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부분이 맘에 안 드세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셔야지 계속 마음에만 안 든다고 볼 때마다 이러시면 제가 어떻게 문제점을 파악하나요?!"
한 번도 대표에게 쏘아붙이지 않았던 내가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자칭 예스맨이자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로 온갖 업무 연관된 일은 다 하던 나의 인내의 끈이 탁!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콘텐츠와 비주얼을 다룬다는 이유, 홍보 마케팅의 이력을 가지고 있어 여러모로 활용가치가 많던 나는 회사에서 참으로 다각도로 사용되고 있던 참이었다.
관리자임과 동시에 실무자로, 회사의 각종 이슈에 불려 다녀야 하는 팀장과 이사 그 중간의 위치에서
1년 반을 참아오다 터진 것이었다.
회사 이전과 동시에 대표의 지인이라는 새로운 이사의 출근 이후, 마케팅을 담당하던 나와 엠디팀 이사님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틈만 나면 회의실로 불려 들어가 갖은 지적을 듣고 있던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도 기분 좋게 아끼는 후배와 점심을 먹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다 허둥지둥 불려 가 시작된 호통과 지적.
엠디팀을 열심히 비판하던 대표는 연관성도 없이 화살을 마케팅팀으로 돌려 이유 없이 열심히 지적할 점을 끄집어내고 있던 중이었고, 나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지옥 같은 스케줄 속에서 분명히 타이트하게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해둔 업무.
하지만 이어지는 야근 속에서도 최선으로 타 업체에서도 훌륭하다고 칭찬받고 있는 결과물이었는데 거의 2달이 다 되어가도록 대표는 나를 볼 때마다 나를 깎아내리며 작업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터는 중이었다.
대표의 대책 없는 스타일을 이미 겪어본 나는 묵묵히 그 상황을 참아내면서도 언젠가는 구체적으로 문제점이 뭐냐고 이야기를 해볼 타이밍만 노리던 참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나의 인내의 끈이 맥없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처음 보는 나의 모습에, 쉽게 질 수 없다는 의지를 표출하며 대표는 '잘못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해줄 것 같으면 내가 하지 왜 네가 그 자리에 있겠냐. '며 본인도 이해 못하고 나 역시 이해 못할 소리만 되풀이해댔다.
끝까지 뭐가 문제라고 그는 꼬집어 대답하지 못했다...
'아.. 대화를 해보려던 내 어리석음이다.'
입을 꾹 다물고 참기 위해 부릅뜬 내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내 10년 차 회사 생활의 첫 눈물이었다.
산 넘으면 또 산, 한 고비 넘으면 또 한고비를 넘는 스케줄 속에서 진행한 모든 업무들이 재가 되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 않은 일을 단정 지어 비난하는 배울 것 없는 선배들.
좋은 부분도 많은 친구들을 험담하고, 그 험담과 괴롭힘에 동조해야 하는 환경들에 진이 빠졌다.
누군가의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점도 스스로에게 충격이었지만, 하필 눈물도 아까운 상황에서 눈물이 터진 것이 어이가 없었다.
반년 전 퇴사한 후배 녀석이 말했던 퇴사 사유가 떠올랐다.
'일을 해야 할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아요..'
아. 이제 돌고 돌아 내 차례구나.
이를 악물고 그치지 않는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대표는 둘 만의 자리에서 그 만의 방식으로 나를 달래려 노력했다.
"너 참 눈치가 없다. 내가 너 혼내려는 게 아니고 니 옆사람 혼내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 넌 진짜 눈치가 그렇게 없냐?"
"..?"
한 사람을 혼내려고 또 다른 한 사람을 불러서
자존심을 뭉개고, 그 옆사람까지 혼내서 상처 아닌 상처를 준다고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달래려는 뻔한 레퍼토리라는 걸.
둘 모두가 맘에 안 든 거다. 그냥 혼내고만 싶었던 거다. 이유가 없어도 혼내고 싶었던 거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미 퇴사한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벼랑 끝으로 밀려갔다 위로 아닌 위로로 가스 라이팅 당했고, 그런 핑퐁 플레이에 지친 친구들은 회사를 일찌감치 탈출했다.
1년 반. 더 큰 타격을 입기 전에 탈출했어야 했는데 참고 견디다..
이젠 정말 버티기 힘든 순간이 온 것뿐이었다.
그의 마음과는 별개로 그가 맘에 안 든다고 1달 반을 비난했던 결과물은 높은 매출로 이어졌다.
매출이 오르고 나서는 그의 불만은 멈췄지만, 나의 상태는 깊어졌다.
출근길 사고가 나 큰 부상을 입었고, 나의 업무는 그 부상과는 별개로 더 와이드 해졌으며, 우리 팀원들은 고통받기 시작했으니까.
팀원들의 고통은 또한 나의 책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재택은 무슨.. 빨리 와서 미팅해야 한다는 새로 입사한 대표의 후배이자 신임 이사의 닦달로 하루하루가 피폐해졌다.