 make it better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일명 O2O라는 약어로 불리며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플랫폼 형태의 비즈니스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시기였다. 당시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당연히 온갖 팬시한 마케팅 캠페인과 함께 푸드 쉐어링을 전국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의 목업까지 머리속에서 슉슉 그려보았다더라.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 하였으니, 우선 우리 아파트에서 시작해 보기로 하고 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최소한 동단위까지는 모아야 의미가 있겠지만, 우선 아파트에서 성과를 내고 관의 협력을 받아 점차 범위를 늘려나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과거의 나는 참으로 당찬 아이였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찌 되었든, [우리 아파트 푸드 쉐어링 프로젝트]의 런칭 기획을 총 3단계로 나누어 준비에 들어갔다.
1.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광고 전단지를 붙여둔다
2. 아파트 내에 방송을 한다
3. 몰려드는 주민들에게 남는 음식을 받고 필요한 음식을 나눠준다
마케팅의 고전이자 정수, 전단지를 먼저 만들었다. 역시 아파트에서 하는 것들은 모름지기 이 전단지를 통하여 공지되어야 하는 법이다. 요즘은 엘리베이터에 디스플레이가 많이 설치되어있는 모양이지만 당시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전단지 영역은 각종 과외나 동네 학원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던 전쟁터였다. 주민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많은 전사들이 자극적인 문구와 색감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나는 순진하게도 내용만 채워넣었다.
지금 보면 글이 너무 많아 엘리베이터의 그 짧은 체류시간 내에 내용을 모두 파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전단지였는데 당시에는 내가 느낀 감정과 그 숭고한 대의를 최대한 A4 용지 한 장 내에 꽉꽉 채워넣기 바빴다.
공지기간이 일정 기간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1주일 후에 시작하는 것으로 날짜를 설정하고 전단지를 완성시켰다. 실제로 집에 있는 식재료들을 돌아보자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직접 사진을 찍어 전단지에 올리고 구구절절하게 다큐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적어냈다. 그리고 경비실에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 이 아파트 주민인데 좋은 일을 좀 하려고 한다, 그러니 아파트에 전단지를 좀 붙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푸드쉐어링에 대한 간략한 개요를 설명드리는 것으로 관리소장님을 설득하여 아파트에 내가 만든 푸드쉐어링 전단지가 붙게 된다.
전단지를 붙이고 나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누군가가 전단을 읽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성공의 확신에 차기도 하고, 며칠 지나니 시작할때의 흥분이 가라앉으며 이런걸 누가 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냉탕과 온탕의 사우나 같은 시간이었다. 일주일은 참 빨리 지나갔고 금새 푸드쉐어링을 하기로 한 그날이 다가왔다. 전국으로 뻗어나가 우리나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낼지도 모르는 획기적인 푸드 쉐어링 프로젝트가 부천의 어느 아파트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아파트 경비실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따뜻한 집 방바닥에 등 지지면서 전단지 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야외 정자로 장소를 정했지만 12월의 날씨는 야외에서 몇 시간 자리를 지켜야 하는 활동을 하기에 녹록치 않았다. 바람과 싸워보려 했지만 일방적으로 신나게 두드려맞고 패배한 나는 처참한 몰골로 양해를 구하고 경비실 한 구석을 3시간 가량 빌리는데 성공했다.
장소도 옮겼고 이제 본격적으로 푸드쉐어링을 시작한다고 방송을 할 차례였다. 아파트 주민대표님과 통화해서 간단히 허락을 득하고 무전기같은 마이크에 오늘 저녁부터 경비실에서 시작하니까 어서 오시라는 내용으로 방송을 마쳤다. 대본도 없었지만 대충 전단지에 있던 글을 읽기도 하는 식으로 어떻게 끝내기는 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아있었다.
준비를 모두 마치고 푸드쉐어링의 성패를 가르는 대망의 마지막 3단계. 가장 처음 오는 사람도 음식을 바꾸어 갈 수 있도록 우리집에서 김, 라면, 고구마 같은 것을 들고 나와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뭐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시작 후 30분이 지났는데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
와 이게 뭐지..? 경비아저씨 보기도 민망하다. 전단지도 붙이고 방송도 했으니 내가 다큐에서 느꼈던 감동을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같이 받을줄 알았지만, 실제로 전단지와 아파트 방송은 너무 집중도가 낮은 홍보방안이었다. 이대로 가면 절대 한명도 오지 않는다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난 뽑아놓은 전단지를 들고 나가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다 나눠줬다. 날씨가 너무 춥고 저녁이라 날도 어두워져서 잠시 발걸음 잡아두기도 어려웠지만 아무 성과없이 돌아가기가 너무나 싫었다. 나눠줄 요량으로 뽑은 것도 아니라 얼마 있지도 않은 전단지도 다 떨어지고 다시 경비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고요한 적막 속에서 갑자기 한 분이 경비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한 아주머니가 국수 두 봉지를 품에 안고 경비실에 내려오셨다. 너무 감격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왔다간 양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머니를 맞이했다. 자세히 보니 내가 나가서 전단지를 드렸던 아주머니였다. 내가 준비한 라면/김/고구마로 바꿔기진 않으시고 국수만 주고 올라가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푸드쉐어링의 취지에 공감하기도 하셨겠지만 어린애가 추운 날 고생하고 있으니 한번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국수를 들고 찾아오셨던 한분을 마지막으로 [우리 아파트 푸드 쉐어링 프로젝트]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국수는 당시 내가 봉사하고 있던 지역아동센터에 기증했다. 2회차가 열리는 일은 없었다.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란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준비 없이 당위와 희망만 갖고 있는 시작은 종종 이렇게 되기 마련이다. 푸드쉐어링을 위한 발걸음이 멈춘 것은 아쉽지만 나의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교훈을 던져줄 수 있었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의의이지 않나 싶다.
먼저 좋은 뜻만 가지고는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뭐든 잘 되려면 치열한 고민과 실행이 필요하다. 수많은 책과 문헌들, 심지어 탈무드나 전래동화에서도 전하고 있는 진리이지만 꼭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깊이가 있는 법이다.
또 대면채널의 중요성을 통감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전단지는 수많은 사람이 봤겠지만 직접 만나뵙고 인사드린 분 만이 찾아와 주셨다. tredy한 교훈은 아닐 것이다. 점점 모든것이 온라인화 되고 이번 세계적인 판데믹 덕에 더욱 그 추세가 강화될 수 밖에 없겠지만 나는 그 대면채널이 갖고 있는 힘을 알 수 있었어서 좋았다.
나의 도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지만 푸드쉐어링의 의의는 날이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누군가 이에 다시 도전하여 내게 푸드쉐어링을 청해오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물론 푸드쉐어링이 필요 없을만큼 식량문제가 모두 해결된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